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15. 10:41

착하지 않은 여자들 24회-용서와 화해 그리고 사랑, 너무 뻔해서 더욱 따뜻했던 해피엔딩

긴 이야기의 끝에는 따뜻함이 가득했다. 할리우드 엔딩이라 불리는 마무리마저도 따뜻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안에 품고 있는 가치가 특별했기 때문이다. 막장이 대세가 되고 일상처럼 여겨지던 시대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품은 드라마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이기 때문이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행복;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하나 된 그들, 뻔해도 따뜻했던 해피엔딩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품고 있었던 고통과 아픔을 풀어내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긴 시간 지독하고 아프게 품고 있었던 아픔은 마음을 여는 순간 눈 녹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편하게 던져 버릴 수 없었던 트라우마처럼 마음속에 각인 되었던 그 아픔은 사랑으로 모두를 치유하게 했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사실 착할 수 없는 여자들이었다. 지독한 삶을 홀로 살아가야만 했던 여자들에게 세상은 착하지 말라고 강요했다. 착하면 손해보고 착하면 상처를 받는 세상에서 착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현실. 그 지독한 현실 속에서 그들은 다시 한 번 착해도 괜찮은 여자들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사람의 감정이나 인연은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고 예측 할 수도 없다. 이런 감정들은 엇갈리기도 하고 지독한 앙금만 고통을 안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감정들이 충돌하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그 내상은 지독할 정도로 아프고 저릴 정도로 평생을 힘겹게 하기도 한다. 애써 감추고 외면한다고 해서 그 상처가 치유될 수는 없다. 정말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모든 것을 끄집어내 털어내는 것밖에는 없다.

 

개인적 감정과 고통을 품고 살면서 복수만을 생각했던 말년은 자신을 짓밟았던 선생을 위해 교사가 되었다. 그 복수의 끝에는 자신을 괴롭힌 교사보다 더 지독한 괴물이 되어갔다. 지독한 탐욕은 그녀를 괴물로 만들었고 그렇게 자신을 괴롭힌 교사보다 더 지독한 교사가 되어 또 다른 희생자 현숙을 만들어냈다. 그런 지독한 악의 고리는 하나의 연대기를 형성하고는 한다.

 

현숙 역시 말년보다 지독한 존재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전수하는 역할을 했다면 그 악의 연대기는 더욱 강력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연대기가 모두에게 통용되지 않다는 것을 현숙은 보여주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고등학생인 그녀는 길거리에 내던져졌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모든 것을 내팽겨 친 엄마. 그 지독한 현실 속에서 현숙은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지독한 현실 속에서 현숙은 현정의 친구인 구민을 만났고, 그녀는 평범한 주부로 살아갈 수 있었다. 자신이 하지 못한 것들을 채워내기 위해 딸 마리를 악착같이 키웠다. 최고 대학을 졸업시키고 박사 학위까지 받게 한 성공한 학부모가 되었지만, 채워지지 않은 헛헛함은 그녀를 여전히 방황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좌충우돌 모두에게 피해만 입히는 철부지 막내를 버리지 못한 채 살아가던 그녀의 인생 역전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말년을 만나고 나서부터다. 자신의 인생을 최악으로 몰아넣었던 인물을 다시 만나며 그녀는 새로운 가치들을 찾기 시작했고, 그녀는 그렇게 성장해갔다.

 

현숙과 공개적으로 요리대결을 신청한 박은실 역시 힘든 삶을 살아낸 인물이다. 이모 밑에서 자라 가족의 정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랐던 은실은 안국동 강 선생의 제자가 되면서 채워지기 시작했다. 지독한 현실 속에서 잔인한 현실과 싸우기도 했던 그녀는 순옥과 함께 하면서 자신의 인생 가장 화려하고 따뜻한 봄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위기는 현숙이 부엌에 서는 순간이었다.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천재와 같은 솜씨를 가진 현숙에 당황한 은실은 자격지심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도 사랑받지 못했던 그래서 지독한 삶을 버텨내야만 했던 은실은 지독한 위기를 느꼈다. 누구나 그랬듯 안국동 강선생도 자신을 내치고 버릴 것이라는 확신이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런 불안은 결국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을 하게 했고 엇나간 그녀의 행동은 안국동 강선생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자신의 남편을 빼앗아 갔다고 오해했던 순옥은 모란을 만나면서 사실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리고 죽었다고 생각했던 남편 철희가 기억 상실증에 걸려 돌아오며 모든 오해들은 완벽하게 풀어지게 되었다. 앙금을 품고 살아갔던 순옥은 복수를 위해 모란을 품고 있으며 복수를 다짐했다. 하지만 독하지 못한 여자 순옥은 모란을 친 동생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친자매 이상의 관계가 되었다. 30년이라는 지독한 고통을 풀어낸 그들에게는 그 어떤 앙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작과 끝은 현숙이었다. 가장 모난 돌이었던 그녀의 변화는 <착하지 않은 여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30년 전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고, 현재 모든 문제를 풀어내는 종결이기도 했다. 그리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희망이기도 했다.

