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는 오랜만인 듯합니다. 정통 로코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정석적인 단계를 밟으면서도 식상하지 않은 전개를 통해 몰입도를 높이는 영리한 전략은 시청자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18년 만에 재회한 두 지원의 태도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석지원은 윤지원이 보고 싶어 일부러 체육시간이 없음을 알고 교무실로 향했지만, 잠에서 깬 윤지원에게 석지원은 그리 반가운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악몽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석지원이 나오는 꿈들에 민감했던 윤지원은 경기를 일으킬 정도였습니다.
교무실에서 벌어진 이 에피소드는 전 학생과 교사들에게 전파되며 소문은 더욱 커지게 되었죠. 볼을 꼬집은 것이 폭행까지 확대되는 소문의 힘에도 불구하고 윤지원은 석지원이 자신이 있는 학교에 왔다는 사실이 불쾌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이사장으로 있던 학교를 빼앗듯 들어온 침략자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감히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왔다는 사실이 불쾌한 것이죠. 이는 18년 전 그들이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연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택에서 할아버지와 사는 지원은 점심을 먹으로 집에 왔다 김치 냉장고를 보고 있는 할아버지를 향해 달려가 백허그를 합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습니다. 그리고 허리를 펴자 할아버지와는 너무 달랐습니다. 독목고 운동복을 입고 있는 석지원이란 사실에 지원은 다시 한번 당황할 수밖에 없었죠.
석지원이 자신의 집에 올거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고, 할아버지가 애용하는 학교 운동복을 입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재호도 갑자기 자신을 찾아온 석지원으로 인해 물을 주다 놀래서 다 젖어 버리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점심까지 먹고 가겠다는 석지원으로 인해 식탁에서 떨어져 홀로 밥을 비벼먹는 지원의 표정은 압권이었습니다. 여전히 석지원은 재회에 대한 감흥이 남아있었고, 지원은 다시 만나게 된 것 자체가 불쾌했습니다. 그런 과도한 반응은 지원의 마음에도 석지원과 같은 감정이 존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독목고 미친개라는 소문이 사실이었다며 즐거워하는 지원의 절친 수아는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이끄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자유분방하지만 의리는 있는 수아는 이사장과 회식만 꿈꾸고 있습니다. 남자와 만남에도 자유로운 수아로서는 새로운 사랑을 꿈꾸고 있으니 말이죠.
이사장이 매일같이 출근하는 모습에 지원은 다시 한번 발끈합니다. 이 상황에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는 인물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모습을 보며, 지원은 관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런 교생이 체육과로 오게 되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지원은 모르지만 모두가 아는 스타 선수 출신인 공문수는 지원을 알고 있습니다. 과거 인연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모르지만, 한때 '국민 돌고래'로 불린 스타 수영선수였던 문수가 교생으로 왔다는 사실에 교무실에 교사들로 들썩였습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친구였지만 지혜는 지원에게 경쟁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언제나 전교 1등을 하고 얼굴도 예뻐서 남학생들에게 사랑을 독차지 받았던 친구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더욱 지혜를 힘들게 한 것은 짝사랑하던 석지원과 사귀었다는 겁니다.
친구이지만 친구같지 않은 친구 지혜는 현재진행형입니다. 문수가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시절엔 지원이 대학 졸업하고 한참 힘들 때였습니다. 더욱 그 시절 지원의 부모가 사망하기도 했습니다. 두 분이 한꺼번에 사망하는 경우는 사고 외에는 없습니다.
경태와 경훈의 과거도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경훈은 지원 할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정도로 친근합니다. 그리고 재호는 경훈을 대놓고 자기 사람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경훈은 경태와 사업 파트너로서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뭔지 모를 여운을 남깁니다.
경태는 아들 지원이 청심환을 너무 자주 먹는다고 타박을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슴이 울렁거리는 상황에서 청심환만큼 좋은 것도 없죠. 경태가 그렇게 가슴 울렁증이 생긴 것은 과거 경훈의 아들이 사고로 사망한 시점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경훈의 아들로 보이는 아이가 사고로 사망한 듯한 모습에 경태는 병원 응급실에서 도망치듯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 사고에 경태가 관여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죠.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경태의 약점이 드러난 대목이기도 합니다.
어렵게 성사시킨 회식 자리에 많은 교사들이 참석하게 되죠. 더욱 첫 담임으로 만난 아이들이 교사이고 이사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반갑고 자랑스러워하는 변덕수(윤서현)의 연기는 매력적입니다. 코믹 연기를 맛깔나게 하는 덕수로 인해 이야기는 더욱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이끌리게 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죠.
강압적인 코믹을 요구하거나, 어설픈 웃음 유도가 아닌 자연스럽게 그 표정 하나에 행동으로 웃게 만드는 연기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 어려운 일을 윤서현 배우가 풀어내주며 이야기 분위기 자체를 한껏 끌어올린다는 점은 영리함으로 다가옵니다.
