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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Netflix Wavve Tiving N OTT

알쓸별잡 지중해 8회-훌륭한 건축물의 가치와 천년 대학, 그리고 레비의 174517

by 자이미 2025.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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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게도 '알쓸별잡 지중해'가 8번의 이야기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물론 서울에서 다시 한번 모이는 자리가 마련되기는 했지만, 현지에서 진행된 이야기는 이탈리아에서 끝났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마지막 이야기 역시 풍성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마지막 날은 각자 자신이 가보고 싶은 장소로 향하는 여행이었습니다. 유현준은 로마에서 가까운 휴양지 티볼리로 향했고, 김상욱과 한동일은 이탈리아 북부 도시 볼로냐로 갔습니다. 그리고 안희연은 가장 멀어 비행기까지 타고 토리노를 여행했습니다.

알쓸별잡 지중해 8회-이탈리아 여행

16세기 교황 선출에 실패한 데스테 추기경이 낙심해 지은 정원이 '빌라 데스테'입니다. 정원 건축과 수경 설계의 걸작으로 꼽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고 합니다. 500개가 넘는 분수가 있고, 무한대 선택지가 존재하는 산책로들은 신기함으로 다가옵니다.

 

기하학적 구조로 나뉜 길들은 그저 시각적 아름다움만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나무의 다름이 주는 시각적 재미와 함께 향까지 더해지며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하죠. 폭포와 분수들이 많다 보니, 그런 물소리의 청각적 자극도 흥미로운 장소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빌라 데스테' 근처의 집에서 사는 이들은 매일 그 정원을 감상하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매일 자신의 정원처럼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혜택이 될 수 있으니 말이죠. 이 정원에 대한 이야기는 당연하게 동서양의 정원 차이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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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정원들은 철저하게 수학적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미로들이나 각을 맞춘 듯 정확하게 정돈된 정원은 신비롭고 대단해 보이기는 합니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죠. 서양과 달리, 동양의 정원은 철저하게 자연적입니다.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니 말이죠.

 

근대 과학이 서양에서 먼저 시작하고 앞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김상욱 교수는 자연에서 찾아냈습니다. 서양 특히 유럽의 경우 자연환경에 큰 변화가 없습니다. 그와 달리, 동북아는 엄청난 자연재해의 지역이기도 했습니다. 온갖 태풍과 자연재해들이 수시로 일어나는 이 지역에서는 자연 친화적인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연이 크게 화를 내지 않는 지역에서는 당연히 다양한 시도들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시도들은 당연하게도 근대 과학들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는 이유로 작동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훌륭한 건축물이 많으면 전쟁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알쓸별잡 지중해 8회

세계대전이 벌어진 상황에서도 로마와 파리가 파괴되지 않았던 결정적 이유도 아름다운 건축물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서울도 아름답고 멋진 건축물들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전쟁 방어가 가능하게 만드는 이유로 작동할 수 있다는 김 교수의 발언은 충분히 공감하게 했습니다.

 

토리노로 향한 안희연 교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비행기에서 보이는 알프스 산맥이었습니다. 구름과 뒤섞인 거대하게 펼쳐진 알프스 산맥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습니다. 안 교수가 토리노를 찾은 이유는 한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주기율표로 알려진 화학자이자 작가인 프리모 레비의 생가를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레비는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까지 갔다 살아돌아온 존재이기도 합니다. 무솔리니의 '인종법'이 시행된 시절 토리노에 살던 레비는 '반파시즘 운동'을 펼치다 잡혀갔다 하죠. '반 파시스트vs유대인' 중 하나를 선택하라 요구했다고 합니다. 반 파시스트를 선택하고 바로 사형을 당하고, 유대인임을 인정하면 아우슈비츠로 끌려가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1947년 발간한 '이것이 인간인가'란 책은 레비가 아우슈비츠에서 겪은 11개월 동안의 경험을 적은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없게 만든 이 잔인한 곳에서 그가 바라본 '인간'이란 무엇이었을까요? 안 교수가 찾은 그의 집에서 87년 69세의 나이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사람들은 모두 젊은이들이라 합니다. 어린아이와 여자, 노인들은 모두 죽이고, 힘이 있는 젊은 사람들은 지독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고 하죠. 토리노에서 잡혀간 유대인 479명 중 단 30명만 살아 돌아왔다고 합니다.

알쓸별잡 지중해 8회-이탈리아 먹거리 여행

레비가 묻힌 '유대인 무덤'에는 '174517'이란 아우슈비츠 수인 번호는 많은 것들을 시사합니다. 인간다움을 철저하게 지운 그 숫자는 당시의 모든 것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가왔습니다. 스탈린에 의한 학살인 '홀로도모르' 등 수많은 학살의 기록들 중 유독 '유대인 학살'만 특별해진 이유는 다들 알고 있을 듯합니다. 

