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진하던 트럭이 눈앞에서 멈췄다. 세상 모든 것이 멈춘 상황에서 그 남자가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손을 내밀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이대로 죽던지, 아니면 자신의 손을 잡던지. 너무 당연한 선택지 아닌가.
비록 3개월 시한부이기는 하지만 인간이란 삶에 대한 욕망이 큰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멸망이라고 스스로를 이야기하는 남자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는 시간을 거슬러 나아가기 시작했다. 시간을 멈추는 것도 기이하지만 거꾸로 나아가는 이 신기한 체험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커피숖에서 정신을 차리며 이성적으로 생각해봐도 믿기가 어렵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존재할 수 없는 상황들은 경험 자체가 부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동경에게 멸망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상황들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전기가 나가고 휴대폰이 모두 꺼진 상황에서도 동경이 믿지 않자 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운석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는 멸망 직전의 단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이를 목격하고 나서야 동경은 멸망을 받아들였다.
받아들이지 않고 세상이 정말 멸망하는 것을 그대로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한번 믿기 시작하면 집착은 커질 수밖에 없다. 경계가 무너지며 한쪽으로 쏠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상황이니 말이다. 멸망은 바쁘다. 수많은 이들이 멸망을 찾으니 말이다.
극단적 선택을 하려는 자의 목소리를 듣고 떠나려는 멸망의 손을 놓지 않는 동경. 그런 동경의 손목에 붉은 실을 감아준 멸망은 12시에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다. 충전하듯 손을 잡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 신박한 제안으로 이들의 로맨스는 시작되었다.
멸망은 자신 멋대로 죽으려는 범죄자를 찾아가 절망이 무엇인지 느끼도록 하고 있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한 정당한 처벌도 피한채 그저 죽음으로 도피하려는 자에게 피하지 말고 자신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철저하게 반성하도록 요구하는 것 이는 죽음보다 더 두렵고 힘겨운 고통일 수밖에 없다.
동경이 사귀었던 남자가 회사까지 찾아와 난동을 피웠다. 자신을 유혹해서 아내와 이혼하게 되었으니 해고하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이 남자. 그 남자의 난동을 끝낸 것은 아내였다. 최소한 동경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남편이 한심한 족속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이 남자는 결과적으로 동경이 멸망에게 동거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되었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위해 영정 사진을 찍고 뽑아 집으로 향하던 동경 앞에 등장한 것은 술에 취한 전 남자 친구였다. 지지리 궁상이라는 말이 적당할 정도로 엉망인 존재였다.
치근덕거리며 아내에게 버림받으니 동경을 찾아와 사랑을 따지는 이 남자는 영정사진마저 깨트렸다. 이런 난동에 끼어든 것은 멸망이었다. 멸망이라면 이 남자 정도는 쉽게 사라지게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동경과 동거하는 모습으로 정리하려 했다.
이 행동이 부른 파장은 의외로 컸다. 때마침 집으로 돌아오던 동경이 동생이 분노해 전 남자친구를 추격했고, 동경은 갑작스럽게 멸망에게 동거하자고 제안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어차피 엮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한 지붕 아래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깨진 유리로 손을 벤 동경.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살짝 멸망이 문지르자 상처는 사라졌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놀라자 멸망은 자신이 지켜주기로 했다는 말을 전한다. 동경이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보호 받음은 그의 마음을 흔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녀 신과 멸망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다가온다. 신이 만들어지는 것은 사람들이 원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원하지 않으면 신은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은 그래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런 신은 사람들을 위해 멸망을 만들어냈다.
이런 관계들이 과연 어떤식으로 정리가 될지 궁금해진다. 사람들의 요구가 없으면 신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멸망 역시 존재할 수 없다. 동경은 멸망에게 일을 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멸망의 답은 지옥이었다.
죽어야 하는 자가 죽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지옥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는 점에서 죽음을 관장하는 위치에 있는 멸망이라는 존재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잘 드러난다. 인간에게 영원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를 넘어서려는 욕망이 꿈틀 되지만, 누구도 죽지 않는다면 그건 곧 지옥이 될 수밖에 없다.
심장병을 앓는 소녀의 몸을 빌어 인간들 곁에 있는 신. 그렇게 지독한 고통을 경험하며 인간들을 보살피는 소녀 신은 멸망과 동경의 이야기를 모두 알고 있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는 척을 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소녀 신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분명 소녀 신의 선택으로 동경과 멸망은 만났다. 그저 우연으로 동경이 멸망을 외쳤기 때문에 이들이 만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들이 서로 나눴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소녀 신이 가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첫 주 주인공의 시한분 판정에 이어 동거까지 일사천리로 이어진 이야기 전개는 흥미로웠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이들에게 위기를 전할 요소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아닌, 그리고 살아있는 것이 아닌 존재하는 멸망을 위협한 위험요소가 없다는 것은 이야기가 밋밋해진다는 의미다.
그 위험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멸망을 위협하는 상황까지 이어질지도 궁금해진다.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하는 이들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확장될지도 궁금해진다.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동경과 소녀 신. 이 순간적인 만남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궁금하다.
드라마 <도깨비>와 조금은 유사한 상황들이 전개되기는 하지만, 임메아리 작가의 필력들이 묻어나는 장면들이 등장하기도 했다. 소녀 신과 멸망의 이야기 속에 자신이 만든 세계관의 가치를 심는 일이나, 멸망이 하는 일이 가지는 사회적 함의 등이 잘 갖춰져 있었으니 말이다. 과연 이들의 100일간의 로맨스는 어떤 결말을 맺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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