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시절 미스코리아가 되어야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미스코리아>는 흥미롭습니다. 물론 아쉬운 부분들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완성도를 높인 이 드라마는 분명 재미있습니다. 이연희의 재발견만이 아니라 드라마가 담아낼 수 있는 시대적 아픔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기만 합니다.
미스코리아는 출전자들만의 대회는 아니다;
지영의 꿈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도 좋다는 형준 매력적이다
어렵게 본선에 참가한 지영에게는 넘어야 할 산들이 가득했습니다. 엘리베이터 걸 출신이라는 핸디캡은 경쟁심 강한 미스코리아 대회에서 중요한 이유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서울대회에서도 테러와 가까운 공격을 받았던 지영에게 합숙은 그 무엇보다 힘든 경쟁의 시간이었습니다.
지영이를 이용해 회사를 살리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던 형준은 그녀와 함께 하면서 그 마음들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오직 회사를 살리겠다는 생각에 첫사랑이었던 지영을 찾아가 뻔뻔스러운 행동들을 했지만, 그 시간들은 형준에게 값진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었습니다. 그가 진정 사랑하는 존재는 다른 사람들이 아닌 지영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형준의 행동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한 사장이기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의 꿈을 지켜주고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조력자로 변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형준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보여준 것은 바로 동창인 윤이의 제안에 대한 형준의 선택이었습니다. 고교시절부터 지영을 좋아했었던 윤이는 형준의 회사를 살릴 수 있는 키를 쥐고 있는 존재였습니다.
투자를 받지 못하면 회사가 무너질 수밖에 없고, 사채꾼들에 의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윤의 투자는 비비화장품만이 아니라 형준의 운명까지 쥐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했습니다. 그런 절대적인 존재인 윤이 지영을 차지하기 위해 형준에게 결정적인 제안을 합니다. 지영이 미스코리아를 그만두게 하고 그녀에게서 멀어지면 결과와 상관없이 전액 투자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회사를 살려야만 그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이룰 수 있다는 점에서 윤이의 제안은 당연했습니다. 하지만 형준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자신들의 욕심으로 지영을 미스코리아 무대에 올렸고, 그녀를 편안하게 진으로 만들어주겠다는 마 원장의 선택마저 뿌리치게 만들어놓고 회사를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지영을 버리는 짓은 할 수 없었습니다. 과거 대학에 다니던 자신이 공부와 담을 쌓고 살던 지영과 멀어지던 것처럼 다시 그런 이별을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세운 회사의 사장 자리를 던지고 형준은 지영을 선택합니다. 지영이 미스코리아가 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나선 형준의 사랑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과거 너무 어려서 몰랐던 사랑이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 알게 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진심이 담긴 희생이었습니다.
형준과 함께 움직이는 정선생의 사랑 역시 흥미롭습니다. 평생을 조폭 똘마니로 살아왔던 거친 남자인 정선생은 형준과 비비 화장품에게는 저승사자 같은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이유는 그가 조폭의 우두머리가 아닌 똘마니로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인간에 대한 정이 너무 많은 정선생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비화장품에 빌려준 돈을 받는 과정에서도 그가 진짜 악인이라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조폭들이 내민 생명보험처럼 온갖 방법으로 돈을 빼내는 그들에게 그건 어려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가 형준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형준을 압박하는 모습은 정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정선생의 비밀을 알게 된 화정이 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어준 것도 그 남자의 본심을 들여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거칠지만 누구보다 순수하기만 한 정선생과 남자다운 고화정의 사랑은 이제 시작하려는 단계라는 점에서 흥미롭기만 합니다. 원수로 만나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간다는 고전적인 방식이 과연 어떤 참신함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해지니 말입니다.
미스코리아 본선에 어렵게 진출해 합숙을 하게 된 지영에게는 모든 일상이 힘겨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미스코리아 진이 되기 위해 모인 이들의 경쟁심은 그 누구보다 강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입소 첫 날 화장실에서 물벼락을 맞은 지영과 나이차와 상관없이 자신이 엘리베이터 걸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무시하는 경쟁자들의 태도는 황당하기만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런 상황은 싸움으로 이어질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감점 30점이면 본선 무대에 올라서지도 못하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는 상황에서 그들의 싸움은 15점 감점을 받게 되고, 이런 상황은 지영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비비 화장품의 신상품이 탐이 나고, 그들의 성장이 두려웠던 바다 화장품은 미스코리아 후원을 조건으로 그들을 견제해왔습니다. 그리고 지영이 본선 무대에도 올라서지 못하도록 하려 노력했지만, 어렵게 본선에 올라온 지영에게 무조건 바다 화장품의 단독 모델이 된다는 서명을 받아내려 합니다.
