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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못난이 송편 종영-수많은 방관자들에게 용기를 전해준 드라마의 힘

by 자이미 2012.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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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라는 잔인한 행위 속의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들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하지만 강하게 전달한 <못난이 송편>은 매력적인 드라마였습니다. 단막극이 주는 함축적인 주제의식과 함께 사회적 문제에 대한 강렬한 메시지는 많은 울림을 전해주었습니다. 

 

방관자가 아닌, 문제를 풀어가는 용기가 필요하다

 

 

 

 

 

왕따란 어떤 식으로 다뤄도 부담스러운 주제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더욱 사회문제를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으로 재현될 때마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기는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인 변화로 이어지지는 못한다는 사실이 아쉽기는 합니다. 현상은 존재하지만 실체를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더 이상 방관자는 되지 말자는 <못난이 송편>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는 듯합니다.

 

 

선생님이 된 주희가 자신의 반에서 벌어진 왕따 사건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은 흥미롭습니다. 익숙한 전개이지만, 과거를 통해 현재를 알고, 현재의 문제를 과거의 경험을 통해 해법을 유추하는 방식은 효과적으로 다가올 수밖에는 없으니 말입니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왕따는 조용하게 하지만 잔인하게 뿌리를 내리고 가해자나 피해자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무서운 범죄입니다. 가해자가 어느 날 피해자가 되고, 이런 가해와 피해의 역사가 무한 반복되듯 쌓이며 채워진 왕따의 기억은 단순히 학창시절의 고통이 아닌 삶 전체를 파고드는 상처로 남을 수밖에는 없습니다.

 

과거의 잘못으로 얼굴을 상처를 입고 평생을 살아가는 소정과 그런 친구로 인해 정신을 놓아버린 순복이. 그들이 가진 상처는 외면과 내면의 차이는 있지만 둘 모두에게 씻어낼 수 없는 고통으로 남겨져 있었습니다. 의사 아버지에 유명한 요리 연구가 어머니를 둔 유복한 가정의 소정. 그녀에게는 그런 부유한 가정의 윤택함보다는 순복이가 가지고 있는 가족의 정이 그리웠습니다.

 

겉돌기만 하던 소정이 우연히 길거리에서 순복을 만나 그녀의 집으로 가면서부터 그들의 우정은 시작되었습니다. 얼굴도 자신보다는 못생겼고, 공부도 자신보다 못하고, 가난하기만 한 순복이었지만 그녀가 부러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그녀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족의 끈끈한 사랑과 진심을 다해 사랑해주는 부모님의 그 환한 미소를 소중은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그 따뜻함은 소정을 매료시켰고, 그 소중함은 역설적으로 순복을 멀리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순복을 은근히 따돌리기 시작하는 소정과 달리, 여전히 소중한 친구라고만 생각하는 순복의 인생은 그 우연이지만 필연적인 사고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친구의 지갑 분실 사건은 순복의 죄로 둔갑하고 이를 방조한 소정은 친구로서의 우정마저도 모두 날려버렸습니다. 그런 사실을 목격하고 알고 있음에도 침묵을 지켜야만 했던 주희에게도 그 사건은 씻어낼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너무나 두려웠던 왕따의 기억은 잊고 싶은 기억일 수밖에 없습니다. 기억해내고 싶지도 않고 돌아보기도 싫은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주희는 용기를 내서 소정을 찾기 시작합니다.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도둑으로까지 몰린 채 전학을 가야만 했던 순복. 그곳에서도 도둑이라 놀림을 받으며 왕따를 당해야만 했던 순복은 자신을 닫고 그렇게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자신으로 인해 벌어진 사건을 솔직하게 밝히지 않고 유학으로 도피해버린 소정. 그런 그녀도 행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에게 남겨진 상처는 그녀를 더욱 외롭고 힘겹게 만들었고, 부모의 이혼 역시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정에게도 순복이라는 존재는 두려움과 미움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잘못과 상관없이 얼굴에 만들어진 상처는 그녀를 주눅들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그런 그녀 앞에 등장한 과거의 기억들은 그래서 힘들었고, 피하고 싶은 현실이었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바로 보기도 힘겨워 거울을 반쯤 가리고 살아갔던 소정은 그 기억에서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어렵게 용기를 내서 순복이 있는 병실을 찾은 소정은 피하고 싶은 과거와 마주해야만 했습니다. 잘살기를 바랐던 친구 순복이 과거의 기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자신도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은 그녀를 힘겹게 만들었으니 말입니다. 자신은 부모님과 오빠에게 사랑받는 순복이가 너무 부러워서 그래서 질투를 했던 것이라고 목 놓아 우는 소정은 그 오랜 시간 자신을 잡아두고 있던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신 앞에 존재하는 현실적 문제를 회피하고 거부했던 소정은 결코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사건이 벌어진 당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용기를 냈더라면 소정이도, 순복이도 모두 현재처럼 아픔을 가슴에 세기며 살지는 않았을 테니 말입니다.

 

 

"너만 왕따 아니면 된다"는 부모님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문제를 들어다 볼 수가 있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은 극중에 나온 세진의 어머니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우리들에게 이 드라마 잔인하도록 아프게 다가온 것은 우리 모두가 그런 방관자라는 사실에 안심하고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왕따를 당하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왕따하고, 그런 상황을 바로잡는 용기보다는 방관자가 되거나 가해자의 편이 되어 왕따를 피하기만 했던 우리에게 <못난이 송편>은 더 이상 그렇게 도망가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상황을 직시하지 않고 도망만 간다면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외치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가해자이거나 피해자입니다. 그리고 방관자이기도 합니다. 왕따는 혼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을 하지 못한다면 결코 문제의 해법에 다가갈 수 없다는 점에서 용기는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습니다. 상황을 회피하고 스스로 방관자로 전락해 자신만을 보호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지독한 독버섯 같은 왕따는 더욱 강하게 우리를 옥죌 수밖에는 없으니 말입니다.

 

드라마 한 편으로 왕따 문화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신 이들이라면 최소한 왕따에 대한 문제의식에 크게 공감했을 듯합니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상황이 확대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용기를 내서 실체를 들여다보고 회피가 아닌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은 정답일 수밖에는 없으니 말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 방관자가 수수방관하고, 선생님과 학교, 그리고 학부모들까지 왕따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을 회피한다면 왕따는 결코 사라질 수 없는 고질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모두가 불편한 진실이라는 이유로 회피만 한다면 언젠가는 내가 그 왕따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왕따는 특별한 존재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왕따는 회피한다고 치유되는 자연스러운 상처가 아닙니다. 용기를 내서 실체를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소정의 얼굴 상처나 순복의 마음의 상처처럼 평생을 안고 가야하는 주홍글씨와도 같은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모두를 피폐하게 만드는 왕따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도록 이제 서로가 용기를 내야만 할 때 입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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