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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야심차게 내놓은 드라마인 '꽃보다 남자(이하 꽃남)"가 전형적인 막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어떤 재미를 시청자들에게 전해주려 하는지도 모르겠고, 무엇에 촛점을 맞춰 시청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막장의 모든것을 보여주마
고등학교 학생들이 펼치는 막장의 모든 것들을 보여주고 있는 '꽃남'은 연일 언론들을 통해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멋진 남자배우들과 주연여배우에 대한 일거수일투족들이 모두 화제가 되고 이런 언론 때문인지(물론 언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시청률 역시 높은 편입니다.
물론 언론의 몰아주기가 없었더래도 이 정도의 인기는 끌것으로 예측되었던 드라마였지요. 이미 검증된 만화 원작이었으며, 대만, 일본등 이미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한 전례가 있었기에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꽃남'에 대한 기대치도 무척이나 높았습니다.
더불어 꽃미남이라 불리는게 더욱 어울려보이는 4명의 남자 배우들(김현중, 이민호, 김범, 김준)이 출연하는데 싫을 이유가 어디있을까요? 더불어 그들이 보여주는 현실과 동떨어진 가상의 세계는 마치 만화를 보는 듯해서 즐겁습니다. 아니 즐겁다기 보다는 그저 그렇게 시간 때우기에 무난해 보였습니다.
모든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하는 드라마일 이유는 없습니다. 극단적인 만화같은 세계를 구현해도 좋을 듯 합니다. 그러나 어느정도의 현실성도 필요할 것입니다. '꽃남'은 현실보다는 만화같은 세상을 구현하는데 더욱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럼 왜 높은 시청률이 나오고 있는 꽃미남 드라마 '꽃남'이 어떤 부분들때문에 '막장'이란 표현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어떤 막장스러움이 이 드라마에 있는 것일까요?
어른이 사라져버린 사회 '꽃남'
이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어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어른은 나이를 기준을 삼는 것이 아닌, 인격적인 측면에서 거론될 수있는 어른들을 말합니다. 가족 구성원으로는 유일하게 등장하는 잔디의 집안은 극단적으로 희화화되어 있기만 합니다. 그들의 부모들은 이것저것 생각없이 딸이 재벌집에 보쌈이라도 당해 시집이라도 가면 좋겠다는 인물들로 나옵니다. 딸이 외박을 해도 재벌집 아들과 있었음이 그저 자랑스러울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딸이 어떤 상황인지 왜 그런 상황에 내몰려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없습니다. 그리고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그들의 딸이 대단한 집안으로 시집만 갈 수있다면 인생 모든것이 '해피'하다 생각하는 부모들입니다.
그들은 고등학생들입니다. 그렇지만 학교에는 선생이 없습니다. 기존의 학원물과는 달리 획기적으로 교사들을 제외함으로서, 그들만의 공간인 학교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학교로서의 가치보다는 재벌들의 놀이 동산정도로만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이고 어른들이 없는 드라마는 막장이라는 논리가 아닙니다. 그런 극단적인 분리가 아닌 균형의 미가 전혀없다는 것은 문제가 될 수있을 것입니다. 혹시 현재 대한민국에는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작진들의 무언의 항변일까요? 그렇지만 '꽃남' 제작진들이 그런 의도를 내포하고 제작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저 편의에 의해서 어른이라는 존재들이 사라져 보일 뿐이니 말입니다.
잔디 부모의 극단적인 맹신과 준표 어머니의 마귀스러움, 준표가 부리는 종으로서의 어른들을 제외하고 '꽃남'의 세계에선 어른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그나마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민서현을 극에서 더이상 볼 수없게 되었지요). 그렇다고 고등학생인 이들 주인공들의 삶이 어른스러운 삶을 추구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못된 어른들의 모든 것들만 스펀지처럼 흡수한 채, 어른이 없는 세계에서 어른 이상의 권력을 남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른이 존재하지 않아 아쉬운것이 아니라 어른 역할을 해줄 그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상징적인 어른이라는 존재가 사라짐으로서 그들을 (올바른 방향으로)통제하고 규제하는 기준이 사라져버린 무법의 공간이 펼쳐지도록 방치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학원 폭력과 왕따 괜찮은가?
잔디에 대한 준표의 사랑이 본격화되면서 문제는 불거지기 시작합니다. 이를 시기한 잔디의 친구는 모략을 꾸며 잔디가 술을 마시고 쓰러지게 유도합니다. 그리고 낯선 남자의 품에 안겨있는 사진을 학교에 뿌려 잔디를 위기에 몰리게 만듭니다. 참 극단적이지요. '꽃남'에서 잔디는 술마시고 필름 끊겨 남자의 집에서 자는 장면들이 자주도 나옵니다. 이게 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유쾌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를 목격한 준표는 잔디에게 화를 내고 이를 지켜보던 많은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극단적인 욕을 하며 잔디를 집단 폭행을 하게 됩니다. 설상가상 집으로 돌아가던 잔디를 무슨 군사작전 펼치듯 덥쳐 집단 폭행을 하고, 잔디의 자전거를 태우고, 피흘리며 쓰러져 있는 그녀에게 분무기를 마구 뿌리는 등 그들의 집단 만행이 그대로 방송으로 보여졌습니다.
