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과 조재현에 대해 <PD수첩>은 다시 한 번 이야기했다. 지난 3월 방송 후 파장을 불러왔던 이야기 그 후 어떻게 상황들이 변해갔는지 추적하는 과정은 대한민국 사회의 '미투운동'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섬뜩함으로 다가온다.
고소 고발이란 재갈;
권력을 가진 자들의 반격, 피해자가 침묵하고 숨지 않으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싸움
다수의 피해자가 있다. 하지만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경찰은 정작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조사조차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 되자 역으로 가해자로 지목된 자들이 피해자들을 고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는 김기덕과 조재현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 사회 '미투운동'의 현실이기도 하다.
김기덕 감독은 <PD수첩-거장의 민낯, 그후>에 대해 방송 전 법원에 방송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소송은 기가됐고 예정대로 방송은 되었다. 제작진은 해외에 있다는 김 감독에게 이메일로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거절했다. 방송 내용이 사실과 다르면 법적으로 처리하겠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법을 무척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은 기괴할 정도로 닮았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교묘히 혹은 노골적으로 사용해 상대를 억압해온 행태가 동일하다. 서지현 검사가 용기를 내서 '미투'를 하며 대한민국 사회는 '미투운동'은 전분야로 확대되었다. 그동안 억압 되었던 여성들이 더는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것 만으로도 이는 중요하다.
'미투운동'이 거세게 일던 시점을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순리대로 잘 해결되고 새로운 시대로 나아갈 것이란 기대도 분명 존재했다. 쉽지는 않지만 침묵하던 다수의 피해자가 용기를 내는 만큼 성과는 분명 존재할 것이란 믿음은 명확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돌아온 것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아닌 '2차 피해'와 고소였다.
피해자라고 외쳤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하는 현실. 그게 '미투운동'의 현실이다. 용기 내 어렵게 세상에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했던 여성들은 그동안 참았던 고통보다 더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신이 용기를 내서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그녀들은 이제는 고소를 당해 법정에 서야 할 상황에 처한 것이다.
모든 것의 바로미터는 서진현 검사였다. 그녀는 현직 검사로 용기를 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그 용기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현직 검사가 용기를 냈으니 나도 용기 내 외쳐보겠다고 나선 수많은 피해자들은 서 검사가 든든한 동지로 여겨졌을 것이다.
문제는 현직 검사가 성추행 피해와 그 후 부당 인사까지 폭로한 사건이 여전히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직업이 검사인 여성이 세상에 자신의 피해를 알리고 진실을 밝혀 달라 요청해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미투운동' 피해자들은 권력을 가진 자들을 상대로 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현직 검사라는 이유로 어느 정도 방패막이가 될 수 있는 서 검사 마저 힘든 시간을 보내는데, 다른 일반 피해자들의 경우는 어땠을까? 상상도 할 수 없는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김기덕 감독이 시간이 흐른 후 갑자기 피해 여성들을 고소하고 나섰다. 조재현 역시 김 감독과 동일한 패턴으로 움직이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 힘을 짜내 피해 사실을 세상에 알렸는데 법은 그녀들의 편이 아니었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증명하기 쉽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가해자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김 감독에 의해 고소를 당한 여성이 잘못이라면 무고죄로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무고죄가 성립되지 않았다.
이는 피해 사실이 거짓이 아니라는 의미다. 김 감독 측에서 주장하듯 자신은 죄가 없다가 아니라, 이를 제대로 증명하고 밝히기 어려울 뿐이란 의미다. 법 역시 피해 사실과 관련해 정확하게 가려낼 수는 없었지만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는 않다는 판결을 내렸다.
증명하기 쉽지 않은 사건. 많은 이들이 당했고 기억하고 있지만 법으로 증명해내기 어려운 '미투' 사건은 그래서 딜레마다. 분명 피해자는 존재하고 그로 인해 인생 자체가 무너진 이들이 너무 많다. 삶 자체를 포기한 이들까지 나올 정도로 무서운 범죄이지만 피해 당시에는 용기조차 낼 수 없었다.
힘겹게 용기를 낸 후에는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 법으로 처벌을 할 수 있는 기간을 놓쳐버리기 일쑤다. 올 해 '미투운동'의 대부분이 그렇다.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의지가 있었다면 굳이 '미투운동'을 하지 않고 법으로 처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럴 용기도 사회적 분위기도 아닌 상태에서 피해자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방치되어져 있었다.
뒤늦게 다른 피해자들에 힘을 얻고 피해 사실을 고백해도 돌아오는 것은 고소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 짜 힘겹게 세상에 자신이 당한 피해를 알려도 소용이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 우리 사회의 성폭력은 다시 독버섯처럼 피어날 수밖에 없다. 그게 기본 생리이기 때문이다.
김기덕 감독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알려진 인물이다. 상도 많이 받은 그에 대항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욱 그의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인지도에서 낮거나 신인인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피해를 당해도 쉽게 대응하지 못한다. 소속사가 막아주거나 스스로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없는 한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영화판이다.
배우만이 아니라 여성 스태프들까지 성적 노리개로 여겼다는 폭로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김 감독은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말만 할 뿐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는 고사하고 자신이 찍은 영화 개봉이 무산되었다는 사실에만 분노하는 모습에서 용기를 낸 피해자들은 얼마나 섬뜩했을까?
조재현은 누구나 인정하는 연기파 배우다. 그런 조재현도 '미투운동'에서 표적이 되었고 빠르게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자신은 그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며 태도가 변했다. 정말 자신이 잘못이 없었다면 드라마 중도 하차까지 할 이유가 뭔가? 그저 소나기가 내리니 피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제도적으로 변해야 한다. '미투운동'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보다 철저하게 분석해 현실적으로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만 한다. 기본적으로 위계에 의한 다양한 범죄들에 대해 어떻게 법적인 처벌을 할 수 있는지 보다 명료해져야만 한다.
사회가 잊지 않고 피해자들 편에 설 때에만 사건은 해결되고 사라질 수 있다. <PD수첩-거장의 민낯, 그후>가 중요하고 가치 있게 다가오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장자연 사건을 보도하자마자 조선일보 측의 행위를 보면 재갈 물리기가 어떤 식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김기덕 감독과 조재현의 고소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로 시작된 '미투운동'은 여전히 힘겹게 투쟁 중이다. 현직 검사마저 쉽지 않은 싸움을 일반인들이 버텨낼 수는 없다.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2차 피해'와 언론의 오도까지 더해지면 피해자는 나락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 '미투운동'의 실체다. 침묵하지 않은 용기에 모두가 힘을 쏟아줄 때 비로소 그 용기가 결실을 맺을 수 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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