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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이 또 다시 위기설에 봉착해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나오는 위기설이라 위기감도 없는 게 문제이지만 일부 언론에서 줄기차게 이야기하는 위기설에 수장인 김태호 피디는 무척이나 현명한 자기철학으로 답했습니다. 왜 많은 이들이 무한도전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지를 태호 피디는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시청률이 아닌,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방송
현대 사회에서 방송이 차지하는 비중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만 있습니다. 단순한 유희의 도구가 아닌 생활 깊숙이 들어와 버린 방송은 현대인의 모든 것을 재단하고 교시하며 모두를 종속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방송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만 있습니다.
매일 방송되는 드라마와 예능이 다음 날 소통의 중심이 되고 화제가 되는 세상에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기 위해 보기 싫어도 봐야 하는 상황은 방송의 인생 장악력이 어느 지점까지 와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케이블 방송까지 수많은 채널과 그 안에 담아내고 있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각자가 선호하는 방송들은 정해져있습니다. 자신만의 스케줄대로 방송을 향유하는 이들에게 무한도전은 어떤 의미일까요?
토요일 저녁 모두가 놀러가기 바쁜 시간에 방송되는 <무한도전>은 최장수 예능의 자존심을 지키며 여전히 선전중입니다. 하지만 일부 시청자들과 언론은 매번 위기를 이야기합니다. 뭘 해도 문제이고 위기일 수밖에 없다는 말로 5년을 꾸준하게 위기론을 이야기해왔지만 실질적인 위기는 몇 번이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항중입니다. 아니 시간이 가면 갈수록 <무한도전>의 존재감은 커져가기만 합니다.
위기론에 대해 김태호 피디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는데 그 안에 그들의 가치와 의미들이 잘 녹아들어가 있었습니다.
지난 달력 특집의 시청률이 13.2 %가 나와 강호동의 스타킹과의 차이가 얼마나지 않아 위기라는 논리에 태호 피디는 달력 특집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성 시청자들보다는 여성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이었다는 말은 일면 이해할 수도 받아들이기 힘들기도 합니다. 성별을 떠나 충성스러운 시청자들이 최소한 10% 이상의 시청률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인터넷 기사에서 <무한도전>의 위기론과 문제점은 몇몇 한정된 기자에 의해 작성되고 여론화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바턴을 주고받듯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선 기자가 좌초하면 다른 기자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형식으로 매주 <무한도전> 비판 기사로 지면을 할애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들로 인해 매주 <무한도전>은 위기에 처하고 그 위기는 5년을 이어왔습니다. 사회적 의미들을 담아내고 많은 이들과 소통하며 재미와 주제의식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단순한 시청률이라는 수치로 모든 것을 재단합니다. 무엇을 담아내고 어떤 방식의 소통을 이야기하는지는 관심 없이 오직 무너져야 하는 <무한도전>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신기해하며 비난하기에만 바쁩니다.
김태호 피디가 "무한도전에 새로운 두전이 생겼다. 위기 기사를 없애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됐다"라고 말할 정도로 병적으로 위기론에 집착하는 일부 시청자들과 기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씁쓸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김태호 피디와 <무한도전>이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야기는 바로 이 부분입니다. 김태호 피디가 밝힌 성공의 조건은 그들이 왜 5년이 넘는 시간동안 토요일 저녁 시간을 장식하며 많은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자가당착이나 자기만족이라고 비판하는 이도 존재할 겁니다. 뭐든지 싫은 이들에게 말투와 내용 하나하나가 불만일 수 있으니 말이지요. 심지어 김태호 피디의 외모로 비난의 줄기를 잡는 이들도 존재하는 상황에서 뭐든 문제가 아닌 게 있겠습니까.
시청률 지상주의 사회에서 시청률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시청률이란 방송이 존속되어야 하는지 말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자대가 되어왔으니 말이지요. 하지만 그 기준점을 어디에 잡고 있느냐는 중요할 것입니다.
무조건 시청률에만 목을 맨 채 자신의 영혼마저 팔아버린 방송은 방송으로서의 가치도 상실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시청률이 높아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 당연히 실패입니다. 역으로 시청률이 낮아도 스스로 만족한다면 이는 성공이라는 당연한 그의 발언은 시청률에 의해 일희일비하는 현실에서 중요한 가치를 견지하는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시청률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만드는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방송이 아니라면 아무리 시청률이 높게 나와도 이는 실패일 수밖에 없다는 자세는 왜 많은 이들이 <무한도전>에 열광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순한 예능의 범주를 넘어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양한 의미와 생각의 가치를 제시하는 <무한도전>은 단순한 비교에서 벗어난 예능입니다.
막연한 비판은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습성 상 버릴 수 없는 그들의 비난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시청률이 높게 나오면 과거의 날카로운 비판 정신이 사라졌다며 공격할 그들에게 시청률이라는 자대는 비난을 위한 편의적인 도구일 뿐이니 말이지요.
너무나 당연한 그들의 논리를 알고 있는 김태호 피디는 시청률보다는 내용의 만족도에 커다란 방점을 찍음으로서 무조건적인 비난에 대해 확실한 답을 제시했습니다. 우문현답일 수 있는 그의 발언은 <무한도전>이 왜 대단한 방송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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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방송연예드라마스토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단순한 시청률이 아닌,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방송
현대 사회에서 방송이 차지하는 비중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만 있습니다. 단순한 유희의 도구가 아닌 생활 깊숙이 들어와 버린 방송은 현대인의 모든 것을 재단하고 교시하며 모두를 종속시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방송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만 있습니다.