끔찍한 수준을 넘어서 경악할 정도였습니다. 그 누구의 제재도 없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그들만의 폭력은 도를 넘어서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으로 표출되어집니다. 피투성이가 된 여학생에 분무기를 뿌리는 남학생의 모습과 이를 지켜보고 즐거워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혐오를 넘어 세기말의 증후로까지 보여졌습니다. 과연 이 드라마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감당이 안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표현을 통해 잔디와 준표의 사랑의 의미를 전달하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보이기는 하지만, 이런식의 표현을 선택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다른 여러가지 선택지들 중에서 '막장스러움'을 극적인 관계를 위한 어쩔 수없는 선택이었다고 그들은 강변 하려는 것일까요?
아무리 의미있게 바라보려해도 이런 극단적인 모습들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하게 하려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들을 가진 이들(절대자)의 말한마디에 다른 학생들은 집단적으로 나약한 학생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행을 일삼습니다. 그리고 그런 불합리에 불응하거나 대응하지도 않습니다.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그 역시도 집단 따돌림과 폭행의 대상이 될 수있기 때문이지요. '꽃남'은 독재정권에 의해 저질러지는 극단적인 공포정치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 해서 무척이나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재벌이 세운 그들만의 왕국인 학원에서 빚어지는 이런 힘의 관계는 사회적으로 커다한 문제를 야기시킬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돈이 최고이며, 그 돈이 권력을 만들고 그 권력은 언터처블의 힘으로 인식되어지도록 유도합니다. 이 드라마를 보는 청소년들에게는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신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있고 그런 돈의 권력이 얼마나 강하고 위대한지 이 드라마는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습니다.
돈과 막강한 권력만이 인생의 최고 가치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드라마가 바로 '꽃남'입니다. 이런 모습들이 부각되기를 바라며 만들지는 않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내용들이 의도적으로 보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미 '막장'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의 드라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막가는 방송들은 미덕이라고 보는 것일까요?
화려함으로 포장되어진 '꽃남'속에 일상적으로 펼쳐지는 폭력이 난무하고 용인되는 상황들이 무척이나 불편합니다.
*KBS 사진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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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방송연예드라마스토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막장의 모든것을 보여주마
고등학교 학생들이 펼치는 막장의 모든 것들을 보여주고 있는 '꽃남'은 연일 언론들을 통해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멋진 남자배우들과 주연여배우에 대한 일거수일투족들이 모두 화제가 되고 이런 언론 때문인지(물론 언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시청률 역시 높은 편입니다.
물론 언론의 몰아주기가 없었더래도 이 정도의 인기는 끌것으로 예측되었던 드라마였지요. 이미 검증된 만화 원작이었으며, 대만, 일본등 이미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한 전례가 있었기에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꽃남'에 대한 기대치도 무척이나 높았습니다.
더불어 꽃미남이라 불리는게 더욱 어울려보이는 4명의 남자 배우들(김현중, 이민호, 김범, 김준)이 출연하는데 싫을 이유가 어디있을까요? 더불어 그들이 보여주는 현실과 동떨어진 가상의 세계는 마치 만화를 보는 듯해서 즐겁습니다. 아니 즐겁다기 보다는 그저 그렇게 시간 때우기에 무난해 보였습니다.
모든 드라마가 현실을 반영하는 드라마일 이유는 없습니다. 극단적인 만화같은 세계를 구현해도 좋을 듯 합니다. 그러나 어느정도의 현실성도 필요할 것입니다. '꽃남'은 현실보다는 만화같은 세상을 구현하는데 더욱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럼 왜 높은 시청률이 나오고 있는 꽃미남 드라마 '꽃남'이 어떤 부분들때문에 '막장'이란 표현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어떤 막장스러움이 이 드라마에 있는 것일까요?
어른이 사라져버린 사회 '꽃남'
이 드라마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어른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어른은 나이를 기준을 삼는 것이 아닌, 인격적인 측면에서 거론될 수있는 어른들을 말합니다. 가족 구성원으로는 유일하게 등장하는 잔디의 집안은 극단적으로 희화화되어 있기만 합니다. 그들의 부모들은 이것저것 생각없이 딸이 재벌집에 보쌈이라도 당해 시집이라도 가면 좋겠다는 인물들로 나옵니다. 딸이 외박을 해도 재벌집 아들과 있었음이 그저 자랑스러울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딸이 어떤 상황인지 왜 그런 상황에 내몰려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없습니다. 그리고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그들의 딸이 대단한 집안으로 시집만 갈 수있다면 인생 모든것이 '해피'하다 생각하는 부모들입니다.
