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 농단이 드러난지 오래 되었지만 판사 집단은 변화를 외면하고 있다. 여전히 사법 농단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상황에서 진실을 찾고, 단죄한 후 새로운 사법부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일선 판사들은 제대로 된 수사를 통해 사법부가 다시 태어나기 원하지만 권력을 쥔 자들에게 그 모든 것은 자신들의 여죄로 남겨질 뿐이라 회피한다.
사법 농단의 두 축;
양승태와 박병대 지키는 판사 집단, 스스로 개혁에 앞장서지 않는 한 희망은 없다
판사는 법을 공부하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리다. 사법연수원 최고 점수를 받은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 판사다. 그만큼 법을 공부하는 이들이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곳이 판사라는 직업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를 자처하는 집단. 그들이 무너졌다.
태어나 천재 소리를 들으며 살아왔던 자들이 모두 판사들이다. 그들에게는 오직 최고라는 수식어만 붙어있었다. 학창 시절 학업 성취도 1위를 놓쳐본 적이 없는 이들이 모인 집단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최고들만 모이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가 무너진 것도 사법 농단 파문이 보여준 결과이기도 하다.
<스트레이트>는 '양승태 사법부, 숨겨진 범죄'라는 제목으로 2부작으로 특집 편성해 사법 농단의 실체를 파헤쳤다. 사실 사법 농단에 대한 내용들은 이미 많은 부분 드러났다. 여전히 숨겨진 내용들이 많지만 공개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드러난 상태에서 과연 <스트레이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궁금했다.
여 판사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 '이판사판 야단법석'은 사법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에 대한 개인적 의견들을 솔직하게 나누는 공간이다. 그곳에 여장 남 판사가 기괴한 글을 올렸다. 프레임 전환을 노린 이 글을 시작으로 양승태 사법부는 여 판사들의 솔직한 이야기 공간을 없애기 위한 시도를 했다.
양승태 사단의 한 판사가 여 판사로 가장해 들어가 프레임 전환을 하며 카페 동향을 감시하고 분석한 글을 수시로 보고했다. 참 기괴한 집단이 아닐 수 없다. 판사가 다른 판사들의 동향을 살피고 이를 상부에 보고하는 이 행태를 어떤 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재판을 하는 것 만으로도 벅찬 시간들이라 알고 있었지만, 이들에게는 다른 판사 감시하는 일이 더 중요했던 듯하다.
법원 행정처는 요직으로 가는 필수 코스다. 행정처에 들어가는 순간 모두 요직으로 승진하고 대법원장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법원의 행정을 돕는 기구이지만 대법원장의 측근 집단으로 변모한 그곳에서 사법 농단이 준비되고 진행되었다.
법원 행정처장이었던 박병대 대법관은 양승태 대법원장에 이어 2인자로 모든 일을 이끈 핵심 인물이다. 차기 대법원장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로 양승태 시절 박병대라는 인물은 사법부를 총괄하는 핵심이었다. 박 대법관이 물러나자 판사들이 그를 찬양하는 문집까지 낼 정도로 박병대라는 존재가 판사들 세계에 어떤 존재감을 보여왔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박비어천가'를 부르는 판사들의 낯뜨거운 행태는 괴기스럽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만든 체육대회가 마치 사이비종교집단 행사와 같았다는 증언들을 생각해보면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 집단이라 자처하는 판사들의 행태는 더욱 기괴할 수밖에 없다.
똑똑하지만 성장하지 못한 아이들 같은 행태로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부는 잘했을지 모르지만 그 외의 그 무엇도 동조하기 어려워 보이는 판사 집단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현재 상황에서는 쉽게 거둬내기 어려워 보인다. 스스로 치부를 드러내고 개혁에 앞장서지 않는 한 판사들에 대한 불신은 절대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재판' 담당을 교체하는 행위는 이들이 얼마나 정치적 행보를 보였는지 잘 드러낸다. 우병우와 동향인 신광렬 판사를 전면에 내세워 영장 판사들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모든 것을 조절하려 했던 판사 집단의 기괴한 이기주의는 나라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형사수석부장으로 신광렬 판사가 들어가며 특정 집단의 편에 선 재판이 가능하게 되었다. 양승태가 사법 거래를 해온 대상을 향한 그들 만의 충성심, 아니 드러나면 안 되는 치부를 감추기 위한 고육지책은 그렇게 희대의 판결들까지 내놓게 만들었다.
국정 농단의 주범들을 풀어준 신광렬 판사에 대한 비난은 당연했다. 김관진과 임관빈에게 구속적부심을 열어 도주 우려가 없다고 풀어주는 기괴한 일을 벌인 신 판사와 우병우의 연결고리는 그냥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것은 양승태 시절의 사법 거래와 깊숙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양승태와 박병대, 그리고 고영한, 신광렬, 임효량, 정다주, 임종헌 그리고 아직 실명이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그들의 사단 판사들은 사법 적폐의 핵심들이다. 그들이 삼권분립이 명확한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들었다. 사법부 독립을 무너트리고 스스로 정치권에 사법 거래를 제안하고 이를 통해 내부 권력을 극대화하려는 야욕만 부렸다.
자신들의 입신양면을 위해 억울한 희생자들을 양산하고도 그들은 반성조차 하지 않고 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 서른 명과 KTX 여승무원 1명의 죽음을 그들은 어떻게 책임질 수 있는가? 정당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증오한다는 이유로 해체시키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질 수 있었던 것도 양승태 대법원장이라는 괴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자신의 집 앞에서 뻔뻔하게 거짓말로 인터뷰를 하며 "감히 검찰이 나를 조사해"라며 불쾌해 하던 양승태. 그에 대한 수사는 아무것도 이뤄진 것이 없다. 양승태와 함께 사법 농단의 핵심인 박병대 역시 아무런 조사도 이뤄진 일이 없다.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사라진 박병대와 달리, 꼬리 자르기의 대상이 된 임종헌 전 차장만이 수사를 받고 있는 현실 속에서 사법 개혁은 과연 가능할까?
철저하게 자신들에 대한 수사를 막기에 급급한 판사 조직을 보면 개혁은 불가능해 보인다. 스스로 모든 것을 내려 놓고 환부를 도려내지 않으면 회생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자신들의 치부를 내보이기 원하지 않는다. 반성도 하지 않은 채 사법부를 붕괴시킨 자들을 비호하기에 여념이 없다.
같은 판사를 감시하고 보고하고, 사법 거래를 하는 과정들 역시 넓게 보면 판사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당당하게 인터뷰를 하는 현직 판사의 모습을 보면 사법 개혁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음을 확인 시켜준다. 이런 자들이 재판관으로 있는 사법부를 어떻게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공수처가 도입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사법부는 스스로 자신들의 과오를 드러내고 대국민 사과와 함께 연루된 모든 판사들은 자신들의 행위에 걸맞는 처벌을 받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양승태와 박병대와 같은 판사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사법부다. 사법 농단 책임자들에 대한 단죄에서부터 개혁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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