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로 바람몰이하고 신정아로 비난 받는다
이 이야기의 모티브는 이미 여러 번 이야기를 했듯 '신정아 사건'입니다.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학벌주의를 돌아보게 만들며 사회 지도층들의 학력 위조도 속속 밝혀지며 그 파장은 엄청났습니다. 결과적으로 사건은 마무리 되었지만 법의 심판을 받은 것은 이 논란의 중심이었던 '신정아'가 전부일 뿐 학력 위조로 부와 명예를 쌓았던 유명 인사들은 여전히 자신의 삶을 사는 웃지 못 할 황당함을 선사했습니다.
1. 신정아 사건이 문제였다
<미스 리플리>의 첫 번째 비난 요소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방송 전부터 신정아가 부각되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밝힐 수 있는 것처럼 홍보가 되었던 점은 시선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드라마의 설정 역시 미술관에서 호텔로 장소를 옮기고 정치인을 호텔리어로 바꾸며 유사성을 간직한 채 드라마만의 흥미로움을 만들어냈기 때문에 시작은 흥미로웠습니다.
문제는 회를 거듭할수록 신정아는 사라지고 장미리만 극을 이끌며 처음 기대치를 놓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성공에 대한 욕망이 높았던 장미리가 의도적이지 않았지만 갑작스럽게 던진 거짓말이 씨앗이 되어 성공의 길을 걷게 되는 과정까지는 흥미로웠습니다.
그런 거짓을 통해 호텔 사장과 사랑하는 연인 관계로 발전되고, 고시원에서 봤던 아무것도 아닌 듯한 청년이 몬도 그룹 후계자임을 알고 그에게 애정을 쏟는 과정도 흥미로웠습니다. 욕망만이 지배하고 있는 미리로서는 당연한 행동이었고 그런 행동을 통해 장미리라는 가상의 존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과 문제를 들쳐 낼 수도 있었을 테니 말이지요.
현실 속에서 신정아가 자신의 학력을 위조해 사회적 명성과 대단한 존재와의 사랑까지 거머쥐는 과정이 장미리의 모습과 닮아 있었기에 이후 진행되는 과정을 통해 현실에서 해소하지 못한 사회적 정의가 펼쳐질 것이라는 기대를 시청자들을 했을 것이라 봅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통속극(처음부터 통속이었으면 재미라도 있었을 텐데)으로 흐르며 사회적 함의를 가진 거짓말을 그들만의 사랑을 위한 거짓말로 둔갑시키고 말았습니다. 이는 용두사미의 전형으로 밖에는 볼 수 없게 합니다. 이미 시작과 함께 송유현의 새엄마와 미리가 모녀 관계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측은 당연한 사실로 드러났고 이런 뻔한 설정으로 인해 드라마의 중요한 얼개들이 틀어지는 과정들은 흥미마저 반감시켰습니다.
호기롭게 시작된 학력위조를 발판으로 한 인간의 탐욕과 욕망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싸지고 미화되는 과정들에 시청자들이 아쉬워하고 분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2. 캐릭터 구축과 활용이 아쉽다
두 번째 이유는 주인공들에 대한 아쉬움과 서운 함들이 교차하는 문제일 듯합니다. 가장 심각하게 업 다운이 된 이들은 바로 강혜정은 사라지고 김정태만 남았다는 점입니다. 드라마는 사전 제작이 아니기에 상황에 따라 등장인물들이 변할 수는 있습니다. 시청자들의 호응을 어느 정도 고려하며 이야기를 전개해야만 하기에 상황에 따라서는 그 중요도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문제는 그 수준을 넘어선 상황이 되면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워진다는 점입니다. 중요한 캐릭터 중 하나였던 미리의 옛 친구이자 송유현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진 문희주(강혜정)이 미리의 거짓의 도구로만 사용된 채 버려졌다는 점입니다. 희주가 가진 상징성이나 캐릭터들 간의 관계를 고려해봤을 때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드라마의 모습은 많이 달라질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고아원 시절의 기억과 현재 시점에서 모든 조작 사실을 알고 있는 희주가 지니고 있는 상징성은 극을 어떤 식으로 이끌어 갈지 키를 쥔 캐스팅 보드였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역할이 처음처럼 꾸준하게 지속되었다면 드라마는 '신정아 사건'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었을 듯합니다. 하지만 <1박2일>로 갑자기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아진 히라야마(김정태)에 대한 분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며 드라마는 '사랑'에만 방점을 찍고 말았습니다.
시청자들이 김정태가 많이 나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그의 잦은 등장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바뀐 것은 아닌가라는 의구심은 꾸준하게 본 시청자로서 아쉽기만 합니다. 재벌도 두렵지 않아 마음껏 사랑을 외치는 그로 인해 이야기는 '사랑'이라는 허울로 모든 문제들을 덮으려고만 하며 주제를 벗어나버린 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주제 자체가 그랬다면 할 수 없지만 '신정아 사건'의 핵심이 단순히 사랑에 대한 이질적인 아픔이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는 잘못된 이야기 전개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신정아'를 개입시켜 드라마의 창작을 가로막는 것도 문제이지만 '신정아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거짓'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신정아 사건'을 개입하지 말라는 요구도 이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3. 사랑이 항상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처음부터 '신정아'를 버리고 영화 '태양은 가득히'나 '리플리'를 테마로 극화해 냈다면, 현재의 흐름을 어느 정도 이해 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A라는 곳을 바라보게 하고 엉뚱한 B가 답이라고 뒤늦게 이야기 한다면, 이는 반전이 아니라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사기 맞은 기분이 들 수밖에는 없겠지요.
더욱 '사랑'에 방점을 찍으며 마지막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장미리의 사랑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철저하게 탐욕과 욕망의 지배를 받으며 사랑을 갈구하던 그녀가 송유현의 존재를 알고 난 후 가식적으로 접근한 상황에서 사랑의 순수함을 논할 수는 없습니다.
장명훈이나 송유현이나 '사랑'이라는 무기로 장미리가 출세를 하려 했기 때문이지요. 이런 상황에서도 모든 남자들이 장미리를 지키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높아지는 상황은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차라리 송유현이 미리가 알고 있는 몬도 그룹 후계자가 아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존재였다는 사실(설정 상 무리수가 있지만 송유현 역시 미리를 거짓말로 속였다는 가정하에)을 알고 나서도 미리가 명훈을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유현을 사랑한다면 그 사랑의 감동이 강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겁니다.
'거짓'으로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준 그녀에게 면죄부라도 내리듯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미스 리플리>는 도대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호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이다라는 명제를 확인하는 작업이라 해도, 과정이 잘못되면 그들의 주장마저 의미 없게 다가오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요?
이다해의 연기도 전작에 비해 성장한 듯해서 좋았고, 박유천의 연기 역시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내도 좋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출연한 배우들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기에 현재의 시청률이 가능했겠지만 주제 의식이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 <미스 리플리>는 아쉽기만 한 작품입니다.
대단한 반전이 있을 것이라고 홍보를 해왔지만 그 대단함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허탈해하는 시청자들로서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라는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는 없습니다. 장미리에 대한 과잉된 이미지와 시대를 역행하는 주변 인물들의 맹목적인 사랑은 답답함만 더해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대단한 반전도 존재하지 않는 <미스 리플리>는 무색무취처럼 큰 여운을 남기지 못한 채 박유천을 위한 두 번째 드라마 정도로만 기억될 듯합니다. 개인적인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은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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