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다. 서현진과 김동욱이라는 배우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매력적이다. 최소한 연기로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이 두 배우를 믿고 봐도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첫 방송부터 <너는, 나의 봄>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첫 회부터 다양한 장르적 이야기를 끄집어와 긴장감을 극대화시켰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영상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서도 세련된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시나리오, 연출, 연기 삼박자가 모두 뛰어난 작품이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화자를 달리하며 강다정(서현진)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과정은 흥미롭게 다가왔다. 1994년 7살 다정의 삶은 그리 행복할 수 없었다. 매일 술을 마시고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는 이미 아이들에게는 기피 대상일 뿐이다. 크리스마스에 산타에게 선물을 받고 싶어 화분에 양말을 걸어놓은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아버지의 침뿐이었다.
아버지는 서울대를 나왔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발목이 잡혀 자신의 삶이 모두 무너졌다며, 매일 술을 마시고 아내를 폭행하는 것으로 사는 한심한 존재일 뿐이다. 그래서 7살 다정은 옆집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꿈꾸던 삶을 옆집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대를 나왔던 엘리트 아버지의 상징과 같았던 수많은 책들을 그저 불쏘시개로 사용하는 어머니의 모습과 너무 배가 고파서 교회를 찾아가 빵을 원했지만, 마음의 양식이라는 동화책만 얻고 실망하는 어린 다정의 모습은 씁쓸하지만 서글프게 다가왔다.
교회에서 어린 다정에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남자가 혹 주영도(김동욱)는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나이차가 크지 않은 이들의 모습은 현재의 다정과 영도를 떠올리게 하니 말이다. 동화책을 가져와 어머니에 자랑하지만, 어머니가 쏟아내는 말들은 다정을 두렵게 하고 슬프게 만들었다.
공주와 왕자들의 이야기는 모두 절망적이고 공포스러운 내용이 전부다. 그 모든 이야기들을 알고 있는 어머니는 '검은 고양이'를 들고 온 다정을 웃게 만들었다. "잡혀가"라는 단어에 다정이 안심하고 행복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현재의 자신의 상태를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매일 취해 어머니를 폭행하는 아버지만 보며 자란 다정과 동생 태정(강훈)으로서는 나쁜 짓을 하는 자를 잡아가는 행위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어느 날 어머니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잠든 후 아이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
어머니의 손에 말라버린 피가 무엇인지 다정은 몰랐지만, 혹시 아버지를 죽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상관없다는 생각까지 말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손에 굳어 있는 피는 아버지를 죽이며 생긴 것이 아니라, 깨진 컵으로 인해 난 상처가 만든 결과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머니는 이미 잡혀갔을 테니 말이다.
다정은 길치다. 새롭게 리모델링한 집으로 이사하려 한다. 그곳에는 절친인 은하(김예원)과 쌍둥이인 철도(한민)가 카페를 하고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 그렇게 모든 것을 결정하자마자 그 건물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여전히 다정의 삶은 평탄할 수 없나 보다. 야반도주처럼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아버지를 떠나왔던 다정은 열심히 공부해서, 졸업하고 누구보다 빨리 특급호텔 컨시어지 매니저의 자리에 올랐다. 접객 일이 쉽지 않지만, 그곳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승진한 다정은 분명 사회적 성공을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접객을 주업무로 하다 보니 스토커까지 생겼다. 멀쩡하게 생긴 남자인 채준(윤박)은 싫다고 해도 자신을 찾아 온다. 옮긴 집까지 알고 찾아오는 것을 보면 스토커가 맞다. 투자자라고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리고 채준의 고백을 받아줄 마음도 없었다.
문제는 채준이라는 남자가 다가오는 방식이 다정을 조금씩 흔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다정이 사귄 남자들은 모두 최악의 쓰레기들이다. 그가 그런 남자들만 만난 것은 강박이 만든 결과였다. 아버지라는 트라우마가 결국 연애까지 엉망으로 만들었다.
쓰레기들을 만나 갱생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지만 항상 실패했다. 한번도 이 방법을 배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남자들과 달리 채윤은 너무 멀쩡하다. 그리고 자신을 최대한 배려하며 일정한 거리두기를 하는 모습도 좋다.
결정적으로 다정을 흔든 말은 하얀 눈이 오는 날 따뜻한 집에서 귤을 까먹는 기억을 언급하는 대목이었다. 다정이 품고 있는 감정을 제대로 찌르는 발언이었다. 다정은 어린 시절 그런 삶을 꿈꿨다. 자신의 집이 아닌 화목했던 옆집을 몰래 보며 키웠던 꿈을 채윤이 언급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다정은 영도를 처음보자마자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만나왔던 남자들과 같은 부류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엉성하고 바보 같은 이 남자는 자신이 통화를 하는지도 모른 채 자기에게 말을 걸었다 생각하고 답변을 한다. 참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그 남자가 들어간 곳은 3층 정신과 병원이다.