남들에게 엘리베이터 걸이라고 놀림을 받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 당당한 지영은 유일하게 바다 화장품의 모델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바다 화장품의 김이사의 압박에도 당당하기만 한 지영은 그만큼 형준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형준처럼 자신의 첫사랑이었던 형준이 밉기도 했었지만, 그에 대한 사랑은 여전했습니다.
미스코리아가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인 마 원장을 벗어나 형준을 선택한 것은 그저 엄청난 돈이 들기 때문도 아니고, 비비 화장품을 살리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어서도 아닙니다. 자신이 미스코리아가 되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평생을 엘리베이터 걸이라는 그늘 속에서 살아갈 수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타고난 미모가 전부였습니다.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해 어디 취직도 할 수 없고, 부유한 집이 아니라 집안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 한 희망은 미스코리아였습니다. 자신감을 되찾고 화려하게 자신의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서 지영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스스로 얻어낼 수 있는 미스코리아가 전부였습니다.
절박한 미스코리아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던 지영이 마 원장이 아닌 형준을 택한 것은 그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 사랑이라는 미련은 그에게 어려운 선택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빚만 넘치는 형준을 선택한 지영은 그렇게 자신이 얼마나 형준을 사랑하는지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수영복 심사에서 불이익을 받아 힘겨워하는 지영을 위해 과감하게 풀장에 들어가 조력자가 되는 형준. 힘들고 좌절감이 들 때마다 생각하라고 건넨 풍선껌은 지영을 상징하는 특별한 아이콘이었습니다. 모든 고교생의 마음에 불을 지폈던 지영은 도도하게 껌을 씹으며 풍선을 불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당당함을 다시 느껴보라는 형준의 선물은 그래서 지영에게는 소중했습니다.
수영복 촬영을 마치고 모두가 힘들어 하는 상황에 몰래 합숙소를 나서 형준이 자고 있는 방으로 찾아온 지영의 모습은 당돌하고, 무모하기만 했습니다. 외박은 곧 퇴소가 되는 상황에서도 그 지독한 사랑은 그녀를 형준이 자고 있는 방으로 안내했으니 말입니다.
바다 화장품의 압박으로 지영이 결코 미스코리아 본상을 받을 수 없겠다는 협박이 부담스러운 형준은 윤이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는 윤이에게 새로운 제안을 합니다. 지영이 미스코리아에 나갈 수 있게 해주고, 자신의 회사에 투자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윤이로서는 둘 모두 자신이 했던 제안과 달랐다는 점에서 황당해하지만, 들어줄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이윤이 형준의 말도 안 되는 제안에 응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의 제안을 들어준다면 미스코리아 대회가 끝나는 순간 지영과 헤어지겠다는 조건이었습니다. 지영이 형준을 좋아하고 있고, 형준 역시 지영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윤이로서는 이런 그들을 떼어놓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모든 노력이 허사된 상황에서 형준이 한 제안은 윤이게는 혹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습니다.
비비화장품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력을 높이 평가했던 만큼 그 회사에 투자하는 것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었고, 지영에게서 멀어지겠다는 형준의 약속은 자신의 개인적인 소망까지 이룰 수 있는 조건이라는 점에서 대단한 제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형준이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은 바다 화장품의 농간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바로 이윤 외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스폰서 비용을 대고 지영을 본선 무대에서 떨어트리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바다 화장품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그만한 자본의 힘을 가진 이윤 외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영을 끔찍하게도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윤이에게 이런 제안을 한 것은 말 그대로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형준이 보인 사랑은 그래서 특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이 상처를 줬었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스스로 지독한 상처를 품고 살아가겠다는 이 남자의 사랑은 그래서 대단합니다. 물론 이런 선택의 맹점에는 주동적인 인물인 지영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큰 변수로 다가오지만, 형준이 보여준 사랑은 그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로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독한 현실에서 꿈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청춘들을 이야기하는 <미스코리아>가 과연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궁금해집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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