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이 벌써 400회를 맞았습니다. 횟수로 9년 동안 이어진 예능은 위대함으로 다가옵니다. 서너 달을 버티기도 힘든 현실 속에서 9년이라는 긴 시간 그 자리를 지켜온 그들은 그저 위대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단순한 웃음을 넘어 사회를 직시하며 진정한 웃음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던 그들은 400회 특집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소란스럽지 않았던 무도의 400회 특집;
400회라는 대단한 숫자 앞에서 오히려 가장 소박함을 선택한 무도, 그들은 왜 비긴 어게인이었나?
왁자지껄한 파티를 예상할 수도 있었습니다. 수많은 스타들이 출연하고 싶어 하는 무도라는 점에서 많은 스타들을 대거 모아 그 힘을 모두에게 보여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달랐습니다. 9년이라는 최장수 예능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으면서도 최소한 그들은 교만해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극장에서 내려졌지만 음악 영화인 <비긴 어게인>이 국내에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원스>를 통해 음악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존 카니의 신작이자 후속편과 같은 느낌의 이 음악 영화는 국내에서 소규모 아트영화의 새로운 기록을 세우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음악이 좋아서만은 아니었습니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연기했던 그레타의 비긴 어게인을 지켜보며 많은 관객들은 환호했습니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홀로 서서 당당하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그녀의 모습은 감미롭고 매력적인 음악만큼이나 강렬했습니다. 음악 자체의 가치를 되찾고 그 안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많은 관객들은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도 역시 그런 정점에서 본질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비긴 어게인>을 선택했습니다.
본질을 잃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익숙한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미와 동급이기도 합니다. 황소와 줄다리기를 하며 무모하게 도전했던 그들은 우여곡절을 이겨내며 현재의 무한도전이 되었습니다. 결코 쉬울 수 없는 도전을 이겨내며 그들은 그저 단순한 결과에 대한 만족이 아닌 과정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해준 기특한 예능이기도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도전 과제에 낙담하면서도 조금씩 노력해 그들이 도전과제에 다가가는 과정은 감동 그 이상이었습니다. 페이소스의 본질을 보여주었던 찰리 채플린을 떠올리게 하는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인 세상을 무한도전은 그동안 꾸준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낯선 스포츠에 도전해 많은 이들에게 비인기 종목을 알리는데 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민감한 사회 문제 역시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무도 특유의 비틀기를 통해 풍자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매번 일깨워주는 그들의 사회 풍자는 권력자들에 의해 강제 폐지 위기에 내몰리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예능 방송임에도 방송을 장악한 사장에 의해 시사 프로그램과 함께 강제 폐지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무한도전의 가치를 알 수 있게 하기도 했습니다.
9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하며 더는 모를 것도 없는 그들에게 굳이 '나 몰라 퀴즈'를 시키는 제작진들은 재미있었습니다. 너무 사소해 잊어버릴 수밖에 없는 그들의 일상을 서로 알아가며, 결과에 따라 그들은 너무 서로를 잘 아는 유재석과 정형돈, 너무 몰라서 문제가 된 죽마고우 하하와 노홍철, 서로를 너무 모르는 하와 수 박명수와 정준하는 24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습니다.
24시간 동안 자유 여행을 하는 것이 <무한도전 400회 특집>의 전부라는 사실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그렇게 서로 짝을 지어 각자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하와 수는 주꾸미를 잡으러 바닷가로 향하고, 한때 죽마고우였던 하하와 노홍철은 핫플레이트인 경리단길로 향합니다. 잠정적으로 부산으로 향하려던 유재석과 정형돈은 고속도로에서 경로를 바꾸는 말 그대로 자유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왜 무한도전은 400회 특집에 '비긴 어게인'이라는 부제를 사용했는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특별한 가치를 담아왔던 그들이 너무 특별할 수밖에 없는 400회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여행을 택한 것은 말 그대로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여행은 정말 특별할 것이 없었습니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경리단길 나들이가 대단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경리단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그곳에서 다양한 추억과 즐거움을 나누는 행위 자체가 특별함으로 다가올 이유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닷가로 주꾸미를 먹으로 떠나는 여행 역시 너무 평범해서 뭘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했습니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마음가는대로 떠난 여행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서 영화 한 편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유재석이었지만, 그런 소원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했습니다. 그저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향한 그들이 마주한 그곳에서 느끼는 감정들이 소중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부제 '비긴 어게인'이 자연스럽게 실현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음악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고민과 의미를 담고 이를 실천하는 과정으로 이어지듯, 무한도전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미 정점을 찍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무도는 이제 10주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장수하고 있는 최고의 예능이 자신의 가치를 성대한 파티로 축하하기 보다는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한 것은 대단한 자부심이었습니다.
자랑하지 않아도 자랑이 되는 무한도전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욕심을 부렸다면 성대하과 화려한 축하 방송을 만들 수도 있었던 그들은 아무것도 치장하지 않은 날것의 모습 그대로 그들만을 위한 그들만의 여행을 선택했습니다. 제작진들의 간섭도 없이 그저 출연자들이 원하는 그들의 여행 속에서 무도 멤버들이나 시청자 모두 무한도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는 점에서 영특했습니다.
본질을 벗어나지 않은 채 정체되지 않고 새롭게 마음을 다잡는 여행이 될 수밖에 없었던 <무한도전 400회 특집>은 그들이 왜 <비긴 어게인>이라는 부제를 선택했는지를 명확하게 해주었습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되어 수많은 인파를 불러 모으는 유재석의 대단한 고백이나, 방송 사고를 대처하는 무한도전 식의 사과송의 흥겨움도 매력적이었지만 더욱 강렬하고 놀라웠던 것은 그들의 도전정신이었습니다.
400회 특집이라는 특별할 수밖에 없는 상황마저도 새로운 도전으로 가치를 부여하는 그들은 진정한 예능인들이었습니다. 자유여행을 통해 무한도전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안에 속해있는 그들 스스로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되돌아보는 과정은 대단한 자부심과 함께 영원히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강렬한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습니다.
소란스럽지 않고 평범해 보이던 음악 영화 <비긴 어게인>이 그 어떤 영화 못지않은 흥행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그 본질에 대한 진정성이 특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처럼 무한도전의 400회 특집 역시 다를 것은 없었습니다. 특별하지 않아서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비긴 어게인은 진정한 시작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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