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열연으로 돋보였던 드라마 <악마판사>가 16회로 종영되었다. 가상의 세상에서 벌어진 우리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수많은 국민들은 촛불을 들고 정권교체만이 아니라 사법개혁도 강력하게 외쳤다. 국민들에게 사법부는 경멸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절대적 가치로 여기는 사법부를 제대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컸다. 하지만 검찰개혁 하나도 결코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조직의 저항이 국가 전복에 버금가는 방식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사법 개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현재까지도 깨닫고 있는 중이다.
민 대법관의 모습을 보면 단박에 떠오르는 이가 있을 정도다. 고귀한 판사처럼 행동했지만 온갖 권력욕에 휩싸여 자기 위치도 모른 채 날뛰는 정치에 미친 자를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만큼 <악마판사>는 현실을 적절하게 잘 반영한 드라마이기도 하다.
재단에 속아 요한을 팔아버린 가온은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처럼 생각했던 민 대법관이 권력욕에 빠져 재단의 하수인으로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가온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오해했던 요한은 엘리야를 지키기 위함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요한, 그리고 엘리야를 위해서라도 모든 것을 바로 잡아야 했다. 그래서 민 대법관에 분노하기도 했던 그는 당장 요한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가증스럽게 정의를 외치던 자와 달리, 요한은 냉소적이지만 사회의 문제가 뭔지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모든 것을 통제한 상황에서 가온은 직접 불구덩이 속으로 볏짚을 지고 들어가려 한다. 가장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는 곳에 분명 그들이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을 것이란 합리한 의심 때문이었다.
이들이 가장 신중하게 감시하는 공간은 '꿈터전 병원'이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군인들까지 경비를 서고 있다. 이는 그곳에서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가온은 힘겹게 내부로 들어갔다.
의사로 가장해 현장을 바라본 가온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강제 이주시킨 도시 빈민들을 상대로 불법 임상 실험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염병을 언급하며 도시 빈민들을 강제 철거와 납치를 한 이들을 그들을 실험용 동물로 사용 중이었다.
다른 국가에서는 임상 실험을 할 사람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실험체가 많다는 것은 엄청난 이득을 볼 수도 있다는 의미다. 허중세의 주도로 박두만, 민용식 부부들이 진행하는 '농장'이라 불리는 그 병원은 국민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는 정부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부산 형제복지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정부가 지원해서 국민들을 납치해 온갖 폭행과 살인을 일삼으며, 노동력 착취를 했던 사건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온갖 임상실험으로 뒷돈을 챙기고, 빈민들을 희생양 삼는 행태가 정상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 안에는 인간 실험을 하는 잔인한 존재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분노하고 이를 세상에 알리려는 이들도 존재했고, 그렇게 그들의 도움으로 가온은 납치되었던 조력자까지 데리고 탈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온이 디데이로 잡은 것은 민정호 대법관이 대법원장으로 취임하는 날이었다.
검소하고 정의로운 척 온갖 가식적인 모습을 보인 민 대법원장은 가온의 포로가 되었다. 가온이 생각한 것은 폭탄으로 함께 세상을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수현을 죽이고, 온갖 가증스러운 모습으로 대중을 기만한 자를 제거하는 것이 가온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죽음으로 속죄하려는 가온을 구하는 것은 요한이었다. 가온이 이런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요한이 교도소에서 사망했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철저하게 계획된 과정일 뿐이었다. 자신을 압박하던 과거 교도소장의 약점을 잡아, 자신이 죽었다는 가짜 뉴스를 퍼트리게 만들고 나왔습니다.
요한은 이미 계획이 다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준비된 과정을 가온에게 전하지 않았다. 한번 배신한 자는 반복해서 배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가온을 품은 것은 요한이었다. 변호사를 통해 가온의 행동과 목표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요한은 그 일정에 맞춰 탈출을 한 것이다.
