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상 최악의 방송사고가 일어났던 <응답하라 1994>는 그럼에도 내용은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마지막 3회를 남긴 상황에서 나정이 남편에 대한 마지막 움직임이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관심은 배가 될 수밖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해태가 호준이라는 이름을 찾고 첫사랑과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한 단서로 다가왔습니다.
잊지못했던 첫사랑과 재회한 해태 호준;
결혼 포기하고 일을 찾은 나정, 헤어지지 않은 채 헤어졌던 나레기 커플과 칠봉이의 등장
결혼 약속까지 하고 평탄하고 삶을 살아오던 쓰레기와 나정이의 삶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대한민국의 IMF처럼 혼란으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1997년 모두를 경악스럽게 했던 국가 부도사태와 그로 인해 무너진 수많은 청춘과 가정은 드라마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충격이었습니다.
시티폰에 투자했던 동일은 정신이 빠진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식 대박을 꿈꾸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돈과 하숙집까지 담보로 잡아 투자했지만, 최악의 선택이라고 불리는 시티폰으로 인해 모든 것을 날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은 나정이의 부모처럼 그 시대 청춘들에게도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잃는 순간들이 되었습니다.
입학이 어제처럼 느껴지던 그들도 이제는 졸업을 앞두고 취직 걱정이 한창입니다. 윤진이는 자신이 원하던 여행사에 취직했고, 나정이 역시 고려증권 최종면접까지 마치고 합격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군대에 갔던 해태도 돌아오며 신촌하숙과 전과 다름없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군대를 갔던 성균이는 국가유공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6개월 근무만 한 채 사회에 복귀했고, 대학원을 준비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사회에 복귀한 해태는 언제나 그랬듯 여자 친구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오랜 시간 사귀던 애정이와 헤어진 후 수많은 여자들을 만났지만 너무 짧은 헤어짐만 가져오던 해태는 그 허한 마음을 여자를 만나는 행위의 반복으로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복학도 하기 전부터 학교에 나가는 이유가 여친 만들기를 위함이었던 해태는 연대 전지현이라고 불리는 퀸카와 만나는데 성공합니다.
첫 눈에 반해 사귀기 시작했던 그들이 하루 만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첫 눈에 반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노래방에서 후배의 노래를 듣고 한 눈에 반한 연대 전지현으로 인해 깨진 사랑을 나정이 친구인 연대 엄정화라고 불리는 그녀와 만남은 즐거웠지만, 노래 잘하는 유부남을 따라나선 해태에게 여자 친구와의 인연은 없었습니다.
자신이 채였다며 한탄을 하지만 나정이와 윤진이는 알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해태가 누구를 그리워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정말 그 여자들이 좋았다면 손목이라도 잡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도 있었지만, 해태는 떠나는 여자들을 막지 않았습니다. 결코 그녀들을 좋아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태가 무수히 많은 여자들을 만나면서도 한 번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 것은 바로 첫 사랑이었던 애정이를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귀찮기도 했었던 애정이지만, 이별 통보를 받고 난 후 해태의 마음속에서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던 것은 바로 애정이었습니다. 소개팅과 미팅을 이어가며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면서도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한 해태는 그렇게 첫 사랑에 대한 기억만 간직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런 그에게 기회는 찾아왔습니다. 성균이를 통해 알게 된 '아이 러브 스쿨'은 과거 친구들과 첫 사랑까지 찾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해태는 용기를 내서 애정이에게 두 번의 쪽지를 보냈습니다.
초등학교 동창회를 앞두고 애정이에게 쪽지를 보낸 해태는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연락이 없는 애정이로 인해 이제는 동창회도 나갈 수 없을 것 같다는 해태에게 나정이는 나무라기 시작합니다. 겨우 쪽지 두 번 보낸 것이 전부이면서 동창회도 안 간다고 한다며 그녀는 지금이 아니면 후회 할 수밖에 없다며 직접 나가 마음을 확인해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나정이의 충고로 동창회에 나간 해태는 애정이가 서울에서 회사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자신에게 건네준 애정이 전화번호를 들고 전화를 거는 해태의 마음은 한없이 떨리기만 했습니다.
