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누구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쫓겨나도 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린 언제나 이런 당연함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착해서 혹은 무지해서 당해야만 했던 부당함을 그들은 당연하다고 해왔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이런 당연함마저 빼앗고 언제든 짤려도 되는 사람들을 양산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세상 누구도 짤려도 되는 사람은 없다;
애써 외면했던 노조, 그 노조 교과서가 되어가는 드라마 송곳이 전하는 가치
노조는 부당한 것도 무섭고 두려운 행위가 아니다. 우리는 수많은 언론과 권력의 부당하게 요구된 시각으로 인해 외면해야만 하는 존재로 여겨왔던 게 사실이다. 언제나 성난 얼굴로 뭔가를 휘두르고 피를 흘리는 노조의 모습은 두려운 존재로 각인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대한민국이 철저하게 미국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사실은 아는 이들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언론들이 대부분 미국 언론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를 하는 상황에서 국민들 역시 그런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그렇게 우리는 마치 조종이라도 당하듯 살아왔다.
푸르미 마트의 노동자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노조는 두렵거나 가능하다면 관계없이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막상 자신에게 위기에 처하자 가장 든든하게 자신을 버티게 만들어준 것이 노조라는 사실은 많은 메시지를 담아준다.
"지는 것은 안 무섭지만 졌을 때 혼자인 게 무섭다"
노조를 결성하고 위기에 처한 수인을 바라보며 부진 노동사무소에서 함께 하는 차성학은 이렇게 말했다. 거대한 갑에 대항해 지는 것 자체가 무서울 이유가 없다. 무서움은 곧 도전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는 점에서 고민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두려운 것은 졌을 때 혼자인 것이다. 세상을 바르게 바꾸기 위해 싸웠는데 자신의 곁에 아무도 없다면 그것보다 무서운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노조는 곧 약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 수밖에 없다. 세상은 언제나 모든 것을 가진 자들을 위해 움직일 뿐이다. 이런 무자비한 세상에 99%의 대중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연대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우산과 부채 공장을 이용해 '노동 유연화'를 설명하는 장면은 흥미롭다. 이런 노동 유연화가 실제 우리 사회에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도록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필요한 곳에 노동자가 투입되어 모두를 만족시키는 시장을 만드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문제는 이런 '노동 유연화'를 통해 시장 안정화는 가능해지지만 노동자들의 권익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된다. 수익이 높아지면 당연하게 노동자들의 수익 역시 높아지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수익은 늘지 않고 오직 노동력만 착취당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을 알선하는 악덕업체의 배만 불리는 것이 과거나 현재의 문제다.
'노동 유연화'는 결과적으로 비정규직을 극단적으로 양산할 수밖에 없는 조치다. 이 상황에서 비정규직이 높은 임금을 받게 된다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최악의 경우 정규직의 절반에 그치는 임금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문제다. 노동 유연성을 통해 기업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에게 그에 합당한 임금을 보장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다.
착취가 일상이 된 '노동 유연화'는 결과적으로 희망 없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아무리 일을 해도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는 일은 없다. 정규직의 규모는 점점 줄어들고 비정규직이 극대화되는 상황에서 철저하게 기업에만 이익을 주는 대한민국의 '노동 유연화'는 희망 없는 노동을 강요하는 '지옥'과도 같은 상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가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사실을 <송곳>은 집요하게 꼬집었다. 과거와 같은 호시절은 결코 오지 않는다. 그저 대학만 나오면 자신이 직장을 골라서 가고, 가장 혼자 돈을 벌어도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IMF를 정점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국민들은 나라를 살리겠다고 집에 있는 금붙이들을 들고 나와 국가를 살렸다. 그리고 기업을 위해 스스로 사직서를 내고 나오는 이들도 많았다. 국가가 살고 기업이 살아야 다시 고용도 될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들의 이런 바람은 그저 바람일 뿐이었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모든 것을 내던진 그들은 거리에 나앉아야 했고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낙오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재벌들은 다시 그들을 고용하지 않았고 철저하게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이용하는데 집착하기 시작했다. 고용 없는 성장기에 접어들며 노동자들의 불안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는 없다.
재벌들의 금고 안에 현금은 가득차고 정부는 이런 재벌들을 안정화시키기 위해 모든 것들을 집중한다. 99섬을 가진 자들에게 99%가 가진 한 섬마저도 빼앗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절망으로 다가온다. 정치적인 장난을 치며 노동자들을 우롱하는 현실 속에서 희망 없는 절망의 시대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까마득하다.
