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를 요구하는 바이어를 상대하는 오 과장의 신념과 영업 앞에서 고민하는 과정은 우리를 들여다보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주도면밀했던 술접대 작전은 술고래 앞에서 무력화되며 최악의 위기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성사시켜야만 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살신성인은 애달픈 직장인들의 일상이기도 했습니다.
비바 오 과장 그의 신념을 응원한다;
장백기의 방황과 성장하는 안영이, 영업 3팀이 만들어낸 웃픈 직장인의 현실
이성민이 연기하는 오 과장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그 흔한 직장인의 모든 것을 담고 있어 서글퍼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완벽하게 모든 것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성민은 진짜 연기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너무나 생생한 그래서 서글프기만 한 오 과장의 삶은 우리의 거울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웃긴 초반과 서글픈 중반, 그리고 슬픈 후반으로 이어진 <미생>은 8회에서 모든 재미를 다 보여주었습니다. 2차 접대를 강요하는 바이어를 외면하기 위해 묘수를 짜내는 오 과장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재미있기만 했습니다. '중동 메카폰' 사업을 성사시키라는 부장의 요구와 오 과장이 거부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영업 3팀의 모습은 웃겼습니다.
직장인의 신념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들이 지난 7회부터 화두가 된 상황에서 오 과장의 신념이 그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오 과장이 '중동 메카폰' 사업을 받지 않으려는 이유는 문충기 대표의 2차 접대 요구 때문입니다. 접대 문화 자체를 거부하는 오 과장에서 심지어 2차까지 요구하는 문 대표는 요주의 인물이자 증오하고 거부하고 싶은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영업 3팀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오 과장은 그 사업을 받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었습니다. 부장의 강압에 맞서 사업을 받지 않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간절했고, 보는 이들에게는 웃길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진행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도망치려던 오 과장에게는 부장이 내민 법인카드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장그래에게 지시해 유통기한을 넘긴 우유를 심지어 햇볕에 4시간 이상 묵혀 배탈이 나도록 하려는 그들의 노력은 서글픔으로 다가올 정도였습니다.
강한 유산균의 힘만 느낀 영업 3팀의 허망한 동반 화장실 행의 끝은 결심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오 과장을 움직인 것은 바로 김동식 대리였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하는 하지만 자신으로 인해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김 대리를 위해 그는 그 거래를 받기로 결심합니다. 다만 2차 접대가 아닌 1차에서 사인을 받기 위한 전략을 세우는 것으로 부장의 제안을 수락합니다.
접대 문화에 누구보다 능숙하다는 한석율에게 전략을 들으며 대비를 하던 그들을 놀라게 한 것은 끝이 없는 안영이의 능력이었습니다. 한석율의 다양한 의견들마저 무기력하게 하는 안영이의 대안은 가장 현명한 결론이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결전의 날 숙취 해소에 좋다는 약까지 먹고 전쟁터로 나선 그들에게는 시작부터가 난관이었습니다.
영업 3팀 역사상 가장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접대 전략은 시작부터 완벽한 문충기 대표의 흐름으로 이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술자리를 주도한 문 대표로 인해 사전 준비까지 철저하게 했던 영업 3팀은 복구 불능의 상태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충성을 다해 바이어 접대에 여념이 없는 그들은 새벽이 다 되어서 접대의 마지막인 2차까지 완료한 후에야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이미 쓰러진 김 대리와 자신의 신념마저 버리고 접대에 매진한 오 과장. 그런 둘을 챙기던 장그래에게 자신의 지갑에 있던 돈을 다 꺼내주며 챙기던 오 과장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돌아가는 모습은 측은하기까지 했습니다. 접대를 위해 바지 위로 신었던 검은 양말과 굽은 등, 그리고 흔들리는 발걸음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고달픈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영업을 위해 신념까지 버렸다고 생각한 장그래는 다음 날 반전에 놀라고 맙니다. 오 과장이 2차에 보낸 인물은 접대부가 아니라 바로 문 대표의 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2차 접대를 부인에게 받은 문 대표에게 성공적인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렵기만 했습니다. 부장은 노발대발하고, 통쾌한 복수를 했다고 즐거워하는 오 과장과 그런 그의 반격에 당황한 김 대리와 장그래의 모습은 한 편의 코미디 같았습니다.
연이은 고된 일로 힘겨운 오 과장의 모습은 그들의 쉼터인 옥상에서 그대로 전달이 되었습니다. 술로 지친 장을 달랜다며 캔 맥주 한 잔을 마시던 오 과장은 그대로 잠이 들고 맙니다. 마치 방전된 인형처럼 축 늘어진 오 과장과 쏟아지는 맥주의 모습은 안쓰럽기만 했습니다.
쏟아지는 맥주와 코피, 그리고 침까지 오 과장의 힘겨움을 상징하는 이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왜 많은 시청자들이 이성민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는지 잘 보여주는 명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자상한 아버지, 회사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어 능력을 인정받아야만 하는 회사원. 그 힘겨운 중책을 맡아 최선을 다해 달려가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가 바로 오상식 과장이었습니다.
자료에 답이 있다던 오 과장은 그 안에서 신념을 무너트리지 않고 계약도 따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실질적인 오너가 문 대표가 아닌 부인이라는 사실과 결혼기념일이 바로 접대일이라는 사실을 교묘하게 엮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낸 오 과장은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이끌어냈습니다.
실적을 위해 서로의 등에 칼을 꽂기도 하는 그들이지만 오 과장의 몸이 안 좋다는 말에 서둘러 그의 안부를 묻고 찾는 모습에서 진한 동료애를 느끼기도 합니다. 비열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자신의 실적만 따지던 부장이지만 부하 직원인 오 과장을 위해 건강검진 재검과 바이어를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그를 위해 말린 장어를 전하는 모습에서는 그래도 버틸 수 있는 힘은 그런 곳에서 나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8회 말미에 등장한 영업 3팀에 충원된 박 과장을 보며 당혹해 하는 오 과장의 모습에서 다시 한 번 시련이 몰아닥치고 있음을 감지하게 합니다. 안영이는 자신의 능력으로 따낸 탄소 건에 대리가 딴지를 걸며 마음고생을 하게 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한상율의 조언과 장그래의 이야기 속에서 해법을 찾은 안영이와 달리, 장백기는 혼란스러움 속에서 헤드헌트를 만나게 됩니다.
자신을 그저 미워하기만 한다고 느낀 장백기는 사실 장그래를 보며 자괴감을 느끼고 있기도 했습니다. 고졸 검정고시가 전부인 그도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자신만 도태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그에게 다른 결정을 하도록 강요하게 했으니 말입니다. 장백기의 이런 혼란이 어떻게 결정될지 알 수는 없지만 신입사원들의 성장은 그렇게 커다란 성장통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영혼 없는 일개미가 되지 않기 위해 신념이 필요한 것이라는 장그래의 말. 고시대 유물처럼 취급되는 그 신념이라는 단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던 <미생>은 역시 최고였습니다. 주변 인물들의 캐릭터 구축과 새로운 등장인물들을 통해 다른 에피소드들을 연결하는 과정도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감춰져 있던 안영이의 과거가 조금씩 드러나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신입사원들과 직장인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미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최고라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신념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는 오 과장.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우리는 신념이 사라진 영혼 없는 일개미로 전락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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