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상황까지 치닫던 상황은 봄의 퇴출로 이어지게 된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 자신들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서봄 때문이라고 확신하는 한정호와 최연희 부부의 선택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자신들의 피가 섞인 이들만 남긴 채 모든 이들은 배척하는 방식이다.
서봄의 숨고르기;
양비서와 이비서의 대립, 갑에 대한 전복이 아닌 을들의 싸움이 적나라하다
벌어져서는 안 되는 하지만 벌어질 수밖에 없는 진통은 언제나 숨을 제대로 고르기도 전에 기습적으로 찾아오고는 한다. 봄에게도 그런 일은 삽시간에 들이닥쳤고, 다시 한 번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된다. 한정호의 거대한 성에 입성해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녀의 불행은 시작되었고, 현재의 위기 역시 자연스럽게 다가온 시한폭탄이었다.
한정호 집에서 일을 하는 이들이 파업을 하고 나간 상황을 봄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정호와 연희에게 선택은 단순했다. 자신의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이고, 손자를 낳은 어머니임에도 그들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서봄은 어차피 자신들이 원했던 존재도 아니라는 점에서 그녀만 버릴 수 있다면 빠른 시간 안에 효과적으로 떼어내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이 서봄에게 집을 나가라는 말을 건네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양심의 가책도 없는 이유였다.
단도직입적으로 집에서 나가라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정호와 연희. 그런 부모들에게 봄을 지키는 인상과 이지. 극단적 상황에서 봄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단호함은 그녀를 다시 보게 한다. 자각을 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인상과 이지에게 현실을 적나라하게 지적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들과 달리, 봄은 출신만으로도 배척을 당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말 속에는 갑과 을의 새로운 신분제가 얼마나 뿌리 깊게 내려와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지금은 조금 수면 아래 내려가 있기는 하지만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갑질'논란은 그들 스스로 시민국가가 아닌 새로운 신분제가 존재하는 곳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 돈만 많으면 자신이 우월한 존재라 확신하는 풍토 속에서 '갑질'은 곧 '돈질'이 되고는 하기 때문이다.
법으로 무장한 한정호는 이 모든 것을 갖춘 갑중의 갑이다. 엄청난 재산도 재산이지만 법률적 지식이 탁월한 그에게 두려울 것은 그 무엇도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로펌을 그저 만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이지만 집에서 일어나는 일은 예측불허다. 기본적으로 가족과 가정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우지 못한 한정호에게 집은 묘한 느낌으로 그를 옥죄는 공간일 뿐이다.
섭정왕후였던 정호의 어머니는 철저하게 1등주의와 성취에만 집착하는 교육을 받고 그 이외의 모든 것은 철저하게 정호가 원하는 것들을 들어주며 키웠다. 자신이 원하는 좋은 대학, 법조인인 아버지 뒤를 따를 수만 있다면 그만이라는 정호 어머니의 교육은 괴물을 만들어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상이 전부라고 알고 있는 정호에게 현재의 분위기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의 집에서 일을 하는 이들은 종속된 존재의 하인 정도로 인식하는 정호에게 그들의 파업은 이해할 수가 없다. 감히 주인에 반기를 드는 종들의 행위에 분노가 치밀 뿐 왜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모르는 것이 문제임을 그들은 모른다.
부당한 처우에 반박하는 노동자들의 행동이 부당하다고 본다. 감히 우리로 인해 먹고 사는 이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자신들의 탐욕이 부당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정작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23회에서 중요하게 다가온 것은 갑과 을의 대립보다 을과 을의 대결이었다. 을과 을의 대립을 이끄는 양비서와 이비서의 대결 구도는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풍자극의 시작이다. 탐욕은 갑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탐욕이라는 것은 갑과 을을 구분하는 틀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품을 수밖에 없는 슬픔이다. 탐욕은 결국 균열을 만들고 그런 틈은 문제의 시작이 될 수밖에 없다.
서봄의 퇴출 위기는 정호 집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복귀를 불렀다. 봄과 인상을 믿고 파업을 시작한 그들에게 이 상황은 최악이었기 때문이다. 믿을 수 있는 언덕이 사라지면 곧 그들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의도하지 않은 복귀가 시작되었다.
이 상황을 적극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양 비서의 조언을 듣고 곧바로 태도를 바꿔 상황을 정리를 시도한다. 상대의 태도는 급박하고, 이런 상황에서 적절한 합의점을 찾아 자연스럽게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단순한 노동자라면 상관없지만 가신으로 생활하며 한정호 집안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들이 이 상태에서 그만두게 된다면 거대한 후폭풍이 불어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정호와 연희는 알고 있는 이 두려움을 정작 그들은 활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이 알고 있는 그 거대한 비밀이 결국 그들의 약점이 될 수 있음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순박함은 바보스럽게 살도록 강요하는 이유가 된다. 파업을 마치고 돌아와 그들이 받은 것은 처우 개선이 전부다. 그 전의 부당한 대우에서 정상적인 일로 돌아온 것만으로도 만족하게 되는 상황. 그런 상황을 엄청난 양보라고 이야기하는 갑들의 모습과 비교되며 을들의 현실이 서글프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실제 생활 속에서도 그대로 적용이 되기 때문이다.
