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다. 서로 마음이 있어도 외부 환경으로 인해 망가지는 경우들은 허다하다. 온전히 사랑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감내하기 어려운 현실은 그래서 씁쓸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산 넘고 바다 건너 겨우 사랑하게 되었는데 또다시 암초들이 등장했다.
사이코 스토커를 도왔던 사이코 기레기 박수창이 풀려나며 정훈에게 악랄한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사이코 스토커와 기레기에 이어 교수까지 이 사이코 대열에 가세했다. 정훈의 주치의이자 친구인 태은의 아버지이기도 한 유 교수의 행태는 비난을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아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 교수는 정훈의 치료 과정을 그대로 책으로 냈다. 유 교수에게 정훈의 삶은 안중에도 없었다. 자신의 연구 성과를 알리는 것만이 우선이었다.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쉽게 만날 수 없는 병을 앓는 정훈을 만난 것은 유 교수에게는 기회였다.
뇌 과학자로 최고의 선물과 같았던 정훈을 연구하며 그는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최소한 원칙과 기준도 없이 오직 자신의 성취에만 도취된 유 교수가 몰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나 다름없다고 느낀 정훈은 태은의 요구에도 고소를 할 생각이 없었다.
한때는 가장 존경했던 존재였던 아버지를 고발한 아들은 그렇게 병원을 접었다. 아버지의 요구로 정훈의 진료 기록을 넘긴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의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고, 학자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아버지는 했다. 그렇게 아들은 결자해지를 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는 뭐든 하는 자는 또 있다. 기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온갖 악행을 다 해왔던 박수창은 좋은 변호사를 앞세워 집행유예로 풀려나 처음 한 일이 개인방송을 통해 정훈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하진과 서연의 사연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공감 능력은 존재하지 않고 폭로를 앞세우는 한심한 작자들은 현실에서도 넘쳐난다. 다수의 알권리를 앞세워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사디스트들과 그에 동조하는 일부가 보이는 추태들은 실생활에서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악의적 폭로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이를 증폭시키는 언론의 행태는 기레기 그 자체다. 실제 현실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이 황색 저널리즘은 모든 것을 좀먹게 만들 뿐이다. 기레기들을 걸러내기 위한 노력들이 수반되고 있지만 시간이 필요한 작업들이기도 하다.
박수창의 폭로로 인해 정훈과 하진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기레기들의 넘쳐나는 추측과 의혹 보도들은 증명은 필요 없었다. 그저 기사화해서 장사로 돈만 잘 벌면 그만이니 말이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그저 결과만 확대 보도하는 이들 기자 무리들의 무뇌는 결국 억울한 피해자들만 양산할 뿐이니 말이다.
정훈은 회사의 압박을 받았다. 현재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하지 않으면 선배들까지 모두 위태로운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치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던 과거 정권의 언론인들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 같은 모습이 재현되기도 했다.
하진에 대한 공세 역시 만만치 않았다. 출연하기로 했던 작품은 갑작스럽게 무산되고, 광고주들은 소란스럽게 압박을 할 정도다. 팬들은 첫사랑 이미지를 가지고 그런 짓을 했다며 공격하게 급급하다. 아무런 상관없는 사랑이 변질된 모습으로 퍼져나가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진은 어려운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되찾은 사랑이지만, 서로 함께 있는 것이 서로를 힘들게 만드는 사랑이라면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미국에서 작품 출연 의뢰가 있었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이라 하진은 생각했다. 이 방법 외에는 현재 이 상황을 타파할 그 무엇도 없었으니 말이다. 오디션을 보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하진은 어렵게 그 길을 선택했다.
정훈 역시 하진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온갖 억측들이 쏟아지고, 진실보다 자극만 원하는 상황에서 선택은 단순해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하진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별을 선택해야만 하는 정훈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이코 기레기에게 복수를 할 수 있는 방법은 하진의 매니저가 오물통을 박수창의 머리에 뒤집는 것 외에는 없다. 폭로를 앞세워 돈벌이에만 급급한 자들에게는 법적인 조처도 우습게 받아들이니 말이다. 자신의 허물은 생각하지 않고 남을 공격해 희열을 느끼는 자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2년이 지났다. 앵커가 아닌 현장 기자로 돌아간 정훈은 열심히 일하고 있다. 박수창이나 사실 확인과 상관없이 그저 의혹을 증폭시키는 기레기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자 정훈의 활약은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시 앵커자리로 복귀해달라는 선배의 부탁까지 받았지만, 정중하게 거절한 정훈은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교차로에서 우연하게 건너편 차량에 하진이 있음을 발견했다. 할리우드 데뷔 성공으로 차기작도 그곳에서 찍는단 소식만 들었던 정훈은 하진이 한국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반갑기만 했다. 이들은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점에서 그 질문이 더 이상할 뿐이다.
정훈과 하진은 2년이 지나 다시 만날 것이다. 이번에도 쉽지는 않겠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이 여전하다면 그들이 사랑하지 않을 그 어떤 이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사랑은 당연하다. 착하고 예쁜 드라마는 그렇게 마지막으로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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