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현의 복귀작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갈수록 작가의 한계가 드러나는 듯하다. 초반 흥미로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과 동화, 그리고 극단적 캐릭터 등으로 화제를 모았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는 쓸 내용이 없다는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둘이 만나 서로 사랑하고 자신들을 감싸고 있던 모든 트라우마를 걷어내 진정한 성인이 되어 자신이 삶을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미 쓸 내용을 다 썼는지도 모르겠다.
후반으로 넘어가며 이야기는 정체되고, 중요하게 사용하는 에피소드는 재미가 없다. 일정 측면 교조적인 느낌마저 나는 에피소드들은 차라리 하지 없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에피소드들이 중요한 이유는 이를 통해 주인공들이 성장해가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충돌하고 이를 통해 상대에게 배워가는 과정들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 과정이 제대로 그려지지 못하면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곽동연이 특별 출연해 벌인 사건들에서도 드러났지만, 이런 에피소드를 그려내는데 문제가 있음은 정신병동의 환자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강은자를 통해 부모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주정태와 이아름을 통해 사랑을 언급하는 과정 자체가 문제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과정이 흥미롭게 다가오지 못한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강태와 문영이 처음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고 1박을 하는 과정 속에 정태와 아름의 이야기를 결합한 것은 이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는 의미다.
당당하게 사랑하겠다는 정태의 모습을 보며 왜 사랑하는데 헤어져야 하느냐는 문영의 질문과 속단하지 말라는 강태의 대화들 속에서 이들의 감정선과 향후 이들의 이야기에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9회와 10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가온 것은 분노한 상태였다. 선택적 기억만 가지고 있는 상태는 자신을 버리고 문영과 여행을 갔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병원에서 자신을 보러 온 강태 앞에서 극단적 반항을 했다.
자신을 죽이려 했다며 공격하는 행위는 자해나 다름없다. 그만큼 상태에게는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다. 강태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는 상태에게 이 변화는 불편하다. 더욱 자신만 생각해주던 어머니가 사망한 후 그 역할을 하던 강태마저 떠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을 수도 있다.
상태의 이 행동은 복합적이기는 하다. 짝꿍이라며 친근함을 보인 문영에 대한 사랑과 자신만 바라보고 돌봐야 하는 강태가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에 대한 불편한 감정이 공존하고 있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삼각관계처럼 다가오기도 하는 상황이다.
다층적인 삼각관계가 등장하지만 긴장감은 제로다. 강태를 두고 벌이는 문영과 주리의 관계는 이미 끝났다. 주리의 캐릭터가 무너지며 더는 존재감이 없다. 뜬금없이 출판사 사장과 엮기 위해 노력하는 그 과정이 더 기괴하게 다가올 정도다.
술버릇만 나쁜 존재로 그려진 주리라는 점에서 씁쓸하기만 하다. 출판사 사장에 속아 그곳까지 온 유승재의 존재감 역시 회를 거듭할 수록 왜 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전형적인 주인공 곁의 감초 캐릭터이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문영의 어머니는 환자인 박옥란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작가의 성향을 보면 문영의 어머니를 크리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 않다면 연극배우인 박옥란을 앞세워 의도적으로 분위기를 이끌고, 마지막에 등장해 깜짝쇼를 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이럴 경우 강태 어머니가 당한 의문의 죽음이 무엇인지 모호해질 수도 있다. 상태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라고 몰아갈 가능성도 보인다. 강태에게 애정을 주는 모습을 보고 엄마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상태가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도 존재하니 말이다.
자신이 한 행동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벌였다고 이야기를 해도 무방한 상황이다. 중요한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문영 어머니의 존재는 노골적으로 박옥란을 드러내며 오히려 아닐 가능성만 키웠다. 이는 회를 추가하는 역할만 할 뿐 그리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김수현의 복귀작으로 큰 기대를 받았지만, 의외로 후반부 들어가며 흔들리는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어른 아이들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지리멸렬 해지는 이야기는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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