 

현대 대학의 시조새라고 불리는 대학이 있는 곳이 볼로냐였습니다. '볼로냐 대학'은 1088년 처음 문을 열었고, 올 해로 개교 937년이 되었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두 박사들이 찾은 곳은 '해부 극장'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인간의 몸에 직접 칼을 댈 수 있는 존재는 이발사가 전부였다고 합니다. 교황이 지배하는 시대 부활을 믿었던 그들의 신념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듯합니다.

 

단테도 다녔다는 이 학교의 '해부 극장'에는 저명한 의학자인 12인의 조각상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어 작지만 웅장함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발사만이 직접 해부할 수 있는 시대, 이곳에서 그 유명한 교수들은 지시만 하고 학생들은 준비된 의자에서 관찰하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해부학이 급격하게 발전하게 된 것은 흑사병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럽을 초토화시킨 흑사병이 생긴 이후에야 해부를 통해 병의 원인과 치료법이 급격하게 상승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 합니다. 해부를 통해 인간에 대해 보다 잘 알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예방과 치료 방법들도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이겠죠.

 

교황이야기가 나오자 '구마 의식'에 대한 관심도 커졌습니다. 실제 바티칸에는 '구마 학교'가 존재한다고 하죠. '악마 숭배'자들이 많다 보니, 교황은 구마 의식을 할 수 있도록 했다고 하죠. 물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고, 사제 서품을 받은 이들부터 구마가 가능하지만, 그것도 아무나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알쓸별잡 지중해 8회

특별하게 허락을 받은 자에 한해 '구마 학교'까지 수료해야만 구마 의식이 가능하다고 하죠. 그리고 '구마 예식서'도 만들어 교육을 받는다고 하니 흥미롭기는 합니다. 과거 대학이라는 곳은 법학, 의학, 신학만 가르쳤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이것만 배우면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대학이라는 존재는 국가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는 공간이란 의미이기도 합니다. 국가를 위한 기관으로 시작된 대학은 당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전 유럽으로 급격하게 퍼졌다고 하죠. 학생들 모임이 '유니버시티'였고, 교수들의 모임을 '컬리지'라고 사용했다는 것도 재미있게 다가옵니다.

 

'인쇄술' 발달로 인해 대학의 위상은 많이 흔들렸다고 합니다. 초기 대학 교수는 '강의'는 책을 읽어주는 것이었다 합니다. 자신만 가지고 있는 책을 통해 돈을 내고 모인 이들에게 읽어주는 방식으로 수업을 했는데, 인쇄술의 발달로 책이 많아지다 보니, 그 수업은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겠죠.

 

칸트는 새로운 대학 모델을 제시했고, 그가 언급한 것은 '자유 교양'이었습니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교양 수업이 칸트에 의해 정립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베를린 훔볼트 대학'은 독일식 대학으로 엄청난 성공을 했다고 합니다. 교양 수업을 하는 이 학교가 큰 성공을 거두자 19세기말에도 미국이 수입하려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존 방식으로 편하게 대학 교수직을 하던 이들로서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고, 그래서 반대가 엄청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대학원이었습니다. 존스홉킨스 대학이 대학원을 처음으로 만들어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사실도 재미있었습니다.

알쓸별잡 지중해 8회-최초의 대학 볼로냐 대학

인터넷이 일상화되면서 대학의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고 하죠.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지식을 취할 수 있는 시대 과연 대학은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더욱 현재의 대학들은 기업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만 키워내는 대학은 대학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측면이 분명 존재합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만 만들어내는 대학이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대학이냐고 되물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대학의 위기는 당연합니다. 더욱 AI가 일상이 된 상황에서 대학 수업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의미부여를 할 것인지 의아할 수밖에 없죠.

 

결국 대학의 본질로 돌아가지 않으면 대학의 위기를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교양 수없이 축소되고, 근본적인 학문들이 사장되는 대학은 더는 그 가치를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만나서 대화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가치들을 찾아내는 과정들이 대학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가장 특별함이지만, 그것만으로 대학의 위기가 해소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리고 초반 김상욱 교수가 호크니가 제기한 음모론을 언급하는 장면도 흥미로웠습니다. 카라바조라는 작가는 아주 리얼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너무 탁월한 그림이 어느 한 시기에 집중되다 보니 의심한 호크니는 책으로 낼 정도로 당시 그림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음모론을 설파하는 과정도 흥미로웠습니다.

 

광학장치를 이용해 그림을 그렸다는 호크니의 주장은 충분히 흥미로웠습니다. 아주 정밀한 그림을 빠르게 그리는 것은 뛰어난 천재라면 가능도 하겠지만, 쉬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 호크니가 당시 쓰였을 법한 방식으로 실현도 해보지만, 광학장치를 통해 그림을 그리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 역시 쉽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죠.

알쓸별잡 지중해 포스터

먹을 것이 많은 이탈리아에서 토리노의 비체린 커피나 볼로냐의 볼로네제를 그리고 최초의 피자라는 '마르게리타'를 먹는 것은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가장 큰 목적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그곳이 아니라면, 그 맛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죠. 마지막 이야기는 어떤 재미를 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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