매일 방송되는 드라마와 예능이 다음 날 소통의 중심이 되고 화제가 되는 세상에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기 위해 보기 싫어도 봐야 하는 상황은 방송의 인생 장악력이 어느 지점까지 와 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케이블 방송까지 수많은 채널과 그 안에 담아내고 있는 셀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각자가 선호하는 방송들은 정해져있습니다. 자신만의 스케줄대로 방송을 향유하는 이들에게 무한도전은 어떤 의미일까요?
토요일 저녁 모두가 놀러가기 바쁜 시간에 방송되는 <무한도전>은 최장수 예능의 자존심을 지키며 여전히 선전중입니다. 하지만 일부 시청자들과 언론은 매번 위기를 이야기합니다. 뭘 해도 문제이고 위기일 수밖에 없다는 말로 5년을 꾸준하게 위기론을 이야기해왔지만 실질적인 위기는 몇 번이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순항중입니다. 아니 시간이 가면 갈수록 <무한도전>의 존재감은 커져가기만 합니다.
위기론에 대해 김태호 피디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는데 그 안에 그들의 가치와 의미들이 잘 녹아들어가 있었습니다.
"시청률이 낮다는 평가가 있다. 재미 없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달력특집의 경우 여성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반면 남성시청자들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그 결과 나타난 시청률이다"
지난 달력 특집의 시청률이 13.2 %가 나와 강호동의 스타킹과의 차이가 얼마나지 않아 위기라는 논리에 태호 피디는 달력 특집의 특성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성 시청자들보다는 여성 시청자들이 선호하는 프로그램이었다는 말은 일면 이해할 수도 받아들이기 힘들기도 합니다. 성별을 떠나 충성스러운 시청자들이 최소한 10% 이상의 시청률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인터넷에서 기사를 검색해보면 무한도전은 지난 5년간 계속 위기였다. 위기가 없었던 적이 없다"
"숫자로 평가하는 이들보다 제작진은 몇 배나 고민하고 반성하고 있다. 지금 무한도전에 새로운 도전이 생겼다. 위기 기사를 없애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됐다"
"숫자로 평가하는 이들보다 제작진은 몇 배나 고민하고 반성하고 있다. 지금 무한도전에 새로운 도전이 생겼다. 위기 기사를 없애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됐다"
인터넷 기사에서 <무한도전>의 위기론과 문제점은 몇몇 한정된 기자에 의해 작성되고 여론화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바턴을 주고받듯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선 기자가 좌초하면 다른 기자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 형식으로 매주 <무한도전> 비판 기사로 지면을 할애하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들로 인해 매주 <무한도전>은 위기에 처하고 그 위기는 5년을 이어왔습니다. 사회적 의미들을 담아내고 많은 이들과 소통하며 재미와 주제의식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단순한 시청률이라는 수치로 모든 것을 재단합니다. 무엇을 담아내고 어떤 방식의 소통을 이야기하는지는 관심 없이 오직 무너져야 하는 <무한도전>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신기해하며 비난하기에만 바쁩니다.
김태호 피디가 "무한도전에 새로운 두전이 생겼다. 위기 기사를 없애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됐다"라고 말할 정도로 병적으로 위기론에 집착하는 일부 시청자들과 기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씁쓸하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시청률이 높아도 우리가 만족하지 않는다면 실패한 도전이다. 시청률이 낮아도 우리가 만족한다면 성공한 것이다. 달력특집은 재미 있었다"
김태호 피디와 <무한도전>이 특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결정적인 이야기는 바로 이 부분입니다. 김태호 피디가 밝힌 성공의 조건은 그들이 왜 5년이 넘는 시간동안 토요일 저녁 시간을 장식하며 많은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자가당착이나 자기만족이라고 비판하는 이도 존재할 겁니다. 뭐든지 싫은 이들에게 말투와 내용 하나하나가 불만일 수 있으니 말이지요. 심지어 김태호 피디의 외모로 비난의 줄기를 잡는 이들도 존재하는 상황에서 뭐든 문제가 아닌 게 있겠습니까.
시청률 지상주의 사회에서 시청률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시청률이란 방송이 존속되어야 하는지 말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자대가 되어왔으니 말이지요. 하지만 그 기준점을 어디에 잡고 있느냐는 중요할 것입니다.
무조건 시청률에만 목을 맨 채 자신의 영혼마저 팔아버린 방송은 방송으로서의 가치도 상실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시청률이 높아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 당연히 실패입니다. 역으로 시청률이 낮아도 스스로 만족한다면 이는 성공이라는 당연한 그의 발언은 시청률에 의해 일희일비하는 현실에서 중요한 가치를 견지하는 모습으로 비춰집니다.
시청률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만드는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방송이 아니라면 아무리 시청률이 높게 나와도 이는 실패일 수밖에 없다는 자세는 왜 많은 이들이 <무한도전>에 열광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순한 예능의 범주를 넘어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양한 의미와 생각의 가치를 제시하는 <무한도전>은 단순한 비교에서 벗어난 예능입니다.
막연한 비판은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습성 상 버릴 수 없는 그들의 비난을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시청률이 높게 나오면 과거의 날카로운 비판 정신이 사라졌다며 공격할 그들에게 시청률이라는 자대는 비난을 위한 편의적인 도구일 뿐이니 말이지요.
너무나 당연한 그들의 논리를 알고 있는 김태호 피디는 시청률보다는 내용의 만족도에 커다란 방점을 찍음으로서 무조건적인 비난에 대해 확실한 답을 제시했습니다. 우문현답일 수 있는 그의 발언은 <무한도전>이 왜 대단한 방송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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