'조삼모사'가 일상이 되고 논리로 무장한 그들의 헤게모니 장악력으로 인해 점점 을들의 논리만 빈약해지기만 한다. 더욱 거대한 자본의 힘까지 등에 업은 그들은 슈퍼 갑 이상의 권리를 모두 쥐고 있다는 점에서 을은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지 않는 한 반박조차 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
한정호의 비서로 그의 아버지 대에서부터 일을 해왔던 양비서는 비자금을 축적해오고 있었다. 그것도 한정호 집안일을 돌보는 100여 명의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비용을 빼돌려 부를 축적해왔다. 양비서의 오빠가 한 트러스트의 대표로 있고, 한 대표를 통해 배운 비자금 만들기 방식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양비서는 슈퍼 을이었다.
중재자로 나서 문제를 해결하며 갑과 을 사이의 조력자 정로도 인식되는 양비서이지만 그는 두 집단 사이에서 모두를 비하하는 진정한 갑의 존재였다. 한 대표의 모든 것을 알고 그의 집안일들까지 꾀고 있는 양 비서에게 갑들은 더는 갑이 아니다. 그리고 을에 속해있고 그들과 어울리기는 하지만 스스로 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런 그녀와 이비서의 만남은 그래서 흥미롭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당장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하는 그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제대로 변할 수 없는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봄을 쫓아내려는 분위기에 못이기는 척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들이 단숨에 집으로 돌아온 것은 불안 때문이었다. 그 불안에 대한 핑계를 어린 인상과 봄에게 책임지우고 그들이 취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익이 전부다.
봄이가 불쌍하다는 말을 하고 실제 그런 마음에 잘 챙겨주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봄의 인생이 아닌 자신들의 삶이다. 이런 그들의 개인적인 생각을 탓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의 시작은 자신에서부터인데 이런 자신을 위한 욕심마저도 부당하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백여 명의 인력을 운영하면서 얻어지는 비자금을 챙기고 있던 양비서. 그런 그녀의 비밀을 알고 있던 이비서는 한정호가 다니는 고급 한정식 집에서 회동을 했다. 이 상황 자체도 참 아이러니 하고 웃길 수밖에는 없다. 그들의 처지로 모든 것을 가진 한정호가 다니는 고급 식당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들은 그곳이 한 대표가 자주 찾는 곳이라며 어깨에 힘을 주고 자신을 동일시하는 모습에서 <풍문으로 들었소>의 블랙코미디 진가를 느끼게 한다.
한 대표가 간단하게 먹은 국수를 자신들도 먹겠다며 여유를 부리는 모습에서 그들의 허세 역시 갑들의 허세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한다. 그 모든 허세는 탐욕을 위한 방패라는 점에서 이들 역시 그 지독한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매 달 취하는 비자금을 5:5로 나누자는 양비서와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이비서. 돈 앞에서는 그동안의 관계도 무의미해지는 순간 양비서는 숨겨둔 발톱을 꺼내며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을들의 전쟁은 갑들을 뒤로 미룬 채 본격적인 대전으로 향하는 형국을 만들기 시작했다. 갑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을들을 통솔하는 방법 중 가장 현명한 것은 서로 싸우게 하는 것이다.
윤제훈과 민주영, 유신영의 연대를 파괴하기 위해 교란을 시도하라는 한정호의 발언은 을들의 관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관용과 이해, 그리고 역지사지 마음으로 포용하겠다는 그들의 허세 가득한 발언들 속에 우리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궁지에 몰렸던 봄은 모의시험에서 인상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합격점을 넘은 점수를 받은 봄이라는 점에서 정호는 결코 그녀를 버리지 못할 것이다. 모의시험 결과를 보고 판단하겠다는 결정은 곧 내치고 싶지만 봄이 가지고 있는 재능에 대한 아쉬움으로 인해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을과 을들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사법시험' 공부를 하는 순간부터 무뎌지기 시작했던 봄과 인상은 근본적인 고민을 한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의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후의 이야기가 궁금해집니다. 미래 세대가 주축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부조리를 스스로 깨트리고 바로 세우는 방법 외에는 없다. 그런 점에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인상의 변화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가 블랙코미디라는 옷을 입고 현실과는 조금 동 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런 흐름은 곧 작가가 바라는 의도이기도 하다. 현재의 불균형과 부당함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그런 갑질을 행하는 그들이 변하지 않으면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후반부로 급격하게 들어선 <풍문으로 들었소>는 이제 주제를 명확하게 드러내기 시작했다. 과연 작가가 시청자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궁금하다면 지금부터가 진짜 풍문이 될 것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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