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은 다시 한 번 광장으로 나갔다. 과거 도당 3인방에 대항하기 위해 광장에 나서 엿을 먹이던 그는 이번에는 권문세족들을 궁지에 몰아넣는 방식으로 토지대장을 모두 불태워버렸다. 토지개혁을 거부하는 자들에 맞서 정도전의 묘수는 토지대장을 모두 태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무극과 척사광의 반전;
격량에 휩싸일 무명, 나눔과 분배가 정치라는 정도전의 가치
무명의 수장은 다름 아닌 이방지와 분이의 어머니인 한량이었다. 설마 했지만 한량이 무극이었다는 사실은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이후 '밀본'의 등장을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다가온다. 권문세족과 사대부, 그리고 해동갑족의 거대한 권력들 사이에서 '밀본'의 정체성은 이로서 명확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전설에만 등장하던 척사광의 존재감은 강렬했다. 이방지가 그토록 열심히 연습하던 무술을 아무렇지도 않게 시연해 보이던 척사광은 다시 한 번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육산에 의해 척사광이 아닌 윤량을 데려와 백근수의 죽음을 알아보려던 그들은 엄청난 무공을 가졌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적룡 사람들에 의해 위기에 처한 듯 보인 윤량을 돕겠다고 나선 무휼은 다시 한 번 '금사빠'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그녀가 척사광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무휼의 운명은 그렇게 모질기만 하다. 적대적 관계가 되어버린 그들은 결국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무명의 수장도 전설의 무사 척사광도 모두 여자다. 사극이 남자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라는 점에서 이는 파격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무명의 수장이 그 전에 이미 등장했던 '밀본'을 생각해보면 반전의 인물일 것이라고는 상상했지만 그게 연향일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가능성은 충분했지만 다른 의미로 '밀본'의 시작을 자식들과 함께 이끌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녀가 곧 '무명' 그 자체라는 이야기는 좀 당혹스럽다.
노국공주를 모시던 몸종이었던 연향이 고려의 가장 큰 권력 세력인 비밀조직 '무명'의 수장이라는 사실이 의외로 다가온다. 화사단의 대방인 초영과 함께 '무명' 조직에 의해 길러진 인물. 그렇게 연향은 무극이라는 자리까지 올라선 최고가 되었다. 그 과정이 어땠는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그녀의 존재감은 그래서 강렬하게 다가온다.
연향이 무명을 배신하고 시골로 내려가 평범한 남자와 살며 아이까지 낳은 사연은 이후 등장할 내용이다. 왜 그녀가 '무명'을 버리고 평범한 삶을 선택해야 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는 곧 '무명'과 '밀본'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해동갑족의 일원인 육산이 계략을 써 반대파를 모조리 제거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연향의 아이들이 반대파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이용했다. 자신의 아이들을 죽인 반대파를 모조리 없애고 현재의 '무명' 조직을 이끌고 있는 무극 연향이라는 점에서 불씨는 다시 점화되기 시작했다.
육산의 지시로 연향의 아이들을 죽이는 일을 맡았던 길선미. 하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누구보다 연향을 특별하게 생각했던 길선미로서는 아이들을 죽일 그 어떤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길선미는 멀리서 아이들을 지켜보며 그들을 지키는데 집중한 인물이다. 결국 길선미가 육산이 아닌 연향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갖춰진 셈이다.
연향의 정체와 척사광의 숨은 실력이 다시 등장하며 흥미롭게 이끌던 이야기의 후반부는 정도전의 몫이었다. 권문세족들이 죽은 최영을 앞세워 토지개혁을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그들은 정도전이 스승과 동료들 배신한 나쁜 놈이며, 그런 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개혁은 개혁이 아니라는 말로 대중들을 현혹시키기에 급급했다.
권문세족들의 반격에 공양왕마저 토지개혁에 반기를 들기 시작하며 갈등은 더욱 심화되기 시작했다. 이미 정도전을 제거하겠다는 명확한 목표를 세운 정몽주는 이 기를 들어 그를 내치려 준비한다. 이성계가 가진 거대한 군사력으로 인해 그를 직접 제거하지는 못하지만, 정도전을 제거하면 이성계를 제압하기는 쉽다는 정몽주의 계산은 명확했다.
실제 역사에서도 정몽주는 정도전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공양왕 역시 정도전을 옥에 가두고 관직을 박탈하는 등 다양하게 그를 없애려 했다. 그 과정에서 언제나 정도전의 편에 선 것은 이성계였다. 이성계가 좋아했던 정몽주이기는 했지만 정도전을 내친 그를 더는 믿지 않게 되는 과정도 흥미롭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방원이 조영규를 대동해 정몽주를 선죽교에서 철퇴로 내려쳐 죽이는 상황은 고려의 몰락을 이끄는 단초가 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런 변화의 시작은 바로 정도전의 다시 등장한 광장 정치 이후 급격하게 이어질 예정이라는 점에서 오늘 방송은 중요하게 다가왔다.
토지개혁을 반대하는 권문세족. 그리고 그들의 압박에 흔들린 공양왕. 고려라는 나라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몽주의 침묵까지 이어지며 토지개혁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여기에 '무명'조직까지 나서 양전을 반대하는 상황에서 '계민수전'은 불가능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계민수전'을 할 수 없는 토지개혁은 의미가 없다는 이들과 그것이라도 해야 한다는 이들이 대립하는 과정에서 정도전의 한 수는 강력했다. 판도사에 보관 중이던 토지대장을 광장에 쌓아놓고 그는 백성들 스스로 그 토지대장을 불태울 수 있게 했다.
백성들과 권문세족들이 모여 있는 광장에서 정도전은 "정치란 나눔과 분배다"라고 외친다. 얼마나 잘 나눠주고 바르게 분배할 수 있느냐가 정치의 본질임에도 과연 권문세족들은 그런 나눔의 정치를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반문은 그저 과거의 일로 치부되기 어렵다.
역사는 언제나 돌고 돈다. 고려 말의 혼란이 현재와 같다는 이야기를 많은 이들이 한다. <육룡이 나르샤>가 이 시점에 방송을 하고 많은 이들과 관심을 가지는 이유 역시 과거를 통해 현재를 다시 바라보게 하기 때문이다. 과거 권문세족이 있었다면 현재는 재벌들과 타락한 위정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고려 말 도당 3인방들처럼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상황의 절묘함은 자연스럽게 이 드라마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이야기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정통사극'이라 불릴 수는 없다. 하지만 작가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인물들을 투입한 이유는 이를 통해 현재를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그리고 드라마적인 재미를 위해 작가가 썼던 <선덕여왕>과 <뿌리깊은 나무>, 그리고 <육룡이 나르샤>를 비밀조직 하나로 묶어내는 과정도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신라시대 염종에 의해 만들어져 현재까지 오고 있다는 극중 이야기는 강렬한 연결고리로 그들의 작품을 하나로 묶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백성들에 의해 불태워지는 토지대장. 사라졌던 이신적이 다시 등장하며 정도전의 조선은 그렇게 탄생을 준비하게 되었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혁명의 시작은 그렇게 광장 정치에서 시작되었다. 정도전이 외쳤던 정치란 곧 나눔과 분배라는 발언은 우리 시대 정치를 다시 곱씹게 하고 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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