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회 화제를 이끌고 있는 <미생>은 5회 방송 역시 그들이 찬사 받는 이유를 잘 보여주었습니다. 회사원들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삶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이고 감동이었습니다. 더욱 이젠 고인이 되어버린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이 흘러나오던 장면에서의 장그래의 한 마디는 특별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조직사회 속 우리의 민낯;
워킹맘과 알파걸마저도 적응하기 힘든 우리네 현실, 너무나 강렬한 직장생활보고서
원작의 탄탄함에 드라마의 재미와 가치까지 이식한 <미생>은 우리가 꼭 봐야만 하는 필견의 드라마임이 분명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처럼 그들은 시작부터 현재까지 열광적인 지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매주 보여주고 있습니다.
2년 계약직 정사원이 된 장그래는 변함없이 구박을 받는 존재였습니다. 다른 드라마와 달리, 너무 리얼한 그의 삶은 당연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봐왔던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언제나 일당백 이상의 대단한 모습들을 보여주고는 했습니다. 모든 일을 척척 다해내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그런 천편일률적인 이들과 달리, 장그래는 신입사원 그 모습 그대로일 뿐이었습니다.
남들보다 못한 학력에 전무의 낙하산으로 인턴을 시작했던 장그래. 하지만 프로 바둑 기사를 노릴 정도로 열심히 해왔던 그에게는 남들 못지않은 장점은 존재했습니다. 그 장점이 결국 회사 생활에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인간의 능력이란 그저 허울 좋은 학력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명확하게 다가왔습니다.
신입사원들의 일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누구보다 장그래가 누구인지를 잘 아는 영업3팀의 오 과장은 철저하게 그를 훈련시키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던 한석율은 사무실이 답답하고 힘들기만 했습니다. 피티의 정석이라 불리며 자원팀에서 탐을 냈던 장백기는 자신을 경계하는 선배로 인해 꿔다 놓은 보릿자루와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인턴사원들 중 넘사벽으로 불리며 최고의 인재라 평가되던 안영이는 신입사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뛰어나 남자 선배들에 의해 속 좁은 공격을 받고 있는 그녀의 회사 생활은 지독함으로 다가올 뿐입니다. 최고 인재들만 투입된다는 자원팀이지만 그들에게는 오직 남자들만의 의리만 존재할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5회에서는 B/L을 두고 벌인 영업3팀과 자원팀 간의 대결 구도가 큰 줄기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에 지난주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선차장과 안영이의 동질감 교류가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당연하게 주인공인 장그래의 면모 역시 변함없이 이어지며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전개되었습니다.
원 인터내셔널에서 독보적인 여사원인 선 차장은 오 과장과 동기이지만 빠른 진급을 이뤄낸 진정한 슈퍼우먼이었습니다. 일과 생활 모두를 해야만 하는 그녀는 우리 사회에서도 익숙한 워킹맘이기도 합니다. 회사 내에서 아무리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어린 딸과의 교감이었습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우리 사회 구조상 이를 모두 잘 할 수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확합니다.
여자가 동료 남성들보다 빠르게 진급하는 것도 어려운데 가정 일까지 모두 해야 하는 현실은 너무 무겁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맞벌이 부부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아이 문제는 항상 큰 화두로 자리 잡습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안 낳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아이를 낳는다고 행복해질 수도 없는 이 지독한 굴레 속에서 선택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 과장 부인은 결혼과 함께 회사를 관둬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꾸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남들보다 가난하게 살아도 아이 셋을 두고 오 과장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이유는 확실한 내조를 해주는 부인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 과장과 달리 맞벌이 부부인 선 차장은 넉넉한 삶을 영위하지만 딸에게 소원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딸아이가 놀이방에서 그린 그림에 아빠는 소파에 누워 자고 있고, 엄마는 얼굴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엄마 얼굴 보는 것이 어려운 딸에게 엄마 얼굴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난감한 상황은 워킹맘들의 애환이 모두 녹아들어 있었다는 점에서 특별했습니다.
회사 업무에 치이고, 일상의 생활까지 책임져야만 하는 워킹맘에게 육아는 덤이 아니라 필수임에도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놀이방에 데려다 주고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선 차장은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돌아서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슬픈 아이의 눈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던 선 차장의 모습은 우리 시대 수많은 워킹맘들을 대변하는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비록 쉽지 않고 어려운 현실이지만 서로 의지하며 조금씩 양보해 살아가는 선 차장 부부의 모습은 우리네 삶을 엿보게 하는 듯 리얼하기만 했습니다. 물론 오 과장네의 왁자지껄하면서 거칠 것이 없는 모습 역시 자연스러운 우리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탁월한 업무능력을 갖춘 안영이는 주목받는 신입사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독 남성성만 두드러지는 자원팀에서 안영이는 공공의 적 일 뿐이었습니다. 자원팀 부장은 지난해 성희롱 발언으로 감봉까지 당했던 인물이고, 안영이의 상사들 역시 남성우월주의에 찌든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온갖 모욕을 당하며 버텨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알파걸로 불려도 조직 사회에서 배척을 감당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탁월한 재능은 말초들의 그 무엇을 건드렸고, 이는 곧 부당한 경계로 이어질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사내에서 이뤄지는 남녀 간의 갈등은 여전히 지속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과거와 달리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여전히 사회 곳곳의 주요요직에는 남자들이 독식하고 이런 구조 속에서 뛰어난 여성들이 조직 사회에서 버텨내는 것은 어렵기만 합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안영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들 역시 압권이었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은 이런 우월적 지위가 만든 권력 범죄입니다.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권력을 가지게 되면 권력이 약한 사람들에게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B/L 사건의 핵심 속에는 바로 회사 내 성희롱 사건이 존재했습니다.