하필 회식날 학부모가 방문해 고달픈 상황이 되는 과정도 자연스럽지만 정교하게 잘 짜였습니다. 석지원과 회식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아 하던 지원이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빌드업이 학부모 방문이기 때문입니다.
석지원이 이사장으로 학교에 와서 보다 좋은 성과를 올리기 위해 특별반을 만들자고 제안하죠. 이 상황에 마마걸인 유미는 안절부절못하고 즉시 어머니가 찾아와 자신의 딸을 꼭 그곳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몇 시간이고 조르고 있었습니다.
석지원의 요구로 시작된 이 상황은 결과적으로 지원이 진이 다 빠지게 만들었고, 술이 고파 기어코 회식자리에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석지원이 보인 행동은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지원을 좋아하고 있음을 알게 합니다.
지원의 창체부 회식 자리에 참석하기 위해 덕수의 제안을 못이기는 척 받아들이고, 이사장실에서 지원이 나오기만 기다리는 그의 모습은 사랑 아니면 감히 할 수 없는 행동들입니다. 우정으로 할 수 있는 범주는 아니니 말이죠.
하지만 지원이 피곤하다며 집으로 돌아가려 하자, 석지원은 회식 참석이 어렵다는 통화를 하죠. 회식 참석의 필요충분조건이 바로 지원이란 의미였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술을 마셔야 한다며 회식 장소로 향하는 지원과 자신도 초대받았다며 티격태격하는 그들의 모습은 18년 전과 크게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회식자리에서 과거 이야기가 나오고, 지원과 석지원가 안줏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내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지원을 석지원과 연결하려 하자 발끈하고 나가죠. 그런 지원을 따라 나온 태오는 따뜻한 차를 건넵니다.
그리고 방학 기간에 태오에게 사랑 고백을 했던 지원에게 애둘러 거부합니다. 이 과정에서 콧물 눈물을 쏟아내는 지원은 그저 차였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힘든 일이 있어서 그렇다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사실이죠. 지원이 왜 나이차이가 많은 태오에게 고백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석지원의 등장은 많은 것들을 변하게 하고 있습니다.
전화를 받기 위해 골목에 들어섰던 석지원은 지원이 오고 있음을 알고 도망치다 사연을 모두 보고 듣고 맙니다. 들키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을 치다 하필이면 큰 통에 엉덩이가 끼이는 참사를 당하고 맙니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상황을 누군가 봤다는 사실에 놀란 지원은 당황하죠.
도저히 혼자 힘으로 나올 수 없게 되자 석지원은 지원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 황당한 장면을 보면서 지원은 도와주겠다는 생각보다 이 상황을 모두 들었냐며 석지원을 타박합니다. 이런 반응은 18년 전 그들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들 중에 하나일 가능성도 커 보입니다.
최악의 상황에 방치된 석지원은 어렵게 그곳에서 벗어나지만, 회식 자리에서는 지원이 자신에 대한 험담을 쏟아내는 장면을 듣게 됩니다.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과는 좋은 관계가 될 수 없다고 떠드는 모습에 석지원은 발끈하게 되죠.
큰 통에 빠져 엉망이 된 석지원의 뒷모습과 말끔한 앞모습은 그의 이중성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그 모습을 발견하는 수아의 역할도 흥미로울 수밖에 없죠. 지원의 절친이기도 한 수아가 이들의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보이니 말입니다.
술자리에서 4년 동안 꽃이 피지 않는 라일락 이야기가 나오고, 발끈해진 분위기는 내기를 하도록 부추겼습니다. 할아버지가 그토록 정성을 들였음에도 4년 동안 꽃이 피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피지 않을 것이라 주장했고, 석지원은 꽃이 필 거라 주장했습니다.
이 대립 속에서 지원은 꽃이 안 피며 이사장직이라도 내놓을 거냐 묻고, 석지원은 바로 받고 꽃이 피면 뭘 해줄 수 있냐고 되묻습니다. 18년 전 기말고사를 앞두고 내기를 하던 모습처럼 말이죠. 이번에도 석지원은 라일락에 꽃이 피면 자신과 사귀자고 합니다.
18년 전 기말고사에서 자신이 지원을 이기면 사귀자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 제안입니다. 과거에는 석지원이 졌지만, 이번에는 이길 수 있을까요? 하지만 석지원이 졌지만 자신이 원한 연애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고백했고, 지원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연인이 되었던 그들이 왜 헤어졌는지 그 서사가 등장해야 현재의 그들 모습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올 듯합니다.
잘 짜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연기들이 농익어 더욱 몰입하게 만듭니다. 이런 전개를 요즘 로코에서 보기 힘들었다 보니 더욱 반갑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뻔할 수밖에 없는 로코에 관심이 가도록 만드는 '사랑은 외나무다리에서'는 올해 가장 매력적인 로코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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