애정이에게 했던 전화의 착신음은 해태의 바로 뒤에서 들리고 있었습니다. 답장이 없던 애정이도 다른 친구들의 생각과 달리, 해태를 보기 위해 동창회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 서먹서먹한 순간 그들의 긴장을 풀어준 것은 노래였습니다. 애정이가 좋아했던 노래를 매개로 이야기를 풀어가던 해태는 처음으로 여자의 손목을 잡았습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만 자신에게 등을 보이고 다른 곳으로 향하는 상대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동안 그 어떤 여자에게도 하지 않았던 해태의 행동은 그가 얼마나 애정이를 사랑하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렇게 해태 아니 호준이와 애정이는 나정이 결혼식까지 함께 오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성균이와 윤진이를 시작으로, 빙그레와 해태까지 인연을 찾아가는 동안 가장 먼저 결혼을 할 수 있었던 쓰레기와 나정이는 헤어지지 않은 채 헤어진 연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IMF가 터지기 직전 어렵게 고려증권에 최종합격한 나정이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행복했습니다. 1월 쓰레기와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취직까지 된 나정이에게는 행복만 존재할 뿐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주식 투자로 빚을 지기는 했지만, 취직해서 벌면 그만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다 잘 될 것이라는 기대는 국가부도로 인해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첫 출근을 한 윤진이와 합격 통지서를 받은 나정이를 위해 샴페인을 터트리던 신촌 하숙 가족들은 처참한 현실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가부도를 선언하는 TV 화면을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많은 시청자들은 격한 공감을 표현했을 듯합니다. OECD 회원국이라며 샴페인을 터트리고 부자 나라가 되었다고 떠들던 김영삼 정권을 풍자하는 샴페인 장면은 그래서 더욱 씁쓸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국가가 무너지며, 그들의 삶도 척박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대한 증권사인 고려증권이 부도로 쓰러지고, 나정이의 합격은 취소가 되고 말았습니다. 구직에 힘을 쓰지만 좀처럼 취직이 되지 않던 나정이는 어렵게 관광공사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100여 통이 넘는 지원서를 넣어 얻은 기회라는 점에서 반가웠지만,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에 나정이는 혼란스러웠습니다.
결혼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청첩장까지 찍고 돌린 그들에게 나정이의 취직은 큰 선택을 강요하게 되었습니다. 동일은 IMF로 인해 서울 쌍둥이 코치로 재계약에 실패했습니다. 가족을 위해서도 취직이 절실했던 나정이었지만,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조건은 그녀에게는 큰 고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꿈과 가족을 위해서는 호주에서의 2년을 선택해야 하지만, 사랑하는 쓰레기와의 행복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결혼을 하는 것이 맞았습니다.
나정이를 위해 결혼을 2년 후로 미룬 쓰레기였지만, 그들이 결혼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빠 동생으로 20년을 살아왔고, 힘겨운 짝사랑이 이루어져 결혼까지 할 사이였다는 점에서 여느 다른 커플들과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고비는 찾아왔습니다. 한국과 호주라는 먼 거리는 그들에게 일상의 관계를 빼앗아갔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누구나 그러하듯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2년 동안의 호주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나정이지만 쓰레기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헤어지지 않은 채 헤어진 그들에게는 여전히 그 간극을 채워 넣기가 어렵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밀레니엄 전날을 맞이한 나정이는 친구들과 했던 약속을 기억하는 사람 없는 텅 빈 공간에서 술을 홀로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던 칠봉이는 미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집이 아닌 나정이의 집을 찾습니다. 밀레니엄 전날에 대한 약속을 알고 있었던 쓰레기 역시 병원을 나섰지만 끝내 나정이의 집을 찾지는 않았습니다.
이 대목에서 시청자들은 과거 삼천포를 기억하는 이들도 많았을 듯합니다. 삼천포로 모두 놀러간 사이 쓰레기와 칠봉이의 다른 행보는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나정이를 보기 위해 6시간이나 걸리는 삼천포로 달려가 몇 시간을 보내고 서울로 돌아간 칠봉이를 기억한다면 이 상황이 정확하게 그와 같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듯합니다. 12시가 되고 새해가 되자 나정이에게 키스를 했던 칠봉이와 그런 사실을 기억하던 나정이가 12시를 넘기고 칠봉이가 "해피 뉴 이어"를 이야기하자 입술을 막는 장면은 흥미로웠습니다.
칠봉이가 왕복 12시간을 소비하며 나정이를 만나러간 그 시간 친구들과 당구를 치고, 빙그레와 밤새 영화를 봤던 쓰레기가 과연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했는지 궁금하게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쓰레기 역시 여전히 나정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쓰레기 역시 나정이와의 약속을 위해 하숙집으로 향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상상도 못했던 메이저리그거가 된 칠봉이가 하숙집을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발길을 돌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남은 3회 동안 드라마는 나정이 남편이 누가 될지에 모든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과 미국으로 옮겨 다닌 칠봉이가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본격적으로 나정이 곁에서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이 상황에서 나정이 남편이 여전히 쓰레기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해태의 사랑이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첫 사랑을 잊지 못하는 해태와 그런 해태에게 이별 통보를 하면서 자신이 받았던 선물을 보냈던 애정이의 모습은 흥미로웠습니다. 화가 나서 헤어진 것이 아니라, 헤어지자는 이야기가 곧 더욱 강한 사랑의 메시지로 전달되기를 바라며 정성껏 정리한 박스 속에는 애정이의 마음이 존재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칠봉이가 끓여온 라면을 먹기 위해 만화책 '인어공주 이야기'를 받침으로 사용하는 나정이의 모습 역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입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이별 아닌 이별을 만들었지만, 나정이와 쓰레기가 이 일로 인해 완전한 이별을 하고 칠봉이와 결혼을 하게 된다는 설정만큼 진부한 이야기는 없다는 점에서도 나정이의 남편은 쓰레기일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상황이 만든 결과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에는 그동안 보여준 이들의 캐릭터들이 맞지 않다는 점에서 제작진들의 선택은 쓰레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 멀리 나아간 후에 등장한 칠봉이는 너무 늦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남은 3회 동안 어떤 이야기들이 전개될지 알 수는 없지만, 결국 돌고 돌아 쓰레기와 행복한 결혼을 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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