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 악해서 매력적인 영도와 스스로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탄이 함께 사랑하는 여인 은상의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물론 익숙한 삼각관계가 뭐 특별할 것이 있느냐는 생각이 들지만, 김은숙 작가가 보여주는 재벌가의 이야기는 로맨스 뒤에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기만 합니다.
탄과 영도의 아프고 슬픈 성장기;
사랑마저 비즈니스가 될 수밖에 없는 재벌들의 속살들이 좀비와 같다
자신이 혼외자라는 사실을 약혼자와 부모에게 적나라하게 밝힌 탄이의 모습은 대단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엄청난 부를 손에 쥐고 평생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탄이가 그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선언은 결코 쉬운 결심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호형호제도 못하는 탄이가 더는 그렇게 스스로를 감추고 살아갈 수 없다고 결심하고 행한 결심은 일파만파 분열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재벌들도 모자라 2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무조건 비난만 하는 이들은 분명 <상속자들>을 봐야만 합니다.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이 드라마는 단순히 재벌 2세들의 화려함이 아닌,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재벌들의 한계만 명확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재벌이라는 무엇이고, 그런 재벌의 가치라는 것이 우리사회에 무엇인지를 흥미롭게 드러내는 이 드라마는 분명 흥미롭습니다.
<상속자들>은 분명 하이틴 격정 로맨스입니다. 그리고 그런 격정 로맨스를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민호와 김우빈이라는 현존 최고의 비주얼 콤비에 수많은 젊은 스타들이 대거 등장하는 이 드라마는 분명 매력적입니다. 약점도 존재하지만 그 보다 큰 강점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로 분류할 수도 없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결코 변할 수 없는 틀 속에서 살아가는 재벌들의 삶은 뻔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부를 되물림하기 위한 방법만 생각하는 이들의 삶 속을 색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하는 것은 분명 흥미롭습니다. 이 견고한 틀은 탄이라는 인물이 무너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틀을 깨는 탄이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 이유 역시 지난 회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도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아버지의 분노에 아무렇지도 않게 스스로 모든 것을 던지고 집을 나서는 탄이의 모습은 <상속자들>이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는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낸 탄이로 인해 재벌들의 속살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탄이와 라헬의 약혼은 철저하게 기업 대 기업의 윈윈 전략의 일환이었습니다. 이번 약혼과 결혼을 통해 두 그룹이 서로 성장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겠다는 의지는 일상적인 재벌들의 결혼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들에게는 결혼마저도 비즈니스라는 점에서 <상속자들>에서 드러나는 이들의 모습은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재벌들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과정과 장면은 파혼을 선언하고 나온 그들 부모의 행동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의 파혼으로 인해 받을 상처에 대한 고민보다는 그들이 얻을 수 있는 득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일반적인 부모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들이 어떤 방법을 생각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재산을 늘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만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결혼이라는 틀을 통해 재산을 증식하려는 그들이 파혼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상황에서 어떤 대처를 해야 자신들이 이득을 보는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전부였습니다. 아이들이 느낄 수밖에 없는 아픔이나 마음의 상처는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자신이 가진 재산을 지키고 늘리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탄의 호적상 어머니인 정지숙이 탄이를 불러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토로는 재벌가들의 행태가 어떤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었습니다. 돈을 쫓는 그들에게는 돈에 집착하는 이들로 인한 전쟁이 격렬하게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대한민국 재벌들의 형제의 난은 끊임없이 있어왔고, 그 결과의 승자는 패자를 악랄할 정도로 짓밟는 것이 현실입니다. 재벌 2세를 넘어 3세와 4세로 넘어서며 재벌 가족들의 숫자가 늘어가며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하나였습니다.
더는 만들어낼 수 없는 부를 보다 확장하기 위해 동네상권까지 치고 들어오는 그들에게는 상도덕도 염치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보다 넓은 세상에 나갈 용기나 능력은 없고, 이미 깔려진 판에서 돈으로 돈을 버는 그들의 악랄함은 대한민국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상속자들>에서 보여지는 재벌들의 속내는 현실적이어서 반갑습니다. 물론 핵심이 되는 탄과 영도가 은상을 좋아한다는 설정은 어디엔가 있을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비현실이라고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탄에게 받았던 분노를 어떻게 풀어내지 못하던 라헬은 뒤에서 자신을 욕하던 예솔을 통해 풀어냅니다. 제국그룹이 세운 사립학교인 제국고에서는 사배자들이 존재합니다. 국가의 정책인만큼 어길 수는 없지만, 이 사립고에서 사배자는 육식동물들인 그들에게는 사냥감일 뿐이었습니다.
