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은 달미와 인재 중 한 명을 선택해야만 했다. 기술은 있지만 이를 어떻게 성공시킬 수 있을지 그 방법을 모르는 삼산텍에게는 능력 있는 CEO가 필요했다. 단순히 보면 이미 큰 사업체를 성공시키고 운영했던 인재의 손을 잡는 것이 당연했다.
남들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던 삼산텍은 누군가의 개발자가 되기보다, 대표를 영입하는 방법을 택했다. 자신의 기술과 목표를 이해하고 지지하면서 사업적 성공까지 이끌 수 있는 존재가 그들에게는 필요했다. 그렇게 달미가 선택되었지만 산 넘어 산이다.
2박 3일 동안 이어지는 '해커톤'을 통해 자신들이 가진 기술과 사업적 가능성을 완성해야 한다. 그렇게 심사의원들의 평가를 통해 최종 선택된 다섯 팀만이 '샌드박스'에 입주하게 된다. 다양한 지원이 가능한 그곳에 들어서야 '유니콘'이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점에서 그들에게는 필수 코스다.
잘 흘러가던 이들의 계획에 심각한 장애가 생겼다. 인공지능 개발 분야에서 최고라고 이야기되는 MIT출신의 쌍둥이 남매가 이번 대회에도 출전했다. 창업도 하지 않으면서 대회에 나와 상금만 받아 챙기며 살아가는 그들은 대회 사냥꾼이다.
그런 그들이 인재의 팀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달미가 선택한 은행의 필적을 감식하자는 제안을 했다. 필적 감식은 그저 은행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도 충분히 통용 가능한 기술이라는 점에서 좋은 아이디어였다. 문제는 이런 필적 감식을 인재 팀에서도 가져가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쌍둥이 중 하나가 인재에게 싸움을 붙이는 상황은 이들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도산을 빼앗겼으니 복수를 해야 한다면 동일한 '필적'을 가지고 대결하자는 제안을 인재는 받아들였다. 동생에게 따끔한 경고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는 쌍둥이들은 쉽게 알고리즘을 만들고 퇴장했다. 그런 그들과 달리, 삼산텍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등장한 것이 달미였다. 기본적인 틀 자체를 바꾸며 가능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도산이 받으며 우여곡절 끝에 개발에 성공했다.
삼산텍 팀은 달미와 그가 삼고초려하듯 무릎까지 꿇으며 영입한 정사하가 들어오면 팀이 완성되었다. 학벌보다 인성을 본다는 달미가 급변한 것은 상대가 MIT 출신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고졸인 자신을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변호사 출신의 디자이너인 사하가 제격이었다.
모든 것이 잘 풀려나가는 듯했지만, 내부에서 고민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달미가 고절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도산은 학벌은 상관없었지만, 다른 두 친구는 그렇지 않아도 힘든 대결에서 대표가 고졸이라는 사실은 문제라고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세주 역할을 한 것은 지평이었다. 이미 2년 넘게 투자도 받지 못했던 당신들보다 달미가 답이 될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저 인공지능에 대한 지식만 높다고 피칭을 잘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제안은 '샌드박스'에 합격하지 못하면 개인적인 투자를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지평이 이런 선택까지 한 것은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다. 버려졌다시피했던 자신을 가족처럼 돌봐준 유일한 존재가 바로 달미 할머니였다. 우연히 행사장에서 본 할머니는 이혼한 달미 엄마와 이야기를 의도하지 않게 엿듣게 되면서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어른이었다. 하지만 달미가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도 입학하지 못한 사연은 지평을 힘들게 했다. 가게까지 팔아 입학금을 준비했지만, 달미는 학교보다는 일을 선택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해 할머니 핫도그 트럭까지 장만해준 손녀가 바로 달미였다.
지평은 마음이 아팠다. 자신이 가지고 떠났던 7천만 원이 그대로 할머니 통장에 있었다면, 그것도 아니라면 할머니가 자신에게 연락해 돈을 부탁했다면, 지금의 달미 인생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아쉬움에 할머니는 다른 안타까움을 이야기했다.
'순둥이'를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명절에 화투도 함께 치고, 소풍날 김밥도 싸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런 할머니 이야기를 듣자마자 눈물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세상에 그런 어른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신에게 무한대로 퍼주는 그 어른을 위해서라도 지평은 달미를 돕고 싶다. 개인적으로 달미에 대한 사랑이라는 감정이 싹트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앞서는 것은 달미 할머니에 대한 감사함이다. 그렇게 피칭에 나선 달미는 초반 당황하기는 했지만, 좌중을 휘어잡으며 준비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소개했다.
문제는 다음 순서였던 언니 인재가 들고 나온 아이디어가 자신들과 충돌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달미 측이 보안에 방점을 찍었다면, 인재 측은 폰트 만들기라는 사업적 마인드를 극대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재의 의붓아버지인 원 회장이 색다른 제안을 했다.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원 회장은 보안을 앞세운 삼산텍과 필체를 활용해 폰트를 만드는 인재 컴퍼니가 대결을 펼쳐보라는 것이었다. 창과 방패의 싸움이다. 폰트를 만들면, 삼산텍에서 이를 가려내는 대결이다. 하지만 첫 대결에서 삼산텍은 졌다.
성인이 된 달미와 인재가 벌인 첫 대결이었다. 꼭 이기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도산도 이기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완성품이 아닌 기술로 이를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순딩이라 불렸던 도산이 대결에서 지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볼펜을 부러트렸다.
이 상황이 특별한 이유는 삼산텍에 투자하기 위해 직접 국내로 들어온 투스토 디렉터인 알렉스가 도산 부모를 만나며 들었던 이야기들 때문이다. 최연소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받은 도산은 어린 나이에 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문제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 많은 형들보다 월등하다 보니 비교가 되었다. 남들이 꾸중 듣는 것이 미안한 어린 도산은 학교를 그만두고 중학교에 들어갔다. 남들에게 이기기보다 지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는 도산은 그렇게 욕심도 없이 살아왔다.
욕심부리지 않았던 도산이 볼펜을 꺾었다. 그건 무슨 의미인가? 잠자고 있던 도산의 승부욕이 깨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알렉스가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삼산텍은 '샌드박스'의 다섯 번째 합격자가 되었다. 모든 지원을 받게 된 삼산텍에게는 수많은 도전과제들만 쌓이게 되었다.
'샌드박스'의 그네 타는 소녀가 원인재라고 알고 있는 윤석학 대표가 어느 순간 그게 달미라는 것을 알게 될지도 궁금해진다. 이들이 자매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윤 대표로서는 '샌드박스' 이야기를 적은 인재를 당사자로 알고 있으니 말이다.
자매의 대결 못지않게, 달미를 둘러싼 도산과 지평의 대립각도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도산은 지평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둘의 대결 구도는 더욱 흥미롭게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독기를 품기 시작한 도산의 성장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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