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년 전 안중근 의사의 죽음. 그 긴 시간이 흘렀지만 우린 부끄럽다. 친일파 후손들은 여전히 권력의 중심에서 국가를 지배하고 있다. 안중근 의사가 그토록 염원했던 대한 독립은 성취했지만, 씻어내지 못한 친일의 잔재는 여전히 우리 사회를 짓밟고 있다.
1박2일이 품은 역사;
하얼빈 특집에서 보여준 그들의 역사의식, 그 진중한 접근이 반갑고 고맙다
추운 하얼빈에 가서 그들은 마음껏 웃겼다. 그들의 해외여행에 대해 많은 이들은 재미있다는 평가들을 했다. 하지만 그 웃음 뒤 그들이 준비한 진짜는 많은 이들이 생각했던 안중근 의사였다. 하얼빈하면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직은 안중근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분이 살아왔던 30년의 세월. 독립을 위해 자신의 죽음까지 담담하게 담아내고 임했던 그분의 발자취를 다시 따라가는 그들의 여정은 그래서 특별했다. 역사 교과서에 단 3줄로 요약되어버린 안중근 의사의 삶은 그 단 세 줄로 표현할 정도여서는 안 된다.
현재 우리 사회의 역사 인식이 얼마나 부족하고 엉망인지 그 세 줄은 모든 것을 다 대변하고 있다. 나라를 빼앗긴 백성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내던진 일은 고귀하다. 하지만 독립운동을 하신 분들은 3대가 망한다는 이야기가 장난이 아닌 실제라는 점에서 우리의 미래는 불안하게 다가온다.
친일을 한 자들은 대대손손 잘 사는 나라. 그들은 친일을 했다는 이유로 대대손손 권력의 중심에 서는 나라가 바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부끄러움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친일을 애써 감추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이 처참한 현실 속에서 <1박2일 하얼빈 특집>은 강렬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톡에서 하얼빈까지 향했던 안중근 의사. 107년 전 안중근이 머물렀던 하얼빈을 차분하게 찾아다니는 <1박2일>은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 예능이라는 틀 속에서 담아낼 수 있는 가장 경건함으로 임한 그들의 여정은 보는 이들마저 차분하게 해주었다.
하얼빈 역사 한 곳을 안중근 의사 기념관으로 꾸며 놨고, 역사적인 그 장소에는 분명한 표식으로 안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격살을 기념하고 있다. 조린 공원에서 동지와 만나 구체적인 암살 계획을 세웠던 그곳에는 안중근 의사를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마지막 결의를 마치고 그들이 찾은 곳은 다른 곳이 아닌 사진관이었다.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모습을 남긴 그들의 표정에는 그 어떤 두려움도 존재하지 않았다. 결연한 표정의 세 남자의 모습은 그들이 앞으로 며칠 후 죽을 수도 있음을 아는 표정치고는 너무나 차분했다. 그만큼 그들에게 죽음보다 더 소중한 것은 대한 독립이었기 때문이다.
10월 25일 저녁 하얼빈에 있는 동안 묵었던 집에서 안 의사와 동료들은 '장부가'를 부르며 결의를 다졌다고 한다.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고민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대한제국을 침탈하고, 중국과 러시아마저 침공한 일본에 대한 분노가 앞섰고, 그 중심에 서 있는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함으로서 대한 독립이 보다 빨라지기를 원한 독립투사의 의지는 그렇게 경건하면서도 강했다.
이토 히로부미가 누구인지도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그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1차 거사 지점은 열차를 갈아탈 수밖에 없는 채가구였고, 그곳에서 실패하면 마지막 도착지인 하얼빈 역이 최종 목표 지점이 된다. 차집에서 차를 마시며 이토 히로부미를 어떻게 격살할 것인지 고민만 하던 안중근 의사.
어렵게 이토 히로부미의 일정을 알아내기는 했지만 그가 누구인지 본적이 없던 안중근 의사는 기차에 내린 한 무리의 일본인 중 가장 핵심인 자가 이토 히로부미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빗겨간 틈을 타 세 발의 총성은 울렸고, 그렇게 이토 히로부미는 하얼빈 역에서 주검이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한 후 안중근 의사는 당당했다. 고개도 숙이지 않은 채 일본군에 붙잡혀 가는 안 의사는 법정에서도 왜 자신이 이토 히로부미를 격살해야 했는지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외신 기자들이 안 의사가 이미 순교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기사를 내보낼 정도로 당시 이토 히로부미 격살 소식은 전 세계적인 화제이기도 했다.
대련에 위치한 뤼순 감옥에서 보인 행보도 안중근 의사의 존재감을 다시 확인하게 하는 장소였다. 교도소장과 교도관인 일본인들마저 안중근 의사에 감탄해 그를 위해 사형 선고를 미뤄달라는 탄원서를 내고 그의 죽음에 격한 애도를 보내고, 살아 있는 동안 그를 추모해왔다는 사실은 놀라움과 서글픈 마음을 동시에 가지게 만든다.
정작 우리는 역사 교과서에 안중근 의사의 행보를 단 세 줄로 요약하고 있으니 말이다. 안중근 의사의 의로운 삶보다 독재자의 만행을 미화하는데 더 많은 힘을 쏟는 현실이 과연 정상인가 하는 한심함만 가득해지니 말이다. 역사 왜곡까지 하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무너트리는 한심한 모습은 안중근 의사가 봤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다시 독립을 위해 나섰던 것처럼 결연함으로 일어섰을 것이다.
안중근 의사에게 죽음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라는 어머니 조 마리아 여사의 마지막 편지는 자신과 가족의 안위에만 집착하는 우리의 모습을 부끄럽게 한다. 모두를 위한 우리가 아닌 오직 우리만을 위한 모두이기를 바라는 이기심만 팽배한 현실과는 너무 달랐으니 말이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여전히 뤼순 감옥 근처 묘지 어딘가에 있다. 황해도 출신인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공식적으로 발굴하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합의를 해야만 한다. 합의만 하면 중국 당국에서는 바로 유해 발굴을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우린 여전히 안중근 의사의 유해 발굴조차 마음을 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107년 전 안중근 의사의 삶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했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를 왜곡하고 비호 받아 권력의 핵심에 군림하고 있는 친일파들에 의해 비틀린 역사를 강제로 교육받게 만드는 이 지독한 현실은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독립 운동을 하면 삼대가 망한다는 말은 우리에게는 당연함으로 다가온다. 국가를 배신하고 친일을 한 자들은 삼대가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세상은 결코 정상이 아닐 것이다. 친일인명사전을 모든 학교에 비치하자는 제안에 독기를 품고 개거품을 무는 수구세력들에게 '친일'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신성함 그 이상이니 말이다.
<1박2일>이 품은 역사 기행은 무척이나 시의 적절한 편성이었다. KBS에서 이런 특집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의아하게 다가올 정도로 우리가 사는 현실은 참혹하다. 언론은 이미 권력의 시녀로 둔갑한지 오래고 지배 권력은 철저하게 미래가 없는 민족을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107년 전 안중근 의사가 다시 깨어나 대성통곡을 할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어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정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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