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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옷소매 붉은 끝동 12회-덕임 향한 정조의 고백 그리고 궁녀의 삶

by 자이미 2021.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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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게 잘 풀어내는 <옷소매 붉은 끝동>은 흥미로운 전개로 이어지고 있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지만 그건 이야기 전달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만 취사선택한 결과이기도 하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다양한 상상력을 발휘해 이야기의 재미를 극대화했다는 사실이 매력적이다.

 

'생감과 게장'으로 촉발된 사달 속에서 영조는 칼까지 뽑아 들었다. 물론 그게 전부였지만 편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은 처참함 그 이상이었다. 매병에 시달리고 있던 영조는 산이를 추궁하는 과정에 손자를 아들로 착각하고 선이라 언급하며 분노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임오년 아들 선에게 분노하던 시절로 돌아간 영조의 행동에 편전에 모인 모든 대신들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영조는 자신이 뒤늦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한 상황에서 세손은 제왕으로서 마지막 직무 다해달라 간청했다.

 

마지막 직무는 왕위는 손주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조정은 둘로 나뉘고 백성들 역시 둘로 나뉠 수밖에 없다며 우려를 표했다. 왕이 선위를 하지 못하게 되면 당쟁이 격화되고 분란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하고 머리가 아프다는 영조 앞에 중전이 편전에 들었다. 중전과 함께 덕임이 편전에 들어서는 것을 본 제조상궁은 놀라서 따랐다. 덕임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금등지사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말에 덕임을 막아야 했다.

 

제조상궁이 다급하게 덕임이 헛소리를 했다며 끌어내려했지만 '금등' 이야기가 나온 상황에서 분위기는 급격하게 존재 여부에 쏠릴 수밖에 없었다. 중전과 덕임이 언급한 '금등'이 정말 존재하고 영조가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다면 모든 것은 정리될 수 있다.

 

덕임은 영조에게 임오년을 상기시키며 사도세자 사망 후 문서에 옥새까지 찍어 숨겼다며 기억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덕임은 편전 왕의 자리 뒤 '일월오봉도'에 숨겨진 것을 알고 있지만 다그치지 않고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영조 스스로 기억을 찾아 선위를 하기 바랐기 때문이다.

 

덕임의 말에 영조는 기억났다고 했다. 그리고 '일월오봉도'로 향한 영조는 그림을 찢고 안에 숨겨두었던 금등지사를 꺼내 읽어줬다. 자신이 죽는 대신 아들 산을 보위에 올린다는 약조였다. 옥새까지 찍혔고 글씨체 역시 영조의 것이라는 점에서 이를 반박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할 수 없었다.

 

범죄자의 아들은 왕이 될 수 없다는 주장으로 영조 스스로도 산에게 사도세자라는 말 자체를 꺼낼 수 없도록 했다. 그런 상황에 세손은 모든 이들이 있는 편전에서 영조에게 그게 누구냐고 묻기 시작했고 "사도세자"라는 말을 꺼내게 만들었다.

 

자신의 아들을 죽여야 했던 비정한 아비인 영조. 그럴 수밖에 없는 수만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해도 억울하게 죽은 사도세자의 아들 산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편전에서 영조가 아들이라고만 언급하던 대상을 '사도세자'라 지칭해 부르며 신원을 복원시켰다.

 

영조는 화완옹주를 편전을 불러 옥새를 세손에게 전하라 명했다. 사도세자 죽음과 연루된 막내딸에게 손자를 왕으로 선위 시키는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은 영조의 의지였다. 울며 거부하던 화완옹주도 이를 막을 수 없었고, 그렇게 영조에서 정조로 이어지는 왕위 계승은 완성되었다. 

 

산에게 선위가 이뤄지자 제조상궁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자신들 조직이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광한궁이 위기에 처하게 되자 제조상궁은 불에 탄 용포를 거두고 그 안에 숨겨진 은밀한 명단을 태워버렸다. 조직 계보가 드러나는 순간 모든 이들은 죽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제조상궁은 조카인 월혜를 불러 자신의 시간은 끝이라며 이제 네가 광한궁을 이끌라 명했다. 왕이 바뀌었다고 자신들을 모두 죽일 수는 없다는 제조상궁은 궁녀들의 삶에 대해 언급했다. 궁녀들의 빈궁함에 맞서기 위해 힘을 키우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이런 거대한 힘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게 되면 그건 원래 의도와 다른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그런 점에서 제조상궁의 궁녀 발언은 자신을 위해 호도일 뿐이다. 선위가 이뤄진 후 제조상궁은 투옥되었다. 그런 그를 영조는 편전으로 불렀고 제조상궁에게 안핵사가 복귀했다며 역모 세력에 제조상궁 이름이 있었다며 왜 그랬냐고 물었다.

 

제조상궁은 조직을 구하기 위해 개인적인 원한 때문이라 했다. 자신이 아닌 친구를 선택한 영조에 대한 원망도 있었다. 영조가 은혜를 내렸지만 제조상궁은 그런 왕의 선택에 반박했다. 사는 것보다 그렇게 궁을 떠나는 것이 더 싫었으니 말이다.

