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번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펀치>는 종영되었습니다. 시한부 인생을 살던 박정환에게 기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마지막 생명을 통해 죽어가던 부인 신하경을 살려내며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태준과 윤지숙, 이호성은 냉엄한 법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현실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법의 심판은 무슨 의미였을까요?
박경수의 현실이 아닌 드라마 선택;
법 앞에 공평한 세상을 원하는 드라마, 현실은 결코 드라마와 같은 환상은 없다
호성의 차에 있던 블랙박스를 확인한 정환은 급하게 메모리카드를 가지고 도주를 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 결정적인 순간 다리 마비는 정환의 발목을 잡습니다. 이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대로 모든 것은 종료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호성의 차에서 벗어나야만 했습니다.
호성이 차에 타고 내비게이션을 켜는 순간 SD카드가 빠져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호성이 눈치를 채자 도주를 시작하는 정환은 절박했습니다. 그대로 사건의 진실이 묻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 하나로 다리를 끌면서 지하철로 뛰기 시작하는 정환은 뛴 다기 보다는 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마비가 온 다리를 끌고 도주를 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정환은 지하철을 타기도 전에 호성에게 잡혀 취조실로 끌려갑니다. 호성에게는 정환이 빼간 메모리카드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가 머물던 모든 곳에서 메모리카드를 찾기 시작하지만, 좀처럼 찾을 수 없어 힘겨워지기만 합니다.
정환이 취조실에 갇혀 있으면 이태준도 몰락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사건은 묻히고 윤지숙과 이호성은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메모리카드를 건네줄 수도 없는 정환의 고통은 더욱 심해질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딸 예린이에게 가장 행복한 모습을 마지막에 보여주기 위해 아껴두었던 진통제를 바닥에 뿌리는 정환은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한 후였습니다.
정환이 이런 결정적인 선택을 한 것은 하경이 의식불명에 죽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습니다. 정환이 소박하게 꾸었던 마지막 꿈도 이제는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정환은 가족사진을 보면서 고통을 없애줄 진통제를 버리는 정환의 그 모습은 울컥하게 만들었습니다.
'270억vs메모리카드'를 두고 이태준과 윤지숙은 마지막 대결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열쇠를 쥔 정환은 취조실에 갇혀있고, 그렇게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서 상황은 윤지숙의 몫이었습니다. 이태준이 비열한 검사이기는 하지만 그는 정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그 높은 검찰청 벽에 매달릴 정도의 근성을 가진 정환은 그런 존재였습니다.
이태준은 정환을 빼내기 위해서 진단서와 의사 소견서, 그리고 가족 탄원서를 준비합니다. 이런 그들의 움직임을 감지한 윤지숙은 법조계 큰 어른들을 만나 정환을 못나가게 압력을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죽어가는 정환이 취조실을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 윤지숙의 힘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판사의 판결마저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정환을 붙잡아 둔 윤지숙은 이태준을 찾아 갑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10년 형이 유력한 이태준에게 5년을 감형하는 제안을 합니다. 정환이 가지고 있는 메모리카드를 건네주면 감형을 해주겠다는 윤지숙의 제안을 비웃는 태준은 마지막 순간까지 정환을 기다립니다. 단 한 번도 자신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던 정환에 대한 기대감은 그에게는 마지막 동아줄과 같았습니다.
태준의 그런 믿음도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윤지숙의 지독할 정도로 강력한 퇴임 압력은 일선 지검장들의 탄원으로 이어졌고, 이런 상황에서도 무조건 정환을 기다리며 버티던 태준은 호성에게 최악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정환이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고 깨어날 수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더는 버틸 수 있는 근거가 없어진 이태준을 더욱 압박하기 위해 윤지숙은 기자회견까지 개최하며 그의 몰락을 전 국민에게 보여주겠다는 당찬 포부까지 밝혔습니다.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는 이야기에도 윤지숙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던 이태준의 몰락은 곧 자신의 안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윤지숙의 이런 퍼포먼스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들 보다 한 차원 높은 곳에 있던 정환은 마지막 선물을 이태준에게 건넸습니다.
