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제작에 대한 방송국과 외주제작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드라마의 제왕>은 분명 흥미로운 드라마입니다. 드라마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드라마들이 매일 방송이 되는 대한민국에서 이 드라마가 어떻게 만들어져 시청자들에게 전달되는지 보여주는 이 드라마는 그래서 흥미로웠습니다.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등장한 감수 작가는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갈등 구조의 구축과 드라마 작가와 시청률 지상주의를 논하다
최악의 상황에 떨어진 앤서니가 극적으로 기사회생해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되는 과정은 흥미롭습니다. 앤서니가 좋은가 나쁜가를 떠나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으니 말입니다. 법적인 문제가 없는 한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 속에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존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편성권을 따내 새로운 도약을 꿈꾸었던 월드 프로덕션의 앤서니는 청천벽력 같은 상황을 맞이하고 맙니다. 편성국장이 오진완의 비리 고발로 구속을 당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은 끝나고 새로운 드라마의 제왕으로 등극할 것만 생각하던 앤서니에게는 편성국장의 구속보다 더욱 힘겨운 일이 찾아왔습니다. 앤서니를 최악의 존재로 생각하고 드라마 판에서 앤서니 같은 존재는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던 남운형이 새로운 편성국장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새로 취임한 남 국장은 취임과 함께 전임 국장의 비리를 이유로 앤서니가 제작하려는 <경성의 아침>을 편성에서 제외하고 새로운 작품을 편성하겠다고 밝히며 논란은 시작됩니다. 앤서니 스스로 일본 와타나베 회장이 야쿠자인 사실을 확인했고,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는 가차 없이 죽이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편성은 무슨 일이 있어도 따내야만 하는 사업이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빌어도 남 국장의 선택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어떤 일을 해도 남 국장의 생각이 바뀔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앤서니는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냅니다. 적을 통해 적을 무찌른다는 '이이제이'를 통해 남 국장을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학교 선배이자 강력한 국장 후보였던 김 부국장을 찾아 남 국장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경성의 아침>이 편성을 받아야 한다고 부추깁니다. 남 국장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는 그가 그렇게 싫어하는 작품이 정상적으로 편성이 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은 즉각 효력을 발생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김 부국장은 자신의 사람들을 동원해 남 국장과 대립각을 세우게 하고, 편성회의에서 남 국장의 결정에 반박하며 본격적으로 <경성의 아침>을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앤서니는 인맥을 동원해 방송사 사장과 함께 술을 마실 기회를 잡고 권력으로 찍어 누르는 작업까지 마칩니다. 사장이 지시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자신의 뜻대로 편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앤서니의 인맥 동원은 결국 편성권 확보로 이어지게 됩니다.
편성권을 따내기 위해 내쳤던 이고은을 찾아 떠난 앤서니는 그녀를 만나자 마자 죽을 고비를 넘기고 맙니다. 죽도록 싫은 앤서니의 등장해 당황하다 바다에 빠진 고은을 구한다고 뛰어든 앤서니가 정신을 잃었으니 말입니다. 수영도 하지 못하면서 뛰어든 앤서니의 이런 무대포같은 성격이 결과적으로 편성권을 따내고 새로운 도약을 위한 시작을 알렸다고 하지만, 그 안에는 앤서니의 본심과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투박스럽고 고은을 미워하는 듯하지만, 앤서니가 고은을 아끼고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새롭게 편성권을 따낸 후 옥상에서 남 국장에게 이고은 작가를 데려오겠다고 한 것은 남 국장이 요구해서가 아니라, 앤서니가 선택한 행동이었습니다. 물속에 빠진 고은을 위해 수영도 못하는 그가 과감하게 뛰어든 것 역시 앤서니가 고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라는 점에서 중요했습니다.
신인으로서 자신의 작품이 드라마로 편성되어 방송을 타게 된다는 사실은 그녀가 다시 앤서니와 함께 일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미 자신의 방송작가 스승이었던 정홍주 작가의 드라마를 고쳤던 고은으로서는 비슷한 일을 자신이 경험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광고 수익을 위해 말도 안 되는 장면을 삽입시키도록 극본을 수정하게 했던 앤서니는 <경성의 아침>을 다시 뜯어고치라고 요구합니다.
