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서사의 시작은 온갖 마법이 펼쳐지는 시간이었다. 세 가지 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균형이 무너졌다. 탄생과 죽음, 균형을 잡는 신이 존재하지만 죽음을 관장하는 마왕이 폭주하며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 마왕을 몸에 받은 왕은 아들을 위해 마왕을 그림 속에 봉인하려 했다.
마왕을 받아들여 강력한 힘으로 지배했던 영종어용을 그리는 일에 나선 이는 최고의 화공인 홍은오였다. 그리고 마왕을 불러와 완성된 어용에 가둘 도사는 하람의 아버지 하성진이었다. 꽁꽁 묶인 영종의 몸에서 마왕을 불러내고, 그가 다른 곳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으며 영종어용에 가두는 일은 쉬운 게 아니었다.
마왕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이들을 도와준 것은 탄생을 주관하는 삼신할망이었다. 온갖 저주를 퍼부으며 분노하는 마왕으로 인해 현장에 있던 이들의 운명은 정해졌다.
운명처럼 홍은오(최광일)와 하성진의 처는 아이를 낳았다. 저주를 받은 은오의 딸 천기는 태어나면서 시각을 잃었다. 마왕의 저주를 막거나 풀어줄 수는 없었지만, 삼신할망(문숙)은 그 저주를 피할 운명의 존재를 점지해주었다. 그게 바로 도사 하성진의 아들 하람이었다.
마왕의 저주처럼 봉인된 직후부터 9년 동안 나라는 가뭄과 기근에 시달려야 했다. 먹을 쌀도 물도 부족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왕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늘에 제를 지내 비를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가뭄이 전 국토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물을 찾아내는 아이가 있었다. 기우제를 앞두고 있던 성수청의 국무당 미수(채국희)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그 아이에게 집중했다. 그리고 그 아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도사 하성진의 아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왕을 봉인하고 그 일에 가담했던 도사와 그 사람들을 처리했다. 도주하던 하성진은 벼랑에서 칼을 맞고 떨어졌다. 누가봐도 사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는 팔 하나를 잃은 채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 아들은 물을 찾아내는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기우제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가진 아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9년 만에 다시 서로를 마주보게 된 하성진과 미수는 대립할 수밖에 없었지만, 왕명마저 어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9년 전 그날 저주를 받고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은오는 길거리에서 그렇고 그런 그림들을 그려주는 일로 먹고살았다.
앞을 보지 못하는 딸 천기에게 과하게 집착하는 아버지 은오는 그렇게 운명처럼 왕명을 받고 떠나는 하성진과 재회하게 되었다. 같은 날 태어났지만 전혀 다른 운명을 타고난 어린 하람(최승훈)과 어린 홍천기(이남경)은 그렇게 처음 마주했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앞을 보지 못하는 천기를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앞을 보지 못하지만 탁월한 청력으로 사물을 시각화하는 능력을 보이는 천기. 그런 천기와 함께 그림 수업에 들어가 눈을 감고 붓질을 하는 소리로 상상을 해보는 하람은 그 모든 것들이 신기하기만 했다.
아버지들의 심각한 대화로 인해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된 하람과 천기는 행복했다. 그리고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천기는 하람을 기억하기 위해 손으로 얼굴을 매만졌다. 촉각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고, 형태를 그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재회하는 날 그 모든 것은 중요한 행동으로 다시 등장할 것이다.
국무당 미수가 준비한 기우제는 인신공양이었다. 사람을 받쳐 물을 내려달라 기원한다는 점에서 미수가 선택한 하람은 말 그대로 재물이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지만, 막을 수는 없었다. 국가적 행사를 과거의 도사가 막을 방법은 없었으니 말이다.
기우제를 드리는 상황에서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세자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던 아우는 이상한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왕이 되고 싶으면 자신을 풀어달라는 소리를 따라 향한 곳은 영종어용이 봉인된 장소였다.
누구도 열어서는 안 되는 그 문을 연 주향대군은 마왕을 풀어주기 위해 어용에 불을 질러버렸다. 왕이 되고 싶은 욕망은 그렇게 마왕을 다시 세상 밖으로 꺼내는 이유가 되었다. 마왕의 봉인이 해제되자 자신이 내린 저주가 풀렸다.
기우제를 통해 비가 내린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건 마왕의 저주가 풀려서 벌어진 결과물일 뿐이었다. 마왕의 봉인을 풀어버린 주향대군. 그리고 미수의 욕심으로 죽음 직전까지 가야만 했던 하람. 그리고 하나의 운명 공동체처럼 물에 빠진 천기는 다시 운명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이 순간 다시 등장한 삼신할망은 마왕을 하람에게 봉인하고, 마왕이 가진 힘의 근원인 눈을 천기에게 줬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운명처럼 만나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음을 언급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운명으로 엮인 하람과 천기의 삶은 그렇게 마왕에게 지배를 당하고 제거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도깨비>의 첫 회처럼 화려한 CG를 앞세워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장면이 등장했다. 마왕은 CG로 구현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마왕의 캐릭터가 어딘지 모르게 낯익다. 그리고 그 CG에 대한 호불호 역시 갈릴 수밖에 없다. 크게 나쁘지 않았지만, 눈높이가 높아진 시청자들에게 진부하게 보일 정도니 말이다.
상황을 설명하고 아역들을 통해 지독한 운명임을 이야기하는 첫 회는 선택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들이 발목을 잡으니 말이다. 의도적으로 운명적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삼각관계를 구축했다고 밝혔지만, 그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여기에 여전한 역사왜곡의 시선을 털어내기에는 첫 회는 부족한 것도 문제다.
최소 4회까지는 시청해야 드라마 <홍천기>의 진가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 점에서 2회 성인 연기자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는 중요하다. 팬덤 드라마 그 이상의 가치를 품으며 장태유 피디와 정은궐 작가의 세계관이 통할 수 있을지 알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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