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매력적인 도깨비 이야기는 다시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랑 이야기만 다루는 김은숙 작가의 정점이 무엇인지 <도깨비>는 잘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사랑 이야기를 해온 김 작가의 정수가 바로 이 드라마에 모두 담겨 있으니 말이다.
비가 되어 첫 눈이 되어;
9년이 지나 다시 시작되는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의 사랑 이야기
신의 저주를 풀어내기 위해 검을 뽑은 도깨비. 그 지독한 악연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물의 검은 비로소 불의 검이 되어 천 년 동안 이어온 악연을 끊었다. 그렇게 재가 되어 슬퍼하는 은탁 앞에서 무가 되어 사라져버린 도깨비. 그런 도깨비를 놓아주지 못하는 은탁의 오열은 지독할 정도로 아팠다.
도깨비가 무로 돌아가자 신은 다시 한 번 그에게는 재앙이고 그를 알았던 이들에게는 축복을 내렸다. 도깨비를 알고 있던 모든 이들의 기억을 지워버렸다. 사라진 그를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재앙이자 축복이라는 신은 여전히 얄굿기만 하다. 망각이 곧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라고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 행복은 아니니 말이다.
도깨비는 천상으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했다. 스스로 남아 비가 되어, 첫 눈이 되어 은탁에게 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그렇게 지상도 천상도 아닌 공간에서 9년이라는 시간을 헤매고 다녔다. 지독한 고통은 도깨비만의 몫은 아니었다. 기억을 잃기 전에 사력을 다해 잊지 않기 위해 은탁은 자신의 노트에 도깨비의 흔적들을 적었다.
자신이 직접 적었지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글들. 하지만 기억은 사라졌지만 은탁은 온 몸이 도깨비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 지독한 고통은 몸이 기억하고, 몸으로 몸부림치도록 만들었다. 열대 지역도 아닌데 슬픈 도깨비의 마음은 비가 되어 은탁 곁에 머물렀다.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은탁은 라디오 피디가 되어 있었다. 은탁의 유일한 친구인 반장은 변호사가 되었고, 써니는 닭집으로 큰 부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헛헛하기만 하다. 은탁은 그 누구도 만나지 않은 채 의식하지 못한 채 아픈 그 지독한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도깨비가 9년의 시간을 고통 속에 살아야만 했던 것처럼 말이다.
첫 눈이 오던 날 은탁은 홀로 자신의 생일을 축하했다. 그렇게 촛불을 끄는 순간 도깨비는 소환되었다. 지독할 정도로 외롭고 힘겨웠던 시간. 오직 서로를 향한 그리움만 간직한 채 살아왔던 그들은 그렇게 다시 만났다. 갑자기 등장한 도깨비에 놀란 은탁. 그런 그를 향해 나아가 껴안는 도깨비와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눈물에 어쩔 줄 몰라하는 은탁은 몸이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몸은 도깨비를 기억하지만 머리 속 기억은 그를 알지 못한다. 이 지독할 정도로 서글프고 아픈 사랑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도깨비가 재가 되면서 그가 남겼던 모든 것들도 재가 되어 무로 돌아갔다. 은탁의 시집에 적은 '첫 사랑이었다'는 글귀도 재가 되어버려 잔인한 낙인으로 남겨져 있었다.
누구냐는 은탁의 질문에 "을이다"라는 말을 도깨비는 알지만 이제는 커버린 은탁은 알 수 없었다. 갑과 을의 사랑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은탁의 장난처럼 적었던 계약서에 의지해 9년이라는 지독한 시간을 버티고 다시 돌아온 도깨비는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유일한 존재인 저승사자와 재회했다.
"난 왜 꼭 닫힌 세계를 열 문이 발견된 것만 같지. 내가 덜 닫았나?"
신들은 여의 기억 만은 남겨두라 했다. 최소한 도깨비와 신부의 지독하고 아름답고 아팠던 사랑을 기억할 이 하나는 필요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삼신 할머니의 부탁과 달리, 신의 이 발언은 말 그대로 남은 이야기의 복선이었다. 신의 능력을 넘어선 사랑의 힘은 그렇게 그들의 운명을 개척하게 만들 가능성을 열어 두었다.