4층에 사는 다정은 3층에 사는 영도의 첫 인상이 좋지 못했다. 이를 더욱 선명하게 해 준 것은 옥상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친구들의 권유로 '스누핑'을 해주는 과정에서 확고해졌다. 휴지가 더 필요해 잠시 들어갔던 다정의 방을 훑어본 영도는 정신과 의사로 다정의 마음을 들여다봤다.
발 없는 새는 정착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했다. 추리소설도 끝부터 읽고, 드라마도 해피엔딩이 아니면 시작도 안 한다고 지적했다. 불행이 두려운 다정의 마음이다. 어린 시절의 고통이 그대로 담겨 있는 상징이고 풀이가 아닐 수 없다.
알코올 중독자인 사람 때문에 불행했다면 이번에도 주정뱅이를 만난 다음에 술을 끊게 해주고 싶지만 잘 안 된다고 했다. 이는 아버지라는 트라우마가 존재하고 이를 극복하고 싶은 갈망이 존재하지만 능력이 되지 않는단 의미이기도 하다.
모두가 기피하는 검은 고양이를 가장 잘 보이는 곳에 크게 걸어둔 것은 원하는 혹은 찾고 있는 대상이 검은 고양이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높은 순도로 피해자에게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은 어린 시절 가족 이야기를 하자 다정은 발끈해서 멱살까지 잡았다.
판도라의 상자처럼 꺼내기 힘들었던 마지막 사물에 대한 평가는 붉은여우꼬리는 꽃인데 꽃 같지 않아서 의미가 있다며, 자신이 자신도 예쁜 것을 안다는 말이었다. 마치 희망과도 같았다. 이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담긴 듯한 스누핑이었다. 발 없는 새, 쓰레기 자석, 검은 고양이, 붉은여우꼬리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지도 궁금해진다.
다정을 집요하게 찾아오는 채준이 정신병원까지 찾았다. 그가 영도를 찾은 것은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자신이 찍은 대상에 다가온 이 남자가 싫어서 떼어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채준의 이런 행동은 오히려 역효과로 다가왔다.
영도는 채준의 행동과 말을 듣고 그가 소시오패스라는 사실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도는 채준이 3층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 추측하기 시작했다. 범인은 반드시 현장에 다시 나타난다는 진리를 실현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영도는 이정범 형사가 사망하며 심장을 받았다. 이 일로 인해 영도는 경찰 자문위원을 자청했다. 그리고 고 형사가 근무했던 부서를 자주 찾는다. 팀장인 고진복은 영도를 특별하게 생각한다. 아직 범인도 잡지 못한 이 형사의 심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을 찾은 영도는 이 형사 사건을 무한 반복하듯 살핀다. 조서를 확인하는 과정을 하지만, 범인을 특정하기 어렵다. 그러던 영도는 채준을 만난 후 자신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영도가 채준을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다정 때문이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언급할 수준은 아니지만, 분명 영도의 행동은 다정을 위함이다. 다정에게 채준을 만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소시오패스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서다. 그게 아직 사랑은 아닐지 모르지만 말이다.
노란 꽃을 노란 후드티를 입은 남자의 후드에 꽃아 두는 행위. 그리고 호텔에서 문제의 그 노란 후드티를 입은 남자를 본 다정. 이는 무슨 의미일까? 다정이 죽은 꽃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이 남자의 죽음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도 생긴다. 채준이 다정을 위해 그 노란 후드티를 죽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새롭게 리모델링한 집에서 물이 샌다. 다정의 집 욕실에서 떨어진 물이 3층 영도 사무실을 적시고 있다. 그렇게 스며드는 상황에 채준이 급습하듯, 영도를 찾아 협박을 했다. 그것 역시 우연이라고 볼 수는 없다. 작가의 상징들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더욱 시작과 함께 채준의 차량 위에 누군가가 떨어졌다. 그리고 검은 고양이가 존재한다. 진실을 알리고 범인이 잡혀가도록 했던 검은 고양이가 그 사건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그리고 추락한 그는 다정일까? 영도일까? 아니면 채준일까에 대한 의혹도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등장 자체를 코믹함으로 채우는 영도의 전 부인인 배우 안가영(남규리)이 어떤 존재감을 보일지도 궁금해진다.
수많은 상징들이 지배했던 <너는, 나의 봄>은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앞서 밝힌 좋은 드라마의 필수조건인 삼박자를 모두 갖춘 첫 회는 최고였다. 후드티를 입고 백팩을 멘 이 살인마는 과연 채준일까? 가해자와 피해자를 모두 드러내고 시작하는 드라마는 점에서 다음 이야기들이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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