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 폭염에 시달리는 시청자들을 위해 마련한 무한도전의 휴가 특집 마지막 편인 <무도-폭염의 시대>는 흥미로웠습니다. 제목부터 <군도-민란의 시대>를 그대로 패러디한 무도는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는 영화 <명량>이 아닌 <군도>를 선택했습니다.
폭염 속 얼음 쟁탈전이 주는 재미;
이순신이 아닌 민초들의 분노를 담은 무도, 그들은 왜 군도를 선택했을까?
무한도전은 <방콕> 특집에 이어 <열대야 특집>으로 저렴하면서도 흥미로운 휴가 보내기 팁을 보여주더니, 이번에는 여화 패러디를 통해 여름 특집의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군도, 민란의 시대>를 완벽하게 패러디한 <무도, 폭염의 시대>는 여름 특집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면서도 그들이 견지하고 있던 사회적 풍자도 함께 담아냈습니다.
폭염으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먹을 것도 더위도 참아낼 수 없는 지독한 현실 속에서 얼음을 독점하고 있는 김 대감에 맞서는 무도 멤버들의 이야기는 영화 <군도>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나주 부자가 벌이는 탐욕스러움과 그에 반발한 민초들의 반란을 담은 영화는 분명 흥미로운 이야기였고, 무도는 완벽하게 상황을 이끌며 풍자와 패러디의 묘미를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현실 풍자를 하면서도 예능 특유의 재미를 보여주는 <무도, 폭염의 시대>는 재미와 풍자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냈습니다. 독과점으로 얼음을 독점하고 권세를 누리는 김 대감과 그 얼음을 차지하기 위한 민초들의 피나는 투쟁은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민초들의 투쟁이 항상 옳은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는 않습니다. 경제 권력이 시대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오직 자본의 힘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되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무도, 폭염의 시대>는 현대 사회의 자본 권력 시대를 잘 풍자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과 달리 얼음을 만들고 유지하기 어려웠던 과거 얼음이 돈이나 그 어떤 권력보다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던 시절 '얼음'을 둘러싼 이들의 투쟁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도, 폭염의 시대>는 분명 변형된 형태의 추격전이었습니다. 주어진 얼음이 중요하기보다는 정해진 데드라인인 7시까지 누가 가장 큰 얼음을 가져올 수 있느냐의 대결은 당연히 서로를 속고 속일 수밖에는 없는 상황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동안 다양한 추격전을 통해 무도 특유의 재미를 만들어주었던 그들은 민속촌에서 벌어진 추격전 역시 최고의 재미를 만들어냈습니다.
탐욕이 지배하고 타인을 무너트려야만 자신이 살 수 있다는 야만의 시대, 그들이 선택한 것은 약탈이었습니다. 보다 큰 얼음을 차지하기 위한 서민들의 탐욕은 결과적으로 거대했던 얼음들이 산산조각 나는 과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힘을 합하고 중지를 모아 얼음들을 함께 보존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았다면 김 대감의 지배 구도를 벗어날 수 있는 묘책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눈앞에 던져진 얼음에 마음을 빼앗긴 서민들에게 그런 합리적인 선택은 불가능하기만 했습니다.
작은 먹잇감을 던져주고 서로 싸우게 만들어 자신의 거대한 자본을 지키는 김 대감의 행태는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에게도 일상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거대한 자본을 축적한 탐욕스러운 재벌들의 논리가 바로 <무도, 폭염의 시대>가 완벽하게 녹아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에게 불만을 품는 이들에게 작은 먹잇감을 던지고 서로 그것을 차지하도록 유도하는 잔인함으로 대중들의 분노를 억누르는 노림수는 김 대감의 행태로 잘 드러나 있었습니다.
조선의 모든 얼음을 가진 김 대감은 목마름과 폭염에 죽어가는 민초들에게 자신이 가진 얼음을 일정 부분 나눠주기보다는 서로 싸움을 하도록 유도합니다. 독과점으로 모든 것을 가진 그는 자신을 향한 분노를 분산시키기 위해 얼음을 차등 분배하고 경쟁을 통해 가장 많은 얼음을 반납하는 이에게는 상을 주겠다고 합니다.
김 대감의 이런 선택은 결국 그를 향하던 분노를 서로의 탐욕으로 전이하게 유도해냈습니다. 김 대감을 향한 분노는 얼음을 받는 순간 서로를 향한 분노로 변해갔고, 그런 분노는 결국 가장 근본적인 근원적 문제를 다시 망각하게 하는 이유가 되어 버렸습니다. 실제 현실 속에서도 이런 능숙한 기교들로 사회는 움직입니다. 노비나 다름없는 회사원들의 삶은 철저하게 모든 것을 가진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파리 목숨일 뿐입니다. 그들에 대항하려 해도 이미 목숨 줄을 담보 잡힌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동료들끼리 무한경쟁을 하고, 그런 경쟁을 통해 자본에 더욱 충성스러운 노비가 되어가는 것이 현대사회입니다. 그런 대가가 타인보다 좀 더 많은 임금이라는 열매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무도, 폭염의 시대>에서도 이야기를 했듯,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폭염의 시대''는 우리를 서글프게 만들 뿐입니다. 거대한 얼음은 서로 다투는 사이 작은 얼음 조각으로 변해갔고, 잃은 것 없이 민초들의 지배력만 더욱 강화한 김 대감은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그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게 다가올 정도입니다.
무한도전이 이순신의 영웅담을 담은 <명량>이 아닌 민초들의 분노를 담은 <군도, 민란의 시대>를 선택한 것은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매일 신기록을 세우는 <명량>을 패러디하는 것은 무도로서 어려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상황들을 풍자하고 재미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것은 그들에게 힘겨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이순신이 아닌 민초들을 선택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닌 우리 모두의 힘으로 세상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어가겠다는 의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민초, 대중들이 무너진 현대 사회에서 더는 투쟁의 역사는 그려지기 어려워졌습니다. 세월호 참사와 두 번의 선거에서 드러났듯, 대중들은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완전히 붕괴 수준으로 무너져있습니다. 마치 <무도, 폭염의 시대>에서 더위에 정신을 잃고 서로의 얼음만 탐하는 모습처럼 말입니다.
'시민들과 나누겠습니다' 벌칙으로 직접 얼음을 갈아 빙수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나눠주던 무도 멤버들의 모습 위에 담긴 자막은 바로 무도가 왜 <명량>이 아닌 <군도, 민란의 시대>를 선택했는지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소수의 권력이 아닌 대중의 힘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 <무도, 폭염의 시대>는 그래서 위대하면서도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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