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서사를 가진 드라마이다. 까불이보다는 평범하게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큰 방점을 찍은 <동백꽃 필 무렵>은 휴먼 드라마라고 정정해야 할 듯하다. 지독할 정도로 힘겨운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박복한 정숙에게 딸과 함께 했던 7년 3개월은 선물이었다.
자신이 남편에게 두들겨 맞는 것은 참았지만, 날아든 소주병으로 딸 머리를 다치자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정숙은 엄마였다. 그렇게 거리에 나선 정숙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룸살롱 주방에서 일을 하다 "오빠"라는 말을 배운 동백이를 보호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지만 이들 모녀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거리에 나와 은행에서 하루를 보내는 모녀에게는 하루살이보다 삶이 더 힘들었다. 또래 아이가 먹는 하드가 먹고 싶다는 동백이에게 돈이 없어 사주지 못한 정숙은 은행에 있는 음료수를 먹이는 것이 최선이었다. 감당이 안 되는 가난으로 서울역 화장실에서 딱 한 번 자는 날 정숙은 다짐했다.
고아원이 차라리 딸에게 더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라 정숙은 판단했다. 딸을 버려야 딸을 살릴 수 있다는 이 한심한 생각은 정숙의 오판이었다. 버려진 딸이 행복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딸과의 마지막을 위해 빚을 내 마지막 만찬과 좋은 옷을 사준 정숙은 술 손님에게 젓가락 장단에 노래를 부르며 버틸 수밖에 없었다.
모질고 모진 인생을 담은 정숙의 젓가락 장단에 흐느끼듯 부르는 "봄날은 간다"는 세상 서러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박복한 엄마 조정숙의 삶은 그렇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1년만 있으면 찾아간다는 정숙은 그렇게 약속을 지키러 갔지만, LA로 입양이 된 후였다.
인권 변호사가 되었다는 딸에 대한 이야기가 뉴스에 나오자 정숙은 자신이 딸을 버린 것이 세상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고가의 모자를 백화점에서 사서 양부모를 찾은 정숙. 하지만 정숙 앞에 나타난 아이는 동백이 아니었다.
"사랑받기 위해 아득바득 살아야 했어요. 미움 받으면 나도 버림받을 수 있으니까?"
동백이는 파향 당했다. 살기 위해 엄마가 룸싸롱에서 키웠던 사실을 알고는 양부모는 버렸다. 아이를 장난감 정도로 생각한 목사 부부의 행태는 그랬다. 분노한 정숙은 그렇게 모자를 뺏는 것으로 작은 복수를 했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기억은 지독한 트라우마가 된다.
다시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살 수밖에 없었던 그들. 딸을 버리는 것이 딸을 살리는 것이라 믿었던 정숙은 미처 그건 몰랐다. 버려진 딸이 받을 수밖에 없는 깊고 아픈 상처말이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엄마와 딸은 그렇게 상처를 쌓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밥이나 해주고 떠나겠다는 마음으로 동백을 찾은 정숙은 환하게 웃는 딸을 보며 행복했다. 처음 봤을 때는 자기 팔자 닮아 정말 술집을 하고 미혼모로 사는 것이 지독하게 아팠지만, 환하게 웃는 동백을 보며 자신과는 다르다며 행복했다. 그런 딸과 잠시라도 살 수 있었던 그 3개월의 시간은 정숙에게는 선물이었다.
"나한텐 적금 타는 것 같았어. 엄마는 이번 생이 너무 힘들었어. 정말 너무 피곤했어. 사는 게 꼭 벌받는 것 같았는데. 너랑 한 3개월을 더 살아보니까. 7년 3개월을 위해서 여태 살았구나 싶기도 하고...."
지독하게 모진 삶을 살아야 했던 정숙은 인생 자체가 피곤할 수밖에 없었다. 벌을 받는 것 같은 삶에서 딸 동백이와 함께 했던 7년 3개월은 자신이 살아야만 했던 이유였다. 그런 딸을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염치 불고하고 콩팥을 떼 달라는 부탁도 하고 싶었다.
유전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말에 자신의 삶을 포기한 정숙과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도 상관없다며 수술을 해 달라는 동백. 엄마와 딸은 그렇게 달랐다. 엄마는 자신의 딸이 조금이라도 위험해지는 것이 싫었다. 딸은 엄마를 위해 위험은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딸의 마음을 안 정숙은 그렇게 홀로 마지막을 준비했다. 딸을 위해 평생 모은 것으로 준비한 보험 증서 하나가 모든 것이었지만, 자신이 얼마나 딸 동백이를 사랑했는지 편지 속 마음은 잘 보여주었다. 지독할 정도로 사랑했던 딸에 대한 마음이 모두 담긴 편지는 동백에게 "허기지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훨훨 살아"라고 당부하고 있었다.
7년 3개월이 아닌 34년 동안 엄마는 동백이를 사랑했다는 마지막 말은 엄마가 되어도 엄마를 이기지 못하는 이유가 담겨져 있었다. 정숙은 그렇게 사망한 것일까? 안치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수술을 하고 함께 살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게 7년 3개월을 연장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은 손절의 순간 민낯을 드러낸다. 무심함에 가려졌던 뜨끈한 민낯"
제시카가 이미 결혼과 이혼을 했던 사실이 공개되자 종렬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지켰다. 동백이 코를 때리며 다음에는 너의 모든 것을 걸고 오라는 말에 많은 것을 깨달았다. 종렬은 처음으로 제시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그렇게 종렬도 제시카도 성장하고 있었다.
까불이로 체포된 흥식이 아버지 서경은 진술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용식이로 인해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흥식이 전해달라는 안경을 빌미로 그간 벌어진 6건의 살인에 대해 진술을 마쳤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있다.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서경이 자유롭게 다녔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다.
철물점을 운영하던 시점에 대한 고백은 사고가 나기 전이라면 모든 것은 맞춰진다. 5년 전 사고 후 방안에만 있었다면 모든 떡밥은 처리가 가능하니 말이다. 이런 드라마를 다시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엄마에 대한 다양한 고찰을 이렇게 흥미롭고 매력적으로 담아내기도 쉽지 않으니 말이다. 마지막 한 회 동백은 행복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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