지난 해 자원팀 부장이 벌인 직장 내 성희롱에 증인으로 나선 오 과장. 그런 오 과장을 증오하던 자원팀 부장으로 인해 모든 사건은 시작되었습니다. 무조건 작은 꼬투리라도 잡아서 오 과장을 비난하고 싶었던 부장과 못나게도 자신의 실수를 남에게 떠넘긴 과장으로 인해 이번 사건은 시작되었습니다.
자원팀 캐비넷 속에 숨겨져 있는 진본 B/L로 인해 촉발된 사건은 감정 대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직장 내 권력다툼은 노골적으로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 과장과 최 전무 사이의 문제가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부하 직원에서 책임을 떠넘기고 그렇게 회사에서 쫓겨나 함바집에서 일을 하다 죽은 사원. 그 사실을 은폐하기에만 급급했던 전무와 당당하게 나서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침묵했던 오 과장.
오 과장에게 그 사실은 가장 아픈 상처였습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최 전무의 잘못이지만 이를 제대로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항상 오 과장을 짓누르고 있는 아픔이기 때문입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자책하는 현상은 단순히 상해 범죄에서만 드러나는 문제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 과장은 잘 보여주었습니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상처를 건드린 자원팀 정 과장으로 인해 폭발한 사태는 사내 인트라넷에 사과문을 올리라는 부장의 지시에 강력하게 대처하는 오 과장의 모습은 속이 시원할 정도였습니다. 회사에서 이런 상사가 있다면 참 든든할 것이라는 행복함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물론 회사에서 성공은 보장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이 사건은 신입사원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오 과장을 믿고 따르는 장그래가 먼저 움직였고, 자원팀 안영이는 혼란스러운 틈 속에서 오리지널 B/L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2달 전 인턴사원으로 일하면 B/L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장백기는 중간에서 침묵을 선택합니다.
"화내는 게 아니라 자학하는 것 같아요",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남자 여자가 나뉠 수는 없다. 그저 양심의 문제다. 알고도 안 하는 사람과 알기 때문에 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라는 대사는 <미생>5회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가선 대사들이었습니다.
안영이가 사실을 알고 장그래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화가 아닌 자책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그녀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선택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화가 나서가 아니라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자학을 하는 오 과장을 위해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드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워킹맘이자 원조 알파걸이었던 선 차장에게 뜬구름 잡는 듯한 질문이었지만, 그런 안영이의 질문에 핵심을 꼭 집어 답변을 한 선 차장의 양심의 문제는 그녀에게 결심을 굳히게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오 과장에게 먼저 그 사실을 알려준 이가 있었고, 그는 장백기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상황에서 신입사원들은 큰 사건을 통해 그렇게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었습니다.
대포 집에서 오 과장과 장그래가 술을 마시는 과정에서 말없이 이어지는 상황만으로도 충분했던 둘 만의 장면은 <미생>이 찬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였습니다.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고 묵직한 표정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연기이기 때문입니다.
<미생>이 참 디테일 하다는 사실은 대포 집에서 주인공들인 오 과장과 장그래만이 아니라 뒤에 앉아 술을 마시던 남녀의 연기 역시 압권이었습니다. 설렘이 가득한 여성의 표정과 몸짓 속에서 현장의 분위기가 어떨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바쁜 아침 정신없이 회사로 향하려 문을 열던 오 과장은 멈칫합니다. 자신의 집 앞에 술에 취해 잠든 장그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장님을 집까지 모셔다드리고 자신은 취해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잠이 들어버린 장그래. 양복 상의는 선 차장의 딸을 위해 벗어주고 와이셔츠 차림에 널브러져 잠이든 장그래. 그는 침까지 흘리며 숙면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산발이 된 머리로 깨어나 정신없어 하는 장그래와 그 모습 자체가 흐뭇한 오 과장과 가족들의 모습은 이 드라마가 얼마나 따뜻한지도 알게 했습니다.
생생한 직장생활보고서까지 겸하는 <미생>은 탄탄한 원작의 힘만이 아니라 그림을 영상으로 만들어 낼 때 어떻게 하면 가장 큰 효과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지 그 방법을 알고 있는 전문가들로 인해 빛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모두가 감탄할 수밖에 없는 연기자들의 선택과 그들이 보여주는 연기력들은 <미생>을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네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미생>은 진정한 웰 메이드 드라마였습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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