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숙 작가가 <상속자들>을 하이틴 격정 로맨스라고 했던 이유는 12회 폭발하듯 드러났습니다. 그 지독한 사랑을 보여준 탄과 영도, 그리고 원이 보여주는 사랑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분이 될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김은숙 작가 특유의 재미와 젊은 배우들이 풀어낸 사랑에 대한 강렬함은 대단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탄의 용기;
탄과 영도 그리고 원이 벌이는 사랑, 그 지독한 사랑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
도로 위에서 은상의 손을 잡은 탄과 영도의 모습은 상징적이었습니다. 한 여자를 두고 벌이는 두 남자의 사랑을 한 프레임으로 잡아낼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손을 잡고 힘겨운 길을 함께 가자는 탄과 결코 손을 잡지 말라는 영도, 그런 탄이의 손은 악수로 받아내며 마지막을 이야기하는 은상의 모습은 <상속자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재미의 근원이었습니다.
탄이 앞에서 당당하게 마지막을 이야기하던 은상은 영도 앞에서는 한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탄이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은상과 그런 은상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각인시키고 싶었던 영도 사이의 그 미묘한 감정의 순환들은 지독한 사랑을 시작하는 화학반응의 시작이었습니다.
1. 원과 현주의 현실, 그 지독한 사랑은 이제 시작이다
제국그룹이라는 거대한 부를 물려받을 존재로 태어난 탄이지만 그에게는 씻을 수 없는 근원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호적에도 함께 올라가지 못한 친 어머니를 따로 두고 있던 탄이에게는 이는 풀어야만 하는 숙제였습니다. 영도와 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이런 자신의 약점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약점을 붙잡고 혹은 숨긴 채 평생을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 탄이 행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경영권을 차지하려는 원과 그래서 탄을 멀리하는 상황 속에서 탄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사자 새끼를 강하게 키우듯 벼랑 밑으로 밀어버리고 살아남은 새끼를 키우겠다는 원과 탄의 아버지의 의지로 인해 그들은 형제이면서도 형제일 수가 없었습니다.
숙명적으로 배다른 형제로 태어나 운명처럼 제국그룹을 차지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이들은 그래서 가까워져서는 안 되는 존재였습니다. 탄이가 경영에 대한 관심이 없어도 그 존재만으로도 원을 위협하고 흔드는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원에게 탄은 위험하고 불편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탄을 밀어내기만 하던 원의 속마음은 달랐습니다. 원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 지켜내고 싶은 사랑인 현주에게서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도 새어머니도 마음 둘 곳이 없었던 원이 유일하게 편안함을 찾고 기댈 수 있는 존재인 현주는 탄이가 은상을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고아로 자라 제국그룹의 후원으로 공부했던 그녀를 어린 시절부터 보고 자랐던 원은 자연스럽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진 것은 없지만 현주만한 존재는 없다고 원은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벌들의 짝짓기 문화에서 현주는 감히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원이 제국그룹의 지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현주와 결혼을 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 현주의 운명은 탄이의 엄마와 같은 운명일 수도 있습니다. 앞에 내세울 수 없지만 정말 사랑하는 여인을 곁에 두고 살아야 하는 지독한 운명 말입니다. 결혼을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그들에게는 보여 지는 부가 전부일 뿐이었습니다.
원의 사랑을 막기 위해 현주를 세상에 알리고 제국고라는 지옥으로 몰아넣는 아버지 앞에서 분노하는 원은 그 순간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자신이 아직 하지도 못했던 고백을 아버지가 대신하는 상황 속에서 홀로 앉아 눈물을 흘리는 현주를 바라보는 원의 모습은 참혹할 정도였습니다. 원이 어떤 선택을 할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그 선택은 원의 아버지인 김 회장이 원하는 모습은 아닐 것이라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탄을 처음보자마자 알아 본 현주와 그런 현주가 이상하고 궁금했던 탄은 정류장에서 원의 마음을 알게 됩니다. "내 동생은 다정하고 솔직하며, 키도 많이 컸다. 그리고 눈이 나와 똑 같다"는 말을 해줬다는 현주의 말은 탄이의 마음을 크게 흔들었습니다. 항상 자신을 밀어내기만 하던 형이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는 사실이 먹먹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2.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은상을 사랑하게 된 영도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 많은 것을 양보해야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상속자들은 원과 탄이 만은 아니었습니다. 많이 가져서 어린 시절부터 힘들고 아프게 자라야만 했던 영도는 사실 가장 아프고 상처 많은 존재였습니다. 언제나 승자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로 인해, 무조건 승리하는 방법만 강요받아왔던 영도에게 사랑은 사치였습니다. 자존심이 친구를 원수로 만들었고,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도 볼 수 없게 했습니다.
바람난 아버지를 들킨 어린 영도는 자신이 더는 초라해지지 않기 위해 탄이의 솔직한 고백을 공격의 도구로 삼아 버렸습니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은 결국 둘 사이를 원수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남의 상처를 건드린 영도는 어렸습니다. 어렸기 때문에 자존심만 앞세웠고, 그런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악착같이 독해야만 했던 영도는 그래서 늘 혼자였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항상 편의점에서 라면을 사먹는 그에게는 진정 그를 위해주는 존재란 없었습니다. 아버지마저 자신의 외로움은 이해하지 못했고, 오직 자신의 삶과 사업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외롭게 살아가야 하는 그에게 분노는 자신보다 못한 친구들에게 쏟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3년 전 탄이처럼 말입니다.