그들은 고등학생들입니다. 그렇지만 학교에는 선생이 없습니다. 기존의 학원물과는 달리 획기적으로 교사들을 제외함으로서, 그들만의 공간인 학교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학교로서의 가치보다는 재벌들의 놀이 동산정도로만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등장하는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이고 어른들이 없는 드라마는 막장이라는 논리가 아닙니다. 그런 극단적인 분리가 아닌 균형의 미가 전혀없다는 것은 문제가 될 수있을 것입니다. 혹시 현재 대한민국에는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제작진들의 무언의 항변일까요? 그렇지만 '꽃남' 제작진들이 그런 의도를 내포하고 제작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저 편의에 의해서 어른이라는 존재들이 사라져 보일 뿐이니 말입니다.
잔디 부모의 극단적인 맹신과 준표 어머니의 마귀스러움, 준표가 부리는 종으로서의 어른들을 제외하고 '꽃남'의 세계에선 어른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그나마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민서현을 극에서 더이상 볼 수없게 되었지요). 그렇다고 고등학생인 이들 주인공들의 삶이 어른스러운 삶을 추구할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못된 어른들의 모든 것들만 스펀지처럼 흡수한 채, 어른이 없는 세계에서 어른 이상의 권력을 남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어른이 존재하지 않아 아쉬운것이 아니라 어른 역할을 해줄 그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상징적인 어른이라는 존재가 사라짐으로서 그들을 (올바른 방향으로)통제하고 규제하는 기준이 사라져버린 무법의 공간이 펼쳐지도록 방치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학원 폭력과 왕따 괜찮은가?
잔디에 대한 준표의 사랑이 본격화되면서 문제는 불거지기 시작합니다. 이를 시기한 잔디의 친구는 모략을 꾸며 잔디가 술을 마시고 쓰러지게 유도합니다. 그리고 낯선 남자의 품에 안겨있는 사진을 학교에 뿌려 잔디를 위기에 몰리게 만듭니다. 참 극단적이지요. '꽃남'에서 잔디는 술마시고 필름 끊겨 남자의 집에서 자는 장면들이 자주도 나옵니다. 이게 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유쾌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를 목격한 준표는 잔디에게 화를 내고 이를 지켜보던 많은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극단적인 욕을 하며 잔디를 집단 폭행을 하게 됩니다. 설상가상 집으로 돌아가던 잔디를 무슨 군사작전 펼치듯 덥쳐 집단 폭행을 하고, 잔디의 자전거를 태우고, 피흘리며 쓰러져 있는 그녀에게 분무기를 마구 뿌리는 등 그들의 집단 만행이 그대로 방송으로 보여졌습니다.
끔찍한 수준을 넘어서 경악할 정도였습니다. 그 누구의 제재도 없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그들만의 폭력은 도를 넘어서 극단적이고 파괴적인 모습으로 표출되어집니다. 피투성이가 된 여학생에 분무기를 뿌리는 남학생의 모습과 이를 지켜보고 즐거워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혐오를 넘어 세기말의 증후로까지 보여졌습니다. 과연 이 드라마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감당이 안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런 극단적인 표현을 통해 잔디와 준표의 사랑의 의미를 전달하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보이기는 하지만, 이런식의 표현을 선택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다른 여러가지 선택지들 중에서 '막장스러움'을 극적인 관계를 위한 어쩔 수없는 선택이었다고 그들은 강변 하려는 것일까요?
아무리 의미있게 바라보려해도 이런 극단적인 모습들을 바라보며 무엇을 생각하게 하려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것들을 가진 이들(절대자)의 말한마디에 다른 학생들은 집단적으로 나약한 학생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행을 일삼습니다. 그리고 그런 불합리에 불응하거나 대응하지도 않습니다. 이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그 역시도 집단 따돌림과 폭행의 대상이 될 수있기 때문이지요. '꽃남'은 독재정권에 의해 저질러지는 극단적인 공포정치의 정수를 보여주는 듯 해서 무척이나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재벌이 세운 그들만의 왕국인 학원에서 빚어지는 이런 힘의 관계는 사회적으로 커다한 문제를 야기시킬 수밖에는 없습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돈이 최고이며, 그 돈이 권력을 만들고 그 권력은 언터처블의 힘으로 인식되어지도록 유도합니다. 이 드라마를 보는 청소년들에게는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을 신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있고 그런 돈의 권력이 얼마나 강하고 위대한지 이 드라마는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습니다.
돈과 막강한 권력만이 인생의 최고 가치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드라마가 바로 '꽃남'입니다. 이런 모습들이 부각되기를 바라며 만들지는 않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내용들이 의도적으로 보여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미 '막장'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의 드라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막가는 방송들은 미덕이라고 보는 것일까요?
화려함으로 포장되어진 '꽃남'속에 일상적으로 펼쳐지는 폭력이 난무하고 용인되는 상황들이 무척이나 불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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