허 과장과 황 주임의 대립 과정은 푸르미 마트에 노조가 결성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다. 이수인 과장이 노동자들에게 노조 가입을 이야기하지만 그의 성격상 이는 쉽지 않다. 자신을 내려놓고 관계를 돈독하게 하지 못했던 수인에게 다가서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주 주임에게 친근감을 표현하는 수인을 바라보며 오해할 정도로 강직하기만 한 그에게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것은 쉽지 않다. 노조의 필요성을 절감한 수인이 벽에 부딪친 상황에서 황 주임의 위기는 결국 그들을 결속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었다. 황 주임의 잘못도 아닌 일을 이용해 사직서를 강요하는 허 과장. 친분을 무기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착해서 당하는 것인지 당하기 때문에 착하다고 이야기되는지 알 수 없지만 황 주임은 철저하게 허 과장을 믿었다. 과장과 주임의 위치가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 일한 형 동생으로서 관계를 앞세운 '의리'는 자신을 악의적으로 위협하는 행위마저 호의로 받아들일 정도다.
정에 이끌리던 황 주임이 완벽하게 변하기 시작한 것은 허 과장이 철저하게 자신을 지목해 해고를 하기 위한 준비를 완벽하게 갖췄다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부터다. 자신의 호의를 악의로 받는 허 과장에 분노한 황 주임. 그리고 그들과 친한 동료들은 이 과장과 함께 하게 된다. 그렇게 그들의 투쟁은 시작되었다.
황 주임의 해고 상황에 함께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동료들을 바라보고 구고신이 던진 말은 중요하게 다가온다. 모두를 거둬내기 쉽지 않아 그 중 하나를 골라내려는데 알아서 같이 나가주겠다는 그 어설픈 '의리'는 회사 좋은 일만 시킨다는 지적이다. 해고가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고신의 지적은 당연하다.
그렇게 그들은 뭉쳤다. 본격적으로 부당 해고에 맞서 그들은 힘을 모았고 노조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푸르미 마트 안에서 피켓을 들고 항의를 했고, 회사의 일방적인 해고에 맞서 그들은 저항하기 시작했다. 물론 노동자가 저항을 하면 할수록 그들을 짓밟으려는 사측의 악랄함은 더욱 기승을 부린다.
입주업체에게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이유로 황 주임의 해고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이수인에게 구고신은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 모든 사람들이 청렴결백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 주장한다. 노동자들은 대단한 존재가 아닌 그저 평범하고 일반적인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구고신은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것"이라는 말이 정답이었다.
징계위에 회부된 황 주임에게 강압적으로 공격하는 정 부장의 행동의 위압적일 뿐이다. 공포 분위기를 만들어 노동자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는 그들의 이런 행동 강령은 사회를 지배하는 하는 전략이다. 정치도 언제나 공포를 통해 지배하려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공포 정치가 손쉬운 성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억압은 곧 수많은 송곳들을 만들어낼 뿐이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수많은 송곳들이 현재의 민주주의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에 짤려도 되는 사람은 없다"
수산부의 황정미가 노조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혼자 사니까 너는 짤려도 상관없겠다는 동료들의 말에 울컥해서 한 말이 모든 것을 대변한다. 어떤 이유로도 짤려도 되는 사람은 존재할 수 없다. 혼자 살기 때문에 너는 해고를 당해도 상관없다는 말처럼 편협하고 공격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싸움은 경계를 확인하는 것이라는 구고신의 발언 역시 우리에게 중요하게 다가온다. 싸우지 않고 자신을 알 수 없고 상대도 알 수 없다. 싸워봐야 자신과 상대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싸우지 않는 한 아무 것도 알 수가 없다. 싸워봐야 경계를 알 수 있다는 이 말은 단순히 노동 현장의 문제만이 아닌 모든 이들에게 공감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명언이 아닐 수 없다.
현 정부는 노동자를 손쉽게 해고할 수 있는 노동법을 강제했다. 언제든 고용주가 필요하다면 노동자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악법은 노동 현장을 더욱 참혹하게 만들고 있다. 소수의 고용주를 제외한 99%의 국민들은 모두 노동자이다. 그저 막일을 하는 것만이 노동자가 아니라 넥타이를 메고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하는 이들 역시 노동자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노동 유연화'는 결국 모든 이들의 노동 환경을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모두가 각성해야만 한다. 모두가 송곳이 되지 않는 한 지옥과 같은 삶은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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