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육룡이 나르샤 47화-당당했던 정도전 최후에 담은 작가의 의도

by 자이미 2016. 3. 15.
반응형

요동 정벌을 하러 가기 전날 이방원은 정변을 일으켰다. 정도전의 계획대로 움직이던 모든 것은 그날의 정변으로 모든 것은 이방원의 몫이 되었다. 국민이 우선인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정도전은 그렇게 같은 꿈 다른 이상을 가진 제자 이방원에 의해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당당했던 정도전;

섬뜩했던 이방원의 미소와 담담하게 최후를 맞이한 정도전, 모든 것은 산자들의 몫

 

 

요동 정벌을 위한 모든 계획을 마치고 출병만 기다리던 정도전과 남은. 그들은 꿈만 같은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던 많은 것들을 이룬 현재. 이제는 요동 정벌까지 하게 되었다. 비록 이성계가 숙환으로 함께 출정을 하지 못하지만 그것이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은밀하게 하지만 거대한 야망으로 정변을 준비한 것은 이방원이었다. 하늘이 내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변을 일으킨 이방원은 그렇게 잔인한 '왕자의 난'을 일으켰다. 정도전과 남은 등 핵심인사들을 잡고 궁을 포위해 권력을 이양 받는 것이 이방원의 목표였다.

 

문제는 최고의 검술을 지닌 이방지가 정도전 곁에 있는 이상 손쉽게 그를 잡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이를 위해 연희를 볼모로 삼았다. 이제 곧 행복한 삶만 남았던 이방지와 연희는 지독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는 나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방지를 무조건 잡아둬야 하는 이들에게 연희는 중요한 존재였다.

 

어렸던 땅새가 겁탈을 당하는 연희를 구하지 못했었다. 그런 기억이 가득한 상황에서 연희는 다시 한 번 죽을 위기에 처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죽이겠다는 협박 속에서 조금만 이렇게 함께 하자는 제안에 이방지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방지에게는 정도전보다도 지금 당장 연희의 생사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대의를 위해 달려왔던 연희. 그는 자신의 안위보다는 정도전의 생사가 중요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도전 곁에 이방지가 절실했다. 하지만 다시 자신 때문에 발목이 잡힌 땅새를 위해 연희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 자신이 죽지 않으면 정도전을 구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별한 그 무엇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사는 것만이 방지에게는 전부였다. 그런 그는 다시 한 번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구하지 못한 채 눈앞에서 보내야 했던 이방지는 정도전을 구하러 향하지만 그곳에서는 형제와 같았던 무휼이 기다리고 있었다.

 

성균관에 고립되었던 정도전은 당당했다. 일부러 도망치기를 바라며 정도전 나오라고 외쳤던 이방원은 그런 그의 기개가 존경스러웠다. 하륜이 만들어낸 역사 속 정도전은 역적이고 적발되자 뒷문으로 쥐새끼처럼 도망치다 이방원에 잡혀 목숨을 구걸하다 참수를 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정도전의 최후는 그 무엇보다 존엄했다.

 

 

담담하게 최후를 맞이하기 위해 나선 정도전은 자신을 죽이려는 이방원에게 잠깐 걷자고 청한다. 그리고 정도전은 이방원에게 자신의 사상과 구상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네놈이 잘 해내겠지 라는 말을 남겼다. 요동 정벌에 대한 문제 역시 산자의 몫이라며, 망자가 시대를 이끌어서야 되겠느냐는 말을 남기는 정도전의 최후는 그랬다.

 

"고단 하구나. 방원아"라는 말과 함께 정도전은 그렇게 비명조차 지르지 않은 채 최후를 맞이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는 정도전의 최후는 허망했다. 출병하기 전날 남은의 집에 모여 술을 마시다 급습한 이방원에 의해 최후를 맞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말이다.

 

이방원이 유일하게 존경했던 인물 정도전. 자신의 잔트가르라고 외쳤던 이방원. 그에게 정도전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부패한 고려를 멸하고 조선을 세웠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그들은 건널 수 없는 강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새로운 세상에 맞는 왕을 옹립하고자 했던 정도전과 자신이 그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이방원. 그 중심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운명은 최후의 승자인 이방원의 몫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이방원은 왕이 되어 누구보다 정도전이 꿈꾸던 세상에 맞는 정치를 했다.

 

철저하게 공부시킨 결과가 세종대왕을 만들어냈고, 외척들을 모두 내치고 백성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려고 있던 이방원의 모습은 그렇게 정도전을 계승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역사는 이미 과거의 것이 되었고, 후대 사람들의 평가는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작가는 역사에 기록된 것과 달리 정도전의 죽음을 왜 이렇게 묘사한 것일까? 정도전이 꿈꾸었던 세상이 바로 우리가 현재도 꿈꾸는 세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의 권력이 세상을 좌지우지하지 않고 오직 백성을 위한 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정도전의 꿈은 그렇게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더욱 강렬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술을 마시다 허망하게 죽었다고 기록된 정도전을 가장 근엄하고 존엄하게 최후를 맞이하게 한 작가의 의도는 그런 가치에 대한 존경심일 것이다. 이방원이 아닌 정도전의 조선이 되었다면 과연 현재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그런 상상은 충분한 가치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 고민부터 시작해 현재의 부당함에 맞서고 싸울 수 있는 이유가 된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정도전을 생각해 본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