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랄함이 극에 달했던 박 과장의 모든 것이 드러난 것은 원칙에 충실했던 영업3팀의 힘이었습니다. 이미 윗선에서 승인까지 났던 사업안이었지만, 오 과장의 신중함은 모든 것을 흔들었습니다. 완벽해 보였던 박 과장의 음모는 산산이 부서지고 영업3팀은 위기에서 회사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원칙과 절차가 만든 힘;
안영이의 강한 책임감과 장그래의 집요함과 판을 읽는 시각, 흥미롭다
10화에서는 장그래와 안영이의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관찰자와 관찰자에 의해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들을 그려나갔습니다. 둘 모두를 괴롭히던 상사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들의 존재감이 더욱 도드라지게 드러났다는 점에서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스스로 바닥에서 일을 배우겠다는 자세로 돌아선 안영이는 말 그대로 허드렛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자원2팀의 분위기는 안영이가 능력 있는 신입사원이 아닌 그저 잡일이나 하는 존재로 인식되어 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큰 변화가 일고 있었던 것은 대립 관계였던 하 대리의 변화가 급격하게 일기 시작했습니다.
마구잡이로 모든 일들을 시키는 팀원들을 바라보며 하 대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신만을 위한 일을 해야 되는 대상이 아니라, 안영이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장백기가 안영이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듯, 하 대리 역시 직속부하이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안영이가 싫으면서도 좋은 그런 관계라는 사실이 10회에서는 거칠게 드러났습니다.
너무 탁월한 능력을 보인 신입사원. 그것도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점에서 시기를 하던 그는 갑작스러운 안영이의 변화에 놀라고 있었습니다. 그런 놀라움은 안영이에 대한 묘한 감정으로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과장과 대리가 심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갑작스럽게 예정에도 없던 출장을 보내게 됩니다.
이 출장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예상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안영이의 승부욕과 책임감은 다시 발휘되기 시작했습니다. 운송 파업으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영이는 결단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 대리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유 대리가 던진 한 마디는 그녀를 자극시켰습니다. "남자라면..."이라는 단어는 안영이를 자극했고, 그녀는 마음을 졸이면서 트럭을 운전해 물건을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새벽까지 힘겨운 운전을 하는 상황에서 사수인 하 대리에게 연락을 받게 됩니다. 사실 그렇게 급하지 않은 일이었음에도 하 대리가 안영이에게 출장을 보낸 것은 말도 안 되는 심부름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하 대리가 잊었던 것은 안영이의 승부욕과 책임감이었습니다.
육두문자까지 써가며 안영이를 타박한 하 대리의 마음은 분명 사랑이라는 감정이 존재해 있었습니다. 자신을 농락하는 상사를 피해 반차를 쓰고 안영이의 출장길에 함께 했던 상율은 이 모든 과정의 관찰자가 되었습니다. 안영이와 하 대리 사이의 관계에서 상율이라는 관찰자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이후 이야기의 흐름과 과정을 풍성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막말을 쏟아내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사원들에게 성적인 농담을 쏟아내는 박 과장은 최악이었습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한 추궁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흔들림도 없는 박 과장의 행동은 비난을 받아 마땅했습니다. 영업3팀만이 아니라 회사 모두를 흔들고 있던 박 과장의 횡포는 오래 갈 수는 없었습니다.
노골적으로 장그래를 몰아붙이고 비난하는 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박 과장의 행동은 어쩌면 자신의 거짓을 숨기기 위한 허세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이미 회사 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를 포기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얻은 그에게 회사 생활은 지루할 수밖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과거 리비아 1억 2천만 불 수출과 관련해 혁혁한 공헌을 했던 박 과장은 철강팀의 에이스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모질게 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주기 살기로 노력해 엄청난 성과를 거뒀지만 박 과장에게 남겨진 것은 숙취가 전부였습니다. 누구도 자신의 노고와 성취를 이해하거나 그에 대한 보상이나 답변을 듣지 못한 채 하루 만에 잊혀진 존재가 되어버린 박 과장은 그렇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은 단순하고 쉬웠습니다. 누구나 그렇듯 뇌물을 거부하고 분노하던 그는 자신의 주머니에 들어 온 돈을 품기 시작하며 점점 변해갔습니다. 노골적으로 뇌물을 요구하고 그런 과정은 보다 정교한 범죄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식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안에서 찾은 박 과장에게는 그 가치만 남겨져 있었습니다.
자신이 일군 거대한 성과는 오직 회사의 몫이 되었고 자신에게는 그 흔한 보너스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좌절한 박 과장은 그렇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철저하게 피해자 모드로 변신한 그는 보상심리가 강하게 발동했고, 그런 그의 행동은 최악으로 흘러 현재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 과장이 지적한 "대기업의 이기심이 보이지 않는다"는 박 과장의 요르단 중고차 사업계획서는 철저하게 그를 위한 작품이었습니다. 회사 내 가장 정통한 중동 통이었던 박 과장은 이런 상황을 철저하게 이용해 가짜 회사를 현지에 세우고 거대한 부를 쌓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가족들을 동원시켜 회사를 만들고 그 회사를 통해 거대한 리베이트를 챙기는 행위는 결국 영업3팀에 의해 그대로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회사를 위해 충성했지만 그 조직에서 개인의 역할이란 작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조직의 생리에 거부감을 느낀 박 과장의 이탈은 결과적으로 변질로 이어질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변질된 박 과장의 행동은 결국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한 행위일 뿐이었습니다.
회사에 속해 있는 한 회사의 이익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회사원의 역할입니다. 그게 그들의 룰이고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룰이 싫으면 거부하고 나와 자신 만의 일을 하는 것이 방법일 것입니다. 하지만 양쪽에 발을 들여놓고 모두를 취하는 행위는 결국 범죄행위가 될 수밖에는 없습니다.
남녀의 달콤한 로맨스는 등장하지 않지만 끈끈한 관계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오 과장과 영업3팀의 관계들, 그리고 장그래와 김동식 대리의 관계 등에서는 비록 남녀의 애정관계는 아니지만 다른 방식의 애정관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리만족을 하게 합니다.
회사 생활을 하고 있거나 했던 이들에게는 자신을 감정이입하게 하는 역할을 해주고, 경험이 없던 이들에게는 회사라는 거대한 조직의 생리가 어떻게 이어지고 전개되는지 알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웠습니다. 생경한 환경이라고는 해도 모든 것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달라질 수는 없습니다.
바둑판을 인생에 비유한다는 점에서 바둑과 회사는 <미생>을 만들어냈고, 그 미생은 시청자들에게 인생을 바라보게 해주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서 벌어질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그런 과정 속에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의 다층 다사한 이야기들이 사실적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시청자들이 환호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습니다.
"내일이니까. 내게 허락된 세상이니까"라며 자신의 집에서 내려다본 서울을 보며 장그래가 다짐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을 울컥하게 했을 듯합니다. 살다보면 좌절하거나 힘들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자칫 잃어벌 수있는 다짐을 장그래는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 과장으로 인해 원 인터내셔널의 권력 구도가 뒤틀리기 시작했고, 그런 균열은 그에게 구원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은 선과 악이 확연하게 구분되지 않았고, 그 결과에 대한 과정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정의라는 것과 다르다는 점에서 <미생>은 생생합니다. 드라마이지만 드라마이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러 가감 없는 현실감각이 정교하면서도 흥미롭게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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