자신을 기억해주는 저승사자와 재회 후 은탁 앞에 나타나기 시작하는 도깨비. 비만 내리던 은탁의 주변에 꽃이 피었다. 한 겨울에 22도의 날씨도 찾아왔다. 비가 아닌 꽃은 곧 도깨비의 마음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촛불을 끄는 행위가 익숙해지는 은탁의 행동은 기억이 지워진 후에도 지워내지 못한 몸의 기억이었다.
습관적으로 촛불을 끄는 행위는 은탁이 도깨비를 그리워하는 몸의 반응이었다. 9년 전 고구마를 산 돈 오천 원은 다시 재현되었다. 그렇게 그들의 재회는 과거와 현재를 교묘하게 겹쳐 새롭게 이어지고 쌓이기 시작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은탁과 모든 것을 기억하는 도깨비.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운명이라는 고리는 그렇게 둘을 다시 하나로 연결해주고 있었다. 광고 수주를 해야만 하는 라디오 피디의 운명은 처음부터 도깨비와 재회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었다. 신은 그렇게 그들이 다시 재회해 행복해질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도깨비는 사장이 된 김 비서를 찾은 도깨비는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유 회장이 남긴 유언을 기억하고 있는 김 비서는 반가웠다. 덕화는 기억할 수 없었던 삼촌이 바로 도깨비였다. 그 모든 여정과 과정은 둘이 연결될 수밖에 없는 지독한 운명의 장난이었다. 당장 협찬과 광고를 채워야만 하는 은탁은 '광고 계약서'를 품고 고민하고, 언제나처럼 다시 나타난 도깨비는 그렇게 그녀에게 소원을 들어준다.
자신의 곁을 떠도는 이 남자가 재벌 회장이라는 사실이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고맙기도 했다. 이 낯선 그리움은 재벌이라는 이유는 아닐 것이다. 미묘함 속에서 은탁은 편지 하나를 받았다. 10년 전 자신이 캐나다에서 보낸 편지였다. 그 낡은 편지는 자신이 보낸 것은 분명하지만 기억은 없다. 노트에 적은 글 속의 김신과 아저씨는 동일한 존재고, 그렇게 은탁은 비밀을 풀어내기 위해 캐나다 호텔로 향했다.
캐나다의 거리를 걷던 은탁은 빨간 문 앞에 섰다. 기억의 문은 그렇게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잘 모르지만 몸이 기억하는 그곳에 멈춰 선 은탁은 그 문을 열고 나오는 도깨비와 마주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들 속에 황당해 했지만, 둘은 그렇게 캐나다 여행을 시작했다.
<도깨비>가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는 이유는 14회부터 시작된 재회 때문일 것이다. 지독할 정도로 정주행을 하던 그 이야기는 도깨비가 재가 되며 사라졌다. 숨 막힐듯한 이야기가 무로 돌아간 도깨비로 인해 사라지며 시청자들의 감성도 굴곡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이어져 왔던 감성을 넘어서지 못하면 무너질 수도 있는 그 이야기의 흐름은 더 큰 감동과 재미로 돌아왔다. 길고 긴 시간을 잊지 않았던 그들은 다시 재회했다. 기억이 사라진 자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자. 하지만 머리로 하지 못하는 기억을 온 몸으로 기억하는 그는 그렇게 지독한 낙인처럼 찍힌 사랑을 되찾기 시작했다.
탁월한 영상과 감각적인 글이 만나 뛰어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이 하나가 되면 <도깨비>가 만들어진다. 반복되는 관계를 익숙한 듯 새롭게 풀어내는 그들은 진정한 장인匠人 들이다. 감성을 극대화하는 음악과 함께 시작된 도깨비와 도깨비 신부의 사랑 이야기는 과연 어떻게 전개될까?
마른 메밀꽃과 나비. 도깨비의 시작이자 마지막이기도 했던 그 목화밭은 황량하게 변했고, 그곳에서 시지프스처럼 신의 저주에 갇혀 있어야 했던 도깨비. 은탁이 쓴 계약서에 의지한 채 살아가던 도깨비가 소환되는 그 과정의 장면화는 최고일 수밖에 없었다.
봉인된 기억마저 깨워내는 이들의 사랑은 행복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신과 지은탁의 사랑은 행복을 예약하고 있지만 왕여와 선의 사랑은 과연 행복일까? 기억하고 있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살아가야 했던 선은 그렇게 예고편에서 여와 마주했다. 그리고 지독한 사랑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지막 이야기가 더욱 기대된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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