탄이 시작했고, 영도가 이런 전통을 이어왔고 이제는 라헬이 행하고 있었습니다. 사배자들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는 재벌들이 국민들을 대하는 태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어차피 학교라는 제도는 할 수 없어 다니는 것이지만, 그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이미 일반인들과는 완벽한 차이를 보이며 살아갈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들이 웃으며 즐기는 이런 행위들은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즐기는 습관이자 살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자신의 형제들마저 배신하면서까지 재산을 차지해야만 하는 그들에게 학창시절 사배자는 좋은 놀이 감이자 실전 모델일 뿐이었습니다. 사자 새끼들은 서로 장난을 치며 사냥 기술을 익히지만, 대한민국의 재벌 자식들은 사배자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우월함과 돈 권력의 맛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다는 사실은 참혹하지만 현실입니다.
서울대 입학생의 높은 비율이 강남 부자들의 몫이 되었다는 최근 보도 역시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오직 그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길러진 아이들이 기계적인 습성을 통해 좋은 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이상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극중 검찰총장 아들인 효신이 어머니에 의해 스스로 부정한 면접을 다시 보는 과정에서도 그들이 집착하는 학벌에 대한 갈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다가옵니다.
스스로 자신들의 귀족이라 여기고 돈의 크기에 따라 급을 나누는 그들의 삶은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교육을 통해 얻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배우는 것이라고는 신 계급사회에서 어떻게 더 많은 부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만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그들 사회에서 탄이의 등장은 돈키호테나 다름없습니다. 대한민국의 1위 재벌의 아들인 탄이 스스로 그 틀 속에서 나와 버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상징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들어준 보험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보험이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되잖아요"라며 자아를 찾으려 노력하는 탄이의 모습은 대단하게 다가왔습니다. 현실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탄이는 분명 드라마이기에 가능한 가상의 존재였습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평생을 쓰고 죽어도 다 못쓸 엄청난 재산을 아무런 노력 없이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는 그들의 삶 속에 탄이는 그저 드라마 속의 주인공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재벌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현실감이 떨어지는 탄이와 영도의 대결과 사랑은 더욱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집을 나간 은상을 위해 아무런 망설임 없이 집을 나선 탄은 명수의 작업실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그리고 함께 등교하는 학교에서 용기를 내 탄이의 손을 잡는 은상은 그들이 이제 본격적인 로맨스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은상이 일하는 곳을 통 채로 빌린 영도는 그렇게라도 은상과 가까워지고 싶었습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책으로만 배웠던 영도에게 은상이라는 존재는 특별했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진실함과 따뜻하게 불러주는 이름 속에서 영도의 사랑은 당연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재벌이라는 편견과 사회가 만들어낸 틀 속에서 그저 하나의 소모품이 되어가던 영도는 은상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탄이와 비슷하게 영도 역시 자아 찾기에 나섰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탄이 서자라는 사실을 알고 영도를 찾아 따지는 라헬에게 비밀을 지키고 있고 앞으로도 그 비밀을 깨지 않겠다고 이야기하는 영도는 외로운 존재였습니다.
자신의 아픔을 감추기 위해 친구를 버린 자신에 대한 벌을 그는 스스로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하는 효신처럼 영도에게도 삶이라는 너무나 가벼워서 가치가 없어 보였습니다. 자신의 미래는 스스로 증오하는 아버지의 삶과 조금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확신하며 무기력하게 살던 영도에게 은상이라는 존재는 도망가 버린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영도가 은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은상이 자신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학교 방송실을 통해 탄이의 비밀을 밝히려는 시도 역시 그저 은상을 보고 싶은 영도의 장난일 뿐이었습니다. 자신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은 은상에 대한 보복도 아닌, 단순히 은상을 다시 보려는 행동일 뿐이었습니다. 차인 후 모두 부숴버려도 되느냐는 말과 함께 은상은 자신이 힘들어 괴롭히지 않겠다던 영도는 탄이를 포함한 자신까지도 모두 파괴해버리겠다고 공헌합니다.
영도의 이런 발언 속에는 그동안 지켜오려 노력해야만 했던 상속자들의 모든 권리를 스스로 무너트리겠다는 의도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의 치기라고 불릴 수도 있겠지만, 탄이에 이어 영도마저 알을 깨고 나오겠다는 다짐을 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그래서 흥미롭기만 합니다.
좀비처럼 죽지도 않은 채 오직 산사람을 탐하는 모습은 재벌들의 속살과도 닮아 있습니다. 죽이려 해도 죽일 수 없는 그러면서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죽이는 것이 그들이 사는 목적이 되는 것 역시 닮았습니다. 재벌들이 드러낸 속살들과 알에서 깨고 나선 탄과 영도가 과연 어떤 대결구도로 이어지게 될지 궁금해집니다.
많은 등장인물들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혀있는 이야기들과 관계들 사이에서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는 재벌들의 속내들은 흥미롭습니다. 은상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탄과 영도의 이야기가 과연 어떻게 결말을 만들어낼지 알 수가 없습니다. 탄이의 반항에 맞춰 원이의 반란도 함께 시작된다는 점에서 <상속자들>의 후반전은 우리가 봤던 것을 모두 잊게 만들 정도로 흥미롭게 전개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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