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호가 아니었다면 과연 이 드라마는 생존 능력을 갖출 수 있었을까? 대진운까지 좋은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반전을 기대했던 시청자들에게 역시 유승호만 존재하는 드라마라는 확신만 가지게 만들었다. 드라마가 참 쉽다. 이미 결론은 준비되어 있고 이를 끼워 맞추기에 급급한 듯한 느낌을 버리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유승호만을 위한 드라마;
아버지 잃은 유승호의 반격 시작, 새로운 희생자 등장과 모두를 적으로 만드는 악당들
죽어가는 주인공. 수많은 억울한 죽음들. 주인공의 통곡을 앞세운 억지 눈물 쥐어짜기 등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흐름은 참 올드하다. 진우의 아버지가 억울하게 숨진 후 통곡하는 그의 모습은 서럽기만 하다. 11회가 되면서 복수는 소득을 얻어가기 시작했다.
선우의 복수는 주변 사람들부터 시작해 결국에는 남규만과 남일호에게 향한다는 것은 자연스럽다. 주변을 정리하고 어디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옥죄어 무너트리는 방식으로 다가올 것이다. 아버지가 알츠하이머라는 사실을 알고도 일호그룹의 제안에 넘어간 의사.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죽음에 이르게 한 교도소 의무과장은 체포되었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보였던 선우는 달라졌다. 아버지의 죽음 뒤 선우의 표정부터가 변하며 그의 복수는 더욱 잔인하게 진행되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상대의 배려는 존재했었던 선우지만 이제는 그런 아량도 필요 없다는 분위기다. 이미 시작되어야 했던 복수는 그렇게 늦어졌지만 주변 사람들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두 명의 의사를 모두 제거한 선우는 다음 목표로 곽 형사를 골랐다. 아버지에게 협박하고 진술을 강요하고 결국 죽음으로 이끌었던 악랄한 형사는 더는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악마였다. 돈의 노예가 되어 경찰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선택한 곽 형사의 몰락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능글맞아진 선우는 차분하게 완벽한 복수를 준비했다. 곽 형사가 본질적으로 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선우는 그가 다른 사람을 찾아 다시 부당거래를 시도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던 선우는 그들이 만나는 자리에 몰카를 준비해 부당거래 내용을 녹화한다.
그렇게 얻은 자료를 이용해 곽 형사는 자신의 자리를 잃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아니 이보다 더 최악은 곽 형사의 본심을 남규만이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녹화 영상에서 곽 형사는 남규만을 "돈 많은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찌질이"라고 지칭하고 있었다.
분노조절 장애가 있는 한심한 찌질이지만 자신이 그에게 충성한 이유는 오직 돈 외에는 없다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곽 형사는 도망칠 수 있는 비상구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수사 발표를 하는 자리에서 공개된 그 영상은 남규만의 책상에도 준비되어 있었다.
자신을 비하하고 비난한 상대를 남규만이 구해주거나 옹호할 이유가 없다. 기본적으로 자신은 그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존재다. 자신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남규만에게 자신을 비하한 곽 형사 같은 존재는 벌레보다 못할 뿐이었다.
가장 굴욕적인 방식으로 곽 형사를 비굴하게 만드는 남규만은 그저 짜증이 날 뿐이다. 죽여서 없애버리고 싶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고 느끼는 남규만에게는 모든 것이 재미없기만 하다. 잔인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사람 목숨마저 파리 목숨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하는 남규만에게 두려운 존재는 그저 자신과 너무 닮은 아버지 외에는 없다.
하청업체가 부당한 대우를 받아 그룹 본사 앞에서 피켓 투쟁을 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하며 비하하는 남일호의 성격은 말 그대로 남규만의 미친 DNA의 근거가 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자신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던 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너트리는 행동은 재벌들이 보여주는 행태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부자가 나오기 힘든 이유는 재벌들의 횡포가 극에 달해 있기 때문이다. 대단한 기술을 가지고 있으면 재벌들에 의해 모든 것이 빼앗기는 구조다. 철저하게 피를 빨리듯 재벌들의 횡포에 발목이 잡힌 뒤 영원한 을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대한민국의 경제 구조다.
좁고 적은 수의 국민이 사는 작은 나라이지만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많은 것이 대한민국이다. 제도만 제대로 갖춰졌다면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혁신적인 리더들이 대거 등장했을 것이다. 탁월한 국민들을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지 못하는 한심한 위정자들이 만들어낸 현실은 국민들의 우민화만 외칠 뿐이니 말이다.
미소전구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고리를 연결시키는 작가의 의도는 아쉽다. 단순한 반복의 의미는 다양함을 통해 심도를 높이는 능력은 없다고 보이니 말이다. 의도적으로 상황을 집중시키기 위한 설정이라고 보기에는 아쉬움이 크니 말이다.
오늘 방송에서 최고의 장면은 남규만이 박동호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었다. 여전히 박동호가 자신을 배신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남규만은 선우와 대결을 버리는 법정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인 박 변호사에게 손찌검을 하고 말았다. 자제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남규만의 폭주는 박동호를 폭행하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남규만이 생각하고 있듯 박동호는 일호그룹 자체를 무너트리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자신을 숨기기 위해 오히려 더욱 비굴하게 일호그룹의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은밀하게 조사하던 생존 아버지의 사고에 남일호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박동호의 복수는 선우의 복수와 유사한 방식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박동호로서는 선우의 가족을 죽음에 이끌게 한 아버지에 대한 속죄에 대한 갈증이 있다. 그를 배신했다는 아쉬움만이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까지 선우 가족을 죽인 범인이라는 사실은 박동호를 더욱 아프게 하니 말이다. 남규만이 살인을 했다는 증거를 법정에서 터트리기 위해 나섰다 막혔던 박 변호사는 남규만의 폭행으로 인해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접어드는 느낌이다.
박동호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본심을 숨기겠지만 이미 그의 칼날은 남일호와 남규만을 향해 있다. 기억을 잃어가기 시작하는 선우로서는 박동호가 중요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빈약하고 한심했던 이야기가 그나마 흥미로운 상황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이유는 홀로 복수에 나서지 않는단 점이다.
협력하지 않으면 결코 무너트릴 수 없는 재벌이라는 거대 악. 그런 그들을 그저 천재적인 능력을 가진 인물 하나로 무너트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선우가 그 천재적인 능력을 잃고 주변 사람들이 함께 일호 그룹을 무너트릴 수밖에 없는 조건이 되었으니 말이다.
기억을 잃어가는 서진우를 위해 검사직을 버린 이인아를 시작으로, 범의 동굴에서 은신 중인 박동호, 판사직을 그만두고 변두리 로펌으로 들어가는 강석규, 남규만의 비서실장인 안수범, 인아의 선배 검사인 탁영진 등이 하나가 되어 일호 그룹을 무너트리는 주역이 될 수밖에 없다.
히어로가 되어 혼자가 아닌 협력을 통해 거악을 무너트린다는 형식은 그나마 <리멤버-아들의 복수>에서 기대할 수 있는 최선으로 다가온다. 선우의 기억 상실이 우울한 결말로 이어질지 아니면 준비된 인아를 통해 안식을 찾을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남일호와 남규만 부자에 대한 공격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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