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와 이제훈만이 아니라 조연들마저 최강이라고 이야기를 듣고 있는 <비밀의 문-의궤 살인사건>이 이렇게 낮은 시청률을 기록한다는 사실은 의아합니다. 더욱 사극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높은 환경에서도 이 사극만이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분명해 보입니다.
외면 받은 사극의 운명;
한석규와 이제훈의 치열한 대립 속에서도 아쉬운 이야기의 한계
손에 피가 잔뜩 묻은 세자의 넋이 나간 모습과 아들이 자신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사실에 흥분한 영조. 이제 드디어 맹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광분하는 영조의 모습은 <비밀의 문-의궤 살인사건>은 보다 빠르게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영조가 노론의 수장인 김택에 의해 맹의에 수결을 했습니다. 그렇게 왕위에 올랐던 영조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맹의가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 불안하고 고통스럽기만 했습니다. 그렇게 없애버리고 싶었던 맹의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맹의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영조를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아들인 세자가 알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맹의를 가지고 있었던 이가 세자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친구와 같은 존재였다는 사실이 문제였습니다. 지키고 싶었던 이를 잃은 세자는 당연하게도 신흥복 살인사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흥복 살인사건 안에 맹의가 존재하고 이를 세자가 알게 되면 모든 것이 뒤틀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영조가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했습니다.
맹의를 가지고 자신을 옥죄는 노론의 김택에 당하기만 하던 영조는 다시 등장한 맹의로 인해 대립과 갈등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그에게 왕위는 외롭고 힘들기만 했습니다. 김택을 윽박지르고 어르기도 하지만 노련한 그들을 맞아 영조 홀로 싸우기는 힘겨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소론과 손을 잡고 노론을 누를 수도 없는 상황은 영조를 더욱 고립시켜 나갔습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왕이 되기로 결정이 된 세자에게 왕의 길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왕위에 오를 수 없었던 영조가 왕이 되는 과정과 현재까지 수많은 시련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은 왕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외면하던 신하들 앞에서 왕이 되어야 했던 영조는 지독한 외로움과 권력들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영조의 이런 지독한 고통은 홀로 남은 그의 모습에서 잘 드러났습니다. 용좌에 앉은 영조와 홀로 서성이며 고뇌하는 영조의 모습은 가장 높은 권력의 자리에 앉아도 행복할 수 없음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텅 빈 궁에 홀로 고통스러워하고 힘겨워하는 영조의 모습은 그동안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왕의 면면이었습니다.
지독한 고통은 환청을 이겨내기라도 하듯 자신의 귀를 물로 씻어내는 영조의 모습에서 잘 드러나기도 했었습니다. 광기에 빠진 영조의 모습들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산발을 한 왕의 모습과 근엄함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왕의 모습을 보여준 영조는 <비밀의 문-의궤 살인사건>을 받치는 최고의 모습이었습니다.
치열하게 살아야만 했던 영조와 달리 태어나면서부터 왕의 길을 걷고 있는 세자는 달랐습니다.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세자의 삶은 평탄했고 거침이 없었습니다. 대리청정을 하며 차분하게 왕으로 향해가던 세자에게 신흥복 살인사건은 전혀 다른 길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왕이 될 운명이었던 세자가 왕이 되지 못하고 아버지의 손에 의해 뒤주에 갇혀 숨진 희대의 사건의 주인공이 된 것은 바로 신흥복 살인사건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자신이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던 벗이었던 신흥복의 죽음은 잔잔하기만 하던 세자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습니다. 평범하게 왕좌에 오를 날만 기다리던 세자는 신흥복의 죽음과 함께 전혀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암흑 속에 갇힌 듯 채워지지 않던 의문들은 신흥복의 화첩을 보며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의문의 '화부타도'는 칼이 아닌 반차도를 이르는 말이었습니다. 의궤에 그려진 그림인 반차도에 신흥복을 죽인 범인이 존재한다는 이 중요한 단서는 세자를 흥분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곁을 따르던 의궤 속 인물이 누구인지 세자는 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의궤를 통해 신흥복을 살인한 자를 추적하는 세자로 인해 영조는 더욱 바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조만이 아니라 노론의 김택 역시도 세자의 행동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만 했습니다. 세자도 없애버리라는 말을 쉽게 하는 김택에게 영조나 세자 정도는 언제든 갈아치울 수 있는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영조와 세자가 지목한 범인은 동궁전 별감인 강서원이라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억의 오류는 결국 진범인 강필재에게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했습니다. 맹의를 두고 다양한 수를 두며 진범을 찾으려는 세자와 피해가려는 범인의 싸움은 치열하게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반차도의 핵심은 바로 능행 명부에 있었습니다. 신흥복이 그린 반차도의 핵심은 어느 곳을 향하던 그림이었느냐에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능행을 향하던 반차도에는 영조와 세자가 지목한 강서원이 아니라 강필재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신흥복은 명확하게 강필재가 범인이라 지목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범인인 강필재는 의궤가 아니라 명부를 탈취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몰랐던 영조는 그저 의궤를 그린 반차도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영조와 세자의 뒤통수를 친 강필재는 능행 명부를 빼돌려 태워버린 그는 그저 맹의를 팔아 엄청난 돈만 버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세자도 미처 찾지 못했던 범인을 찾은 것은 그의 스승인 박문수였습니다.
명의가 다른 집의 진짜 주인을 찾으며 윤곽을 잡아가던 박문수는 담뱃대를 주문해서 찾아가던 강필재를 통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강필재가 거대한 담뱃대를 사가는 것은 그 안에 맹의를 숨기기 위함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맹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긴박한 상황들은 흥미롭게 이어졌습니다. 세자가 7회 마지막에는 피가 묻은 손으로 등장하며 이후 이야기를 더욱 기대하게 했습니다. <비밀의 문-의궤 살인사건>은 분명 흥미로운 드라마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고조가 존재해야 할 흐름과 리듬에서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무조건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로운 소재와 이야기를 가진 <비밀의 문-의궤 살인사건>이 이렇게 시청률이 안 나오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드라마는 오직 '맹의'에만 집착하는 영조와 세자의 이야기만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조와 세자의 대립 과정만 존재할 뿐 그 이상의 이야기들이 끼어들 틈이 없는 상황은 시청자들도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긴장감을 위한 줄였다 풀었다 하는 과정이 존재하지 않은 채 오직 100m 달리기 경주를 하듯, 내달리는 상황에 시청자들이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포기하는 상황은 <비밀의 문-의궤 살인사건>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시청자를 생각하지 않고 작가의 의지만 가득한 진행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의궤 살인사건을 통해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에 의해 잔인한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되었다는 사실을 들려주는 과정은 흥미롭습니다. 역사적 사실 속에 가상의 이야기들을 접목시켜 흥미로운 상황들을 만들고 있는 상황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강약 조절에 실패하고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러브라인조차 존재하지 않은 채 오직 추리라는 하나의 길만 가는 <비밀의 문-의궤 살인사건>은 아쉽기만 합니다. 시청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원인은 강약 조절과 리듬을 살리지 못한 드라마적 호흡의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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