지독할 정도로 무너지고 있던 영도를 되살려 놓은 것은 은상이었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피자 배달을 하던 은상을 편의점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던 은상을 봤던 영도는 그녀에게서 어쩌면 떠나버린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봐왔던 세상과는 너무 다른 은상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살아야만 하는 가치로 다가오는 것 역시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은상이 누구이고, 그녀의 현실이 무엇인지를 모두 알아버린 상황에서도 영도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 모든 것을 알게 된 현실은 영도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자신이 생각해왔던 다섯 가지의 가능성을 넘어선 여섯 번째인 가사 도우미의 딸 은상. 덧붙여 언어장애까지 가진 어머니를 둔 은상의 실체를 알고 나서는 더욱 그녀를 사랑하게 된 영도는 지독한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아픔도 힘겨워 주체할 수 없는데 어떻게 은상의 아픔까지 건드릴 수 있느냐는 영도는 "나는 그냥 네가 가서 쓸쓸했고, 돌아와서 좋고 너의 비밀은 무겁고"라고 자신의 마음을 고백합니다. 그 모든 것을 알고도 그 무거운 비밀을 지켜주고 싶은 영도의 마음은 그저 국수나 먹자는 말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방법마저도 서툰 영도는 그렇게 슬프고 아픈 존재였습니다.
사랑도 한 번 해보지 못한 영도에게 은상은 단순한 사랑 그 이상이었습니다. 탄과 막히고 얽힌 관계를 풀어내는 하나의 방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영도의 은상에 대한 사랑은, 그가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사랑은 없는 지독한 상속자로 키워진 영도가 과연 은상을 통해 어떤 사랑을 만들어갈지도 궁금해졌습니다.
3.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당당한 사랑을 선택한 탄
자신의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를 수 없고, 형을 함부로 찾을 수도 없는 존재인 탄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삶의 목표도 없고 그저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겹기만 한 탄에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은상은 중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전부가 제국그룹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거대한 상황에서 그는 그 모든 것이 지독할 정도로 힘겹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탄이에게 은상은 그 기준을 세워주었습니다. 그리고 은상은 단순한 기준만이 아니라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는 힘까지 준 존재였습니다. 부를 상속하기 위해 맺어진 약혼은 탄이에게는 족쇄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아버지에 의해 키워진 부를 상속하고 키워나가는 하나의 부품으로 완성되는 과정일 뿐인 약혼이었기 때문입니다.
탄이 성장하고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넘어서야만 했고, 그런 거대한 산을 넘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용기는 바로 은상을 만나면서 가지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던 그녀. 하지만 그 처절함 속에 담긴 진정한 가치를 알고 있는 탄은 그녀에게서 자신을 봤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발견한 자신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은 탄은 모든 것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친했던 영도에게 자신의 비밀을 밝히며 무너졌던 우정은 은상과의 사랑을 통해 조금씩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서로 너무 닮아서 싫었던 탄과 영도는 한 여자를 사랑하면서 결국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독한 원수가 되어버린 둘 사이를 하나로 이어주는 존재는 은상입니다. 은상을 통해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이고 어떤 위치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은상을 통해 서로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알게 되는 과정은 그들에게는 하나의 성장통이기도 합니다. 영도가 은상을 통해 탄을 압박하는 것 역시, 탄이와 화해를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기교가 없는 영도와 탄이 거칠게 서로가 다가서고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만 말입니다.
형의 여자 친구를 통해 형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된 탄은 망설일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자신에게 보였던 차가움은 가식이었고, 형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스럽게 바라보는지 알게 된 탄은 더욱 이번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라헬과 결혼을 하게 되면 평생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를 수 없고, 어머니 역시 자신을 숨긴 채 살아야 하는 상황을 탄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더욱 자신이 사랑하는 은상을 위해서라도 탄은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두에게 밝혀야만 했습니다.
라헬과 그녀의 어머니를 집으로 초대한 탄은 이사장이자 호적상 어머니인 지숙에게 물벼락을 맞고 서럽게 우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들 앞에 나섰습니다. 더 이상 화려하게 치장만 된 방에 갇혀 살도록 할 수 없다는 탄이의 용기는 모두에게 혼란을 안겨주었습니다.
탄이의 어머니나 은상의 어머니는 서로 가진 것이 다를 뿐 닮은 존재였습니다. 자신을 부정당한 채 오직 돈으로 화풀이를 하고 살아야 했던 기애나 딸을 키우기 위해 입주 가정부가 되어 좁은 방에서 살아가야 하는 희남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둘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서로의 처지가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은상을 사랑하게 되고, 그런 은상의 처지를 보면서 더욱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게 된 탄이의 선택은 대단한 용기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숙이 원에게 이야기를 했듯, 18살 생일에 엄청난 주식을 물려받아 제국그룹의 최대 주주가 될 수 있었던 탄은 스스로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당연하게 다가오는 엄청난 부보다는 솔직하게 사랑할 수 있는 이들과 함께 하는 삶을 선택한 탄의 행동은 그래서 대단하게 다가왔습니다.
거대한 쓰나미와 같은 폭풍을 견뎌내고 은상 앞에 선 탄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습니다. 누구보다 탄을 잘 알고 이해하는 은상 역시 그저 눈물 흘리는 탄을 바라보며 함께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그래서 대단했습니다. 열 마디 말보다 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이들은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재벌이라는 틀을 쓰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이 풀어내고 있는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일 뿐입니다. 사랑 앞에 조건이 우선되고, 그런 조건들로 인해 사랑마저 하나의 수단이 되어버린 세상에 <상속자들>이 던지는 사랑은 그래서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재벌이라는 수단을 통해 사랑의 가치를 다시 깨닫게 하는 김은숙 작가의 메시지는 역시 대단했습니다. 과연 이민호, 김우빈, 최진혁이 어떤 사랑을 해나갈지 기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강렬했던 12회였습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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