신선하고 새로운 이야기는 분명 의미 있지만, 자신은 마니아를 위한 드라마가 아니라 통속적인 이야기를 통해 성공한 드라마를 만드는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오직 시청률이 아니라면 평가받을 수 없는 시장에서 작가주의 드라마가 무슨 의미냐는 앤서니의 발언에는 시청률 지상주의의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나 있었습니다.
막장 드라마가 40%를 넘고, 신선한 시도를 하는 작품들이 한 자리 수치를 보이는 현실에서 백억에 가까운 돈이 들어가는 혹은, 그 이상의 제작비가 필요한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작가주의보다 수익이 극대화되는 작품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선사업이 아닌 이상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은 당연하니 말입니다. 문제는 이런 시청률 지상주의가 극단적으로 진행되며 드라마의 질이 떨어지고, 막장은 그 이상의 막장을 양산하며 드라마 자체의 공멸을 부르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드라마 시장에도 상승과 하강 곡선은 분명합니다. 현재의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 전역에서 화제가 되고 있지만, 이런 성공은 결국 자기복제를 낳았고 이는 비난과 외면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저 그럴듯한 스타를 내세워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양산되는 드라마는 결과적으로 한국 드라마 전체를 몰락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문제가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느와르인 <경성의 아침>을 멜로드라마로 바꾸는 것도 모자라, 감수 작가를 동원해 작가의 고유 영역마저 침범하는 모습에 고은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자신만의 영역을 상의도 없이 침범해 자신의 자식과도 같은 작품을 망가트리고 있는 사실에 분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니 말입니다.
작가로서의 자존심이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서 앤서니가 망가지는 일이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오진완이 고은에게 접근해 계약 해지를 종용하는 과정은 흥미로웠습니다. 놓쳐서는 안 되는 작가를 자신을 망가트리려는 오 대표의 손에 넘겨주는 일은 죽음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더욱 오 대표가 앤서니를 잘 알고 있듯, 앤서니 역시 오 대표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계약 해지를 방해하는 것 역시 당연했습니다.
오 대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신인 작가인 고은이 아니라, 앤서니를 다시 부활하게 해줄 <경성의 작품>이었으니 말입니다. 이 과정에서 제작자들이 작가를 어떻게 취급하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시청률 지상주의에 휩싸여 오직 돈만 벌려는 그들에게 작가란 그저 돈을 벌게 해주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창작보다 중요한 것은 수익을 극대화해주는 통속적인 방식이라는 점에서 드라마 작가에게 작가주의는 존재하기 힘드니 말입니다.
제작비의 가장 큰 부분에 스타인 강현민의 출연료가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당혹스럽습니다. 투자금을 받자마자 강현민에게 거액을 송금하고, 모든 것이 그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스타 마케팅이 주는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으니 말입니다.
톱스타를 내세우지 않으면 편성 자체가 되지 않는 현실, 출연료 미지급 논란과 제작 과정에서 보여 지는 온갖 술수들이 판을 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던 <드라마의 제왕>은 이번에는 감수 작가를 내세워 드라마 작가에 대한 착취의 현장을 고발하고 있었습니다. 시청률 지상주의에 매몰된 그들에게 작가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약한 고리임이 드라마를 통해 드러났으니 말입니다.
감수 작가를 통해 드라마 현장의 작가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낸 것만 아니라, 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속 앤서니와 고은의 갈등의 고조가 시작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장면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앤서니는 다시 위기에 처했고, 오 대표를 잘 모르던 고은 역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감수 작가의 투입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드라마를 통해 드라마 전체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드라마의 제왕>은 김명민의 압도적인 연기력과 정려원의 매력 등이 하나가 되어 더욱 흥미롭게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 빠진 앤서니와 고은이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탈출할지 궁금해집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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