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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마우스 15회-기억 깨어난 이승기, 먹구렁이 잡는다

by 자이미 2021.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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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한결같다. 자신의 드라마에서 주인공은 언제나 범인이다. 추리를 요하는 드라마를 쓰면서 일관되게 무조건 주인공은 범인이라는 사실은 기괴할 정도다. 물론 주인공이 범인이거나 죽거나 하는 경우가 존재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문제는 일관되게 추리를 요하는 이야기를 쓰면서 주인공은 곧 범인이라는 공식을 벗어나지 못하며 맴도는 상황은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추가적인 변화를 찾아볼 수도 없는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도 쉽지는 않다.

잔혹함을 앞세운 드라마 <마우스>는 상당히 흥미로운 시작을 했다. 선과 악이라는 고전적인 주제를 앞세워 과연 어떤 이야기들을 풀어갈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수없는 떡밥들을 양산하고 성급하게 거둬들이는 방식의 반복은 씁쓸하다.

 

15회는 이승기가 연기하는 바름이 알고 봤더니 잔인한 사이코패스 살인마였다는 이야기였다. 그동안 그 흔적들은 넘치고 넘쳤다. 하지만 설마 전작들처럼 주인공이 다시 범인일까? 하는 의구심이 오히려 반전이었는지도 모른다.

 

뇌 이식 수술이라는 현실로는 불가능한 설정이 등장하며 모든 것들은 쉬워졌다. 이를 이용해 어려운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조건들이 생기게 되니 말이다. 드라마 <마우스>에는 대표적인 사이코패스 DNA를 가지고 태어난 두 아이의 삶을 조명했다.

 

성요한은 사실은 사패가 아닌 1%의 천재였다. 하지만 그는 정바름의 누명을 쓰고 사망했다. 아이를 구하기 위해 바름의 집을 찾았다 고무치 형사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머리를 심하게 공격받은 바름은 한서준에 의해 살아났고, 요한은 사망했다.

 

이야기는 갑작스럽게 기억을 되찾은 바름의 행동으로 이어진다. 이미 머리가 엉망이 되어버린 바름의 기억이 온전한 것인지도 의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니얼 박사는 이 모든 것들을 다 알고 있다고 나섰다. 더는 폭주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말도 한다.

 

바름이 연쇄살인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그들은 과연 왜 그런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바름의 과거 집 지하의 흔적들을 모두 지우고, 사망한 아이의 사체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행동까지 혼자서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바름을 압박하는 무리들이 누구이고, 무엇을 위한 행동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사패 범죄자를 잡겠다는 의지라고 외치고 있지만, 과연 그게 합리적인 주장인지도 의심스럽다. 사패 살인마를 개화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잔인한 살인마에게 살인마를 잡게 하겠다는 실험이라는 것인가?

 

법치주의 국가에서 법을 외면하고 사패를 이용해 범죄자를 사냥하겠다는 식의 발상은 그래서 황당함으로 다가온다. 더는 치유 불가한 수준의 범죄자를 옹호하게 만드는 상황극들은 이해하기 어려우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뇌 이식 수술이라는 선을 넘어선 상황에서 과연 바름이 정상적인 기억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말 그대로 드라마에 불신이 가득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혼란 속에서 깨어난 치국은 자신을 공격한 이가 바름이란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교만하지 않아서 죽어야 한다는 바름의 그 행동은 섬뜩하기만 하다. 철저하게 이중생활을 하며 모두를 속였다는 의미다.

 

이런 식의 이야기들 속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맹점들은 너무 많다. 그의 이모가 지켜보고 있었고, 그만이 아니라 그를 감시하는 인물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자신이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 역시 기괴한 전개다.

 

대니얼은 한서준이 보낸 뇌수술에 성공한 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실험쥐는 30일을 살다 죽었기 때문에 바름도 이제 얼마남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믿을 수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뒤에 아니었다고 하면 그만인 수준의 전개 과정이니 말이다.

 

홍주 역시 캐릭터가 점점 망가져간다. 한서준에 납치되어 사패와 함께 했던 아이가 성장했다. 그리고 성요한의 아들까지 낳아 키우는 것도 기묘한 전개라고 할 수 있다. 누구보다 한서준이라는 자를 알고 있는 홍주의 선택치고는 기괴하니 말이다.

성요한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이 한서준의 친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홍주는 이 사실을 모른다. 이는 홍주는 성요한이 한서준의 친자식으로 알고 있다는 의미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의아하다.

 

요한의 아들이 구박을 받는 상황에서도 아이를 안고 우는 것이 전부다. 극 전개 자체가 기괴할 정도로 이상하다는 의미다. 이런 엉성한 전개가 20회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이 기괴할 정도다. 이미 자신이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는지를 잃어버린 듯한 모습이니 말이다.

 

치국을 바름이 죽였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뜬금없이 요한의 감정을 받아서 바름이 착한 사람이 반은 차지하고 있다는 설정 자체가 기괴하다. 이런 상황에서 바름은 자신을 실험한 대니얼과 조직에 대해 복수를 하고 자수를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작가의 전작들처럼 주인공을 죽이든, 아니면 그가 자수를 통해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반성하는 과정을 담을지는 모르지만 드라마의 완성도는 이미 오래 전부터 무너졌다. 이승기와 이희준이라는 배우가 보여주는 연기에 미련이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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