 

이문수 기자의 책을 내는 자리에서 아내에게 쓴 편지를 읽던 말년은 분노한다. 그 편지는 자신이 아닌 사별한 전처에 대한 애절한 사랑의 글이었다. 루오가 일곱 살인 상태에서도 전처를 잊지 못하고 편지를 쓴 남편을 다시 확인한 말년의 눈물은 사랑받지 못한 여인의 아픔이었다. 평생 뭔가를 잡기 위해 살았던 그녀이지만 잡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환상은 결국 아픈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말년의 모습을 보면서 현숙이 생각한 것은 그녀 역시 외롭고 아픈 존재라는 사실이다. 대단한 재산을 가진 집안에 시집가 다 이룬 것 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녀는 결코 한 순간도 행복할 수는 없었다. 진정한 사랑에 대한 갈증만 가득한 상황에서 결코 마셔서는 안 되는 소금물 같은 탐욕에만 집착한 그녀에게는 지독한 현실만 존재할 뿐이었다.

 

시장에서 만난 현숙에게 까칠하기만 한 은실을 바라보며 현숙은 역지사지를 생각한다. 자신 역시 타인의 말에 날선 반박만 해왔던 자신을 돌아본다. 그리고 힘겹게 안국동을 다시 찾은 은실에게 요리 대결을 하자고 한다. 그 대결의 의미는 복수가 아닌 그녀의 간절함에 대한 답이었다.

 

 

'상처 받은 친구를 위로할 때'라는 주제를 가지고 요리를 만들어 경쟁을 한 그들은 모든 앙금을 털어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모든 문제를 풀어내는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그들의 요리대결은 대결이 아닌 화해를 위한 시도였다.

 

평범한 김치찜은 은실에게 하나 밖에 없는 이모의 따뜻함을 느끼게 했다. 꾹꾹 참아왔던 아픔은 그렇게 시원하게 쏟아냈다. 지독한 삶의 흔적들을 그렇게 쏟아내고 순옥의 품에 안긴 은실은 행복하기만 했다. 음식은 누군가를 위해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보고 싶지도 않은 아니 복수를 하고 싶었던 존재인 말년을 위해 현숙은 '먹으면 힘나는 도시락'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손을 내민 현숙의 등에 업혀 가면서도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는 말년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30년이라는 지독한 시간을 힘겹게 이겨낸 이들은 그렇게 앙금은 씻어내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었다.

 

모란의 엉뚱한 행동에 통곡하던 순옥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모란. 자신을 좋아하는 구나라며 행복해하는 모란은 그렇게 안국동 식구를 얻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3년이 지나 현숙은 정식 청소년 상담교사가 되었다. 진짜 선생님이 된 현숙은 구민과 부부동반 모임에 나선다.

 

늦게 결혼했지만 벌써 둘째를 품고 있었고, 말년은 우연히 들린 꽃집에서 충길과 재회한다. 30년 동안 변하지 않은 사랑과 마주한 말년은 한결 편안한 모습이었다. 모든 탐욕을 내려놓는 순간 행복은 찾아왔고, 그런 행복은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다.

 

이사 떡을 보고 행복한 순옥 앞에 큼지막한 떡을 들고 등장한 모란은 철희의 말처럼 그녀는 안국동에 한옥 한 채를 사서 이사했다. 비록 가족으로 함께 살 수는 없지만, 가족처럼 어울리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도 행복하게 해주었다. 너무 뻔한 해피엔딩이었지만 그래서 따뜻하고 행복했던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간만에 접하는 착한 드라마였다.

 

문제아였던 현숙. 나쁜 교사였던 말년. 사람을 믿지 못했던 은실.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그렇게 서로를 들여다보며 착한 여자가 되었다. 착하지 못해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착해서 잘 사는 세상. 그 아름답고 행복한 환상을 이야기하는 착한 드라마 <착하지 않은 여자들>은 시청자들에게 다시 한 번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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