이호성이 작성한 이태준의 퇴임사 원고가 들어있던 봉투 안에 윤지숙과 이호성을 몰락시킬 유일한 증거인 메모리카드를 넣어둔 것이었습니다. 도주는 그 메모리카드를 지키기 위한 정환의 선택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실망시키지 않은 정환을 보며 우는 듯 웃는 이태준은 기자회견 장에서 모든 것을 공개하라고 지시합니다.
정환이 남긴 마지막 선물을 들고 기자회견장에 등장한 최연진은 그들 앞에서 윤지숙의 잔인한 범죄와 이를 감추는 호성의 모습이 모두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공개합니다. 그렇게 탐욕에 찌들었던 이들은 모두 몰락하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명확한 증거 앞에서 그 대단한 배경도 윤지숙을 구할 수는 없었습니다. 윤지숙를 사다리 삼아 '정의'라는 명분을 앞세워 탐욕을 키워왔던 호성 역시 몰락은 자명했습니다.
정환이 남긴 선물을 보고 이태준은 대통령 비서실장에 연락해 자신이 윤지숙 구속영장에 사인을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자신을 잡으러 온 특검들을 물리고, 연진이 들고 온 윤지숙 구속영장에 사인을 하고 담담하게 수갑을 찹니다. 형이 자신에게 남겨준 마지막 선물은 칡과 정환이 죽기 전 자신에게 준 선물을 함께 한 이태준에게 아쉬울 것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정환이 마지막 진통제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심정지를 당해 CPR를 하고 있는 하경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이제는 가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그렇게 자신의 삶을 좀 더 빨리 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죽어가는 자신에게 남겨진 심장을 하경에게 건네기 위함이었습니다.
자신의 죽음과 하경의 생명을 바꾼 정환은 그렇게 하경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정환의 심장으로 다시 살아난 하경은 윤지숙 사건을 담당하는 검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냉엄한 법이란 무엇인지를 윤지숙과 이호성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비해 정환은 '박정환 진술서'를 남겼습니다. 더는 도망칠 수도 없는 정환의 진술서는 윤지숙을 더는 도망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법 앞에서는 누구라도 평등해야 한 다"는 말을 되돌려주는 하경은 그렇게 이제는 고인이 된 정환의 마지막 소원은 성공했습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올곧게 '정의'를 지향하던 하경은 그렇게 살아있는 권력을 무너트렸습니다. 법을 통해 법을 훼손하는 권력자들에게 법치주의 국가의 힘을 보여준 하경은 그렇게 우리에게 마지막 희망과 같은 존재로 다가왔습니다. 인과응보를 보여준 <펀치>는 그래서 현실이 아닌 드라마였습니다.
정환이 남긴 동영상은 이태준과의 마지막 술자리였습니다. 지난 7년 동안 미친 듯 뛰어왔던 두 남자가 이제는 고인이 된 정환과 270억 불법자금으로 구속을 앞둔 태준 사이에서 시공을 초월한 술자리를 하는 장면은 <펀치>의 백미였습니다. 박신양의 애절함이 가득했던 영화 <약속>의 동영상이 많은 이들을 울게 했지만, <펀치>에서의 두 사람은 인생의 헛헛함을 토로하며 소주 한 잔과 웃음으로 서로의 삶을 정리하는 모습은 압권이었습니다.
<펀치>가 현실을 직시했다면 결코 이런 결말을 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말도 안 되는 범죄가 다 드러난 인물이 총리가 되는 세상에서 윤지숙처럼 엄청난 배경을 가진 존재가 법정에서 그런 판결을 받는 경우는 전무하기 때문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일상이 된 현실 속에서 드라마 속 결말은 우리가 원하는 절박한 희망이었습니다.
박경수 작가가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던 18번의 이야기와 달리, 마지막 한 회를 남기고 현실보다는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현실에서는 할 수 없었던 진정한 '정의'를 드라마의 힘을 빌려 국민들에게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인지 외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 작가가 원한 그런 삶이 과연 이뤄질지 알 수는 없지만, 많은 국민들은 드라마에서 이야기한 그런 '정의'가 조금이나마 존재하는 사회가 되기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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