시범재판이 열리는 곳에 모인 재단 사람들. 그들 역시 요한이 만든 함정이었다. 약한 고리를 찾아 이용하는 것이 능력이다. 민용식에 전화해 그가 저지른 재단 자금 횡령을 빌미로 시범재판부에 모두 모이도록 유도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막힌 상황에서 유일하게 열린 DIKE를 활용하는 묘수를 선택했다.
자신들을 위해 열어둔 단 하나의 출구가 그들의 묘지가 되어버렸다. 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짜인 요한의 계획이었고, 시범재판 마지막 재판은 재단이었다. 가온이 목숨을 걸고 찍어온 영상 속 상황들은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현직 경찰을 죽음으로 내몬 자가 선아라는 사실도 밝히며, 이들의 대한 판결을 국민들이 직접 해달라 요청했다. 99%의 국민들은 이들이 유죄라 판단했다. 그리고 천만표라는 절대적 지지를 해서 뽑은 허중세 대통령에 대한 평가 역시 국민들이 해달라 요청했다.
문제의 시범재판부에 폭탄을 설치한 요한은 함께 모두 이곳에서 마무리를 하겠다고 국민들에게 밝혔다. 이 상황에서 재단 사람들이 아수라장이 되는 것은 너무 당연했다. 이 상황에서 요한은 단 한 명만 살려주겠다며 10년 전 성당에서처럼 해보라고 요구했다.
자신만 살겠다고 부부사이도 상관없이 자신만 살겠다는 이들의 모습은 추해보일뿐이었다. 이 상황에서 정선아는 총을 꺼내 들었다. 자신을 대통령으로 삼겠다는 말에 들떴던 선아였다. 물론 선아를 제거하기 위한 그들의 꼼수였지만, 선아는 오를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에 욕심을 내기도 했다.
요한에게 총을 겨눴던 선아는 말 많은 대통령을 제거하고,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리고 선아는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요한을 기억하며 눈을 감았다. 어린 시절 반짝이는 것만 보면 훔치기 좋아했던 하녀 선아는 그릇을 훔치다 깨고 말았다.
그런 선아를 보고 요한은 화도 내지 않고 "괜찮아"라는 말로 위로해줬다. 그런 요한을 잊지 못했던 선아는 이루지 못할 꿈을 꾸고 있었다. 가온까지 들어와 요한을 말려보지만, 그를 내보낸 요한은 폭탄을 터트렸다. 살겠다고 난리를 치던 자들은 그렇게 시범재판부와 함께 묻혔다.
모두가 요한도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가 엘리야를 두고 죽을 존재는 아니다. 이미 출구를 확보한 상황에서 요한은 위정자들을 묻어버리고, 엘리야의 다리를 치료해줄 국가로 떠났다. 남겨진 가온은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다.
새롭게 정권을 잡은 이들은 법사위에 가온을 초대해 요한 사건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안을 찾자고 하지만, 그들의 행태는 과거의 악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범재판부에 묻어버리고, 사법개혁을 부르짖어도 사법부 출신의 국회의원들은 변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하고 조직 이기주의에 빠진 자들에게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작가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실제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열망인 사법개혁은 이뤄지지 못했다. 아니 조금씩 변하기는 하지만 엄청난 저항에 막혀 제대로 된 개혁이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개혁을 하라고 보낸 검찰총장이 대선에 나서겠다는 희대의 코미디를 보여줄 정도다.
판사 출신 작가는 법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한 흔적들이 보였다. 우리 시대 법이란 무엇이고, 과연 정의란 어떤 것인지 수없이 반복적으로 되물었다. 하지만 작가조차도 그 답을 내놓지 못했다. 다만, 현재의 사법부는 개혁되어야만 한다는 메시지만 남겼다.
다시 강요한 판사를 불러와야 하느냐는 말처럼, 우리사회는 어쩌면 이런 악마 판사가 절실할지도 모르겠다. 돈이 있어서, 권력자라서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는 시대.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과연 정상일까? 그런 점에서 <악마판사>가 던지는 화두는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남겨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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