 

제조상궁은 자결로 삶을 마무리했다. 분명 그는 잘못된 선택을 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궁녀들의 존재 가치에 대해 누구보다 진중하게 생각한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수단이 목적이 되고 그렇게 타락해버린 제조상궁의 행태는 오히려 궁녀들의 삶을 더욱 힘겹게 할 수도 있었다.

 

왕이 용서를 했는데 왜 죽냐는 영조의 눈물 속에 제조상궁은 죽음 앞에서 비로소 궁녀로서 자유를 얻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를 언급한 제조상궁의 모습은 자주적인 삶이다. 그런 삶을 지향하는 이는 바로 덕임이다. 덕임이 세손의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자신의 삶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음을 흥미로웠다.

 

영조와 제조상궁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다룬 것 역시 이 드라마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잘 보여주었다. 화완옹주는 여전히 자신만 생각하는 존재였다. 양자였던 정백익은 마지막으로 화완옹주만은 지켜달라 간청했고,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이별을 하는 장면에서도 화완옹주는 철없음을 버리지 못했다. 양자가 정말 떠난다는 사실에 울며 붙잡았지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영조는 마지막으로 세손에게 왕이 되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많은 이들을 죽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왕으로서 할 일 다 하라는 당부와 함께 할아버지로서 용서해달라며 잘못은 했지만 항상 최선을 다했다는 영조는 그렇게 손자 품에 안겨 사망했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절대 용서할 수 없다며 오열하는 세손은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거대한 산처럼 자신을 지켜주던 할아버지가 없는 세상은 두려울 수밖에 없다. 왕이라는 자리가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수많은 공격을 받는 자리일 뿐이다.

 

영조가 사망한 후 많은 변화들이 시작되었다. 덕임은 친구들과 무인 자리에서 궁녀의 삶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복연은 제조상궁의 최후를 목격했다고 밝혔다. 멍석에 덮인 채 궁 밖으로 나가는 제조상궁의 최후를 보며 그들이 느끼는 감정은 복잡했을 듯하다.

궁녀보다 낮은 무수리에서 후궁이 되어 사도세자를 낳고 왕이 된 세손의 할머니였던 영빈 역시 마지막은 조용할 수밖에 없었단 양반가 자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곡소리도 내지 못한 장례식은 궁녀들이 처한 현실이기도 했다.

 

궁녀들로 사는 삶은 무엇이고 만족스러운 삶이 뭔지 반문하는 상황에 덕임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게 행복 아닐까?라고 했지만 다른 친구는 달랐다. 모든 것이 똑같을 수 없다며 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제부터 모두 변할 거라는 말은 당연했다.

 

편전에 선 산은 저의 하늘이 무너졌다며 이제 새 하늘이 열렸다고 했지만 두려워했다. 하지만 어좌에 앉은 산은 더는 숨거나 피하지 않겠다며 이제 모두 자신의 책임이라며 정조로서 삶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삼년상이 지난 후 덕임은 친구들과 궁 밖으로 나섰다.

 

그들은 복연을 보러 가기 위해 찾은 주막에서 달라진 그를 보게 되었다. 숙모 주막이라며 그곳에서 일하는 복연은 궁녀로서 화려한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 변해버린 친구에게 실망보다는 안쓰러워 자리를 피한 경희에게 궁녀의 삶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이 좋아하는 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덕임의 말처럼 복연은 궁을 나와 숙모 주막에서 일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자신이 원한 삶이라는 점에서 누군가에게는 딱해 보일지 모르지만 복연은 행복했다. 궁에서 나름 화려하게 보낸 삶과 다르지만 내가 원한 삶을 택한 복연은 그게 행복이었다.

 

왕이 된 정조를 바라보며 오랜 시간 탕약을 들고 있는 덕임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손과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왕을 보필해야 하는 궁녀의 삶은 행복한 것일까? 늦은 시간까지 업무를 본 정조는 덕임에게 고백했다. 선왕 3년상도 끝났으니 너도 알고 있는 말을 꺼내야 한다고 했다.

 

후궁이 아닌 궁녀로서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던 덕임으로써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난 너와 가족이 되고 싶어"라는 묵직한 고백에 과연 덕임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후궁이 된 덕임의 삶이 후반부 그려질 것이다.

 

정조의 첫째 아들이 태어나는 기쁨도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정조의 유일한 후궁이 된 덕임의 삶은 행복할 수 없었다. 역사는 덕임의 삶을 잘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의 사랑이 결국 덕임의 삶을 불행하게 만든 것일까? 아니며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전쟁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이 또 다른 행복이었을까? 죽음마저 무섭지 않은 사랑말이다.

 

<옷소매 붉은 끝동>은 정조라는 조선시대 최고의 천재라 불렸던 왕의 일대기를 그리지 않는다. 대신 덕임을 중심으로 한 궁녀들의 삶을 조망하고 있다. 자주적인 여성상을 부각하며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사극이다. 한 회가 늘어난 남은 다섯 번의 이야기 속 덕임은 어떤 고뇌와 행복을 느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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