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24. 10:26

씨름의 희열-KBS 가치 일깨운 기획, 시즌 2가 절실하다

한때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민속 씨름이 이제는 언제 어떻게 하는지 알 수도 없을 정도로 쇄락했다. 거대한 몸집으로 버티기만 하던 씨름은 팬들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기술도 없이 비대해진 몸으로 모래 위에 서서 체중계로 승부가 가리는 씨름은 당연히 존재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고 인기 스포츠에서 몰락해 민속 씨름으로 연명만 하던 씨름이 새로운 가치를 선사받았다. KBS가 기획한 <씨름의 희열>은 그렇게 존재감이 사라져 가는 씨름을 다시 주목받게 만들었다. 이 기획의 근간은 SNS을 통해 퍼지기 시작한 씨름의 재발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뉴트로 열풍이 과거 음악만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로 확장되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아버지 어머니 세대가 좋아했던 것들을 다시 취하는 과정에서 씨름 역시 소환되었다. 뛰어난 외모와 완벽한 몸매를 가진 남자들이 모래판 위에서 다양한 기술로 다투는 스포츠에 많은 젊은 팬들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팬들에 의해 새롭게 발굴된 선수들이 주목을 받으며 씨름장에도 소위 말하는 대포 카메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돌들에게나 하는 응원 문구들이 나오며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KBS는 <씨름의 희열>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런 흐름을 확실하게 이끌었다.

 

'태극장사' 등극하면 1억이라는 우승 상금을 받는 이 대전은 태백과 금강 장사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다. 상대적으로 낮은 몸무게라는 이유로 상금도 적었던 그들에게는 기회였다. 기술 씨름이라는 비대한 체급과는 전혀 다른 그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씨름의 재미를 만끽하게 해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2019년 11월 30일 첫 방송이 되어 2020년 2월 22일 '태극장사'가 탄생하는 순간까지 3개월 동안 씨름은 매주 시청자들과 만났다. 탄탄한 몸매의 선수들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그리고 그들이 펼치는 씨름이 얼마나 흥미롭고 재미있는지 알 수 있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씨름의 희열>로 인해 많은 씨름 스타들이 탄생했다. 얼굴과 이름도 생경했던 선수들을 이제는 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하는 씨름 기술들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씨름 경기장에서 경기를 보는 재미를 키워졌다는 점에서도 반가운 일이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16명의 씨름 선수들은 태백과 금강에서 최고수들이다. 가장 어린 대학생 강성인부터 금강의 전설인 이승호까지 현재 씨름의 판도를 명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반가웠다. 방송 전 이미 팬들이 알아본 스타들인 황찬섭, 최정만, 박정우, 손희찬 등도 함께 하며 매력을 더욱 확대시켰다.

이승호, 임태혁, 황재원, 오흥민, 이준호, 최정만, 윤필재, 김기수, 황찬섭, 전도언, 김기수, 손희찬, 허선행, 노범수, 김태하, 강성인 등 16명의 씨름 선수들이 펼친 3개월 동안의 여정은 많은 이들에게 '씨름'이 왜 재미있는 스포츠인지 잘 보여주었다.

 

짧은 시간안에 온 힘을 다 쏟아부어 기술로 상대를 누르는 씨름은 그 어떤 스포츠와 비교해도 충분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비대해진 천하장사 스타일에 많은 이들이 외면했을 뿐이었다. 태극과 금강은 체급이 달라 함께 경기를 할 수는 없다. 

 

서로 10kg을 높이고 줄이는 방식으로 체중을 맞춘 후 최고수 16명이 다양한 방식으로 충돌하고 대결하는 그 모든 과정은 흥미로웠다. 절대 강자라 불렸던 선수들이 체급이 더 낮은 선수들에게 기술로 패배하는 과정을 보면 씨름 기술이 얼마나 흥미롭고 재미있는지 알 수 있게 했다.

 

초대 '천하장사'인 이만기가 해설자로 나서 후배들이 다시 한번 씨름 부흥기를 열어주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반가웠다. 관중 없이 경기를 하던 그들은 600명의 관객들 앞에서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결승 무대를 앞두고 오픈된 경기장에는 6천 명이 넘는 신청자들이 몰릴 정도로 인기였다.

 

선수들은 자신들이 600명 앞에서 경기를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놀랐다. 매번 텅빈 경기장에서 경기를 하던 선수들에게 600명이라는 숫자는 거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팬들 앞에서 서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떨리던 선수들은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가족과 팬들 앞에서 최선을 다한 선수들. 허선행 선수는 허리가 아픈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태백 장사인 박정우는 금강 최다 장사 타이틀을 가진 이승호와 경기에서 압도적인 모습으로 승리 직전까지 다가갔었다. 무릎 보호대가 모래에 먼저 닿지 않았다면 기적은 가능했을 정도로 말이다.

 

경기 시간 1분과 추가 30초 사이 벌어지는 이들의 치열한 수 싸움과 체력과 기술을 앞세운 경기는 많은 이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씨름 성지라고 불리는 창원에서 가진 결승전은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씨름의 희열을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무대였다. 하지만 코로나 19로 인해 무관중 경기를 치러야 했던 것은 유일한 옥의 티였다.

8강전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다. 누가 승자가 될지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경기를 치르며 이어진 경기의 최종 승자는 현 금강 최고수인 임태혁의 몫이었다. 누가 초대 '태극장사'가 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던 치열한 경쟁. 그 여정을 함께 한 선수들은 모두 승자였다.

 

인기 스포츠가 아닌 그 어떤 것도 어떤 식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인기 스포츠가 될 수도 있음을 <씨름의 희열>은 잘 보여주었다. 어떤 식으로 바라보고 다가갈 것인지 고민을 하면 비인기 종목도 달라질 수 있음을 잘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도 <씨름의 희열>은 특별했다.

 

시즌 2가 나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요구다. 초대 '태극 장사'가 나왔으니 이 자리를 두고 다시 자웅을 겨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꼼수가 아닌 정정당당하게 씨름으로 승부를 가리는 이들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은 것은 자연스럽다. 최종 16명을 뽑는 과정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지도 이제는 중요해졌다.

 

씨름 협회와 함께 경량급의 경우 '태극장사'를 정점에 두고 리그제처럼 점수를 매겨 태백과 금강이 1년에 최소 한번 정도는 자웅을 겨루는 경기들을 해나갈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이미 설날 천하장사 씨름대회에 만원 관중이 보여주었듯, 씨름을 다시 한 번 국민 스포츠로 만들고 있는 <씨름의 희열>이 시즌제로 진행되며 더 많은 스타들이 발굴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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