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할 정도로 아름다고 강렬한 눈물은 본적이 없는 듯하다. 진짜 남자 이재한과 그를 15년 동안 결코 한 번도 잊은 적 없던 차수현의 아픈 사랑의 결말은 백골이었다.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애타게 찾았던 이재한. 그를 떠나보내며 흘리는 차수현의 그 뜨거운 눈물의 가치는 곧 드라마 <시그널>이 담고자 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
시간이 약이 될 수 없는 남겨진 이들의 슬픔, 이재한과 박해영 무전 역대급 감동인 이유
둘이서 제대로 찍은 사진 한 장이 없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어 슬펐던 수현. 그것이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뭐라도, 조금이라도 남겨뒀을 텐데...라며 자책하는 수현의 말은 애써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게 했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던 사람. 하지만 결국 1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백골로 마주해야만 했던 그 사람에 대한 애틋함은 그렇게 끝날 수 없는 아픔과 회한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인주 사건 팀이 복귀하는 날 수현은 날듯이 기뻤다. 다시 재한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인주 여고생 사건'후 한 형사는 사표를 제출하고, 재한은 무단결근을 했다. 재한이 궁금해 그의 집을 처음 찾은 그녀는 반기지도 않는 재한이 그래도 좋았다. 그런 재한에게 아버지 생일도 모르냐며 타박하던 수현은 그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가진다.
미역과 다시마도 구분 못하고, 차마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인 미역국을 끓이는 수준이지만 수현의 정성이 재한도 그의 아버지도 감사하고 행복했다.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재한 아버지의 생신이라는 이유로 마신 수현은 완전히 취한 해 집으로 가던 택시에서도 쫓겨나고 재한에게 업힌 신세가 되었다.
수현에게는 택시보다 재한의 등이 더 안전하고 포근했다. 그렇게 취한 수현은 재한에게 형사 그만두지 말라고 한다. 자신에게는 재한이 최고의 형사라는 수현의 고백은 그렇게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백골 사체를 보며 오열하고 그럼에도 자신의 아들을 찾아줘 고맙다고 오열하는 아버지. 죽기 전 아들 제사를 지낼 수 있게 되어 고맙다는 그 말은 안타까움을 모두 담고 있었다.
비리 형사로 둔갑해 재한의 장례식에는 누구도 오지 않았다. 그 흔한 화한 하나도 없는 장례식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수현의 모습은 지독한 감동보다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그토록 찾았던 사람.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사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차가운 땅속에 숨겨져야만 했던 그 남자를 향한 수현의 눈물은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을 대변하고 있었다.
수현의 남겨진 물건들 속에서 수현이 발견한 것은 배트맨 사진이 든 액자였다. 나쁜 자들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출동하는 배트맨처럼 재한도 그런 형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 재한의 의지가 담긴 사진 뒤에 숨겨진 것은 바로 수현과 재한이 홍보용으로 찍었던 사진이었다. 혼자만 재한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수현은 그 사진을 통해 재한 역시 자신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재한의 방에서 해영은 가게 명함 한 장을 발견한다. 해영이 그 명함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곳이 어린 시절 해영을 버티게 해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어린 해영의 꿈은 거대하지 않았다. 그저 가족들이 모두 모여 외식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끝내 그건 그저 꿈으로 남겨졌고, 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지쳐 껍데기 집에 들어가 오므라이스를 시키는 어린 해영.
진실을 알면서도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힘겨웠던 재한은 송치되는 선우와 울고 있는 어린 재한을 본다. 그리고 재한은 무전 속의 재한이 바로 자신이 보고 있는 그 어린 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어렵게 서울로 간 해영을 멀리서 지켜보기만 하던 재한은 껍데기 집 사장에게 자신이 가진 돈 전부를 주며 재한에게 오므라이스를 만들어 달라 부탁한다.
비록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재한은 그렇게 해영을 보살피려 노력했다. 서로가 서로를 알고 난 후 무전을 하는 장면은 기존에 했던 무전과는 전혀 달랐다. 자신으로 인해 죽은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행복하기를 바란다는 해영과 진실을 밝히지 못해 상처를 입었을 재한에게 미안해 아무리 힘들어도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나누는 둘의 무전은 <시그널>이 담아낼 수 있는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돈 없고, 빽 없고, 힘도 없어서" 억울한 희생자가 되어야만 했던 형. 그런 형을 위해 재한은 공부를 시작했다. 더는 방황할 수 없었던 재한은 왜 자신의 형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그렇게 죽어야만 했는지 알고 난 후 변하기 시작했다. 현재 시점의 재한과 수현은 다시 '인주 여고생 사건'을 은밀하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강해승을 어렵게 찾은 해영과 수현은 그녀를 통해 선우가 억울한 누명의 희생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주고 위로 해줬던 사람. 죽음을 선택하려는 순간에도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 살려주었던 남자. 그럼에도 어린 나이에 무서워 거짓말을 하고, 그렇게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던 해승은 그래서 아프고 힘들었다.
선우는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든 해승의 손을 잡으며 "너 잘못 아니야"라는 말로 그녀를 위로했다. 피해자임에도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 현실. 우린 언제나 힘이 강한 가해자의 편에 서곤 한다. 피해자를 동조하면 마치 피해자와 동급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함은 악랄한 가해자의 마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김혜수가 소리 내지도 못한 채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수많은 희생자들. 그들을 잊지 못하고 여전히 아파하는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이고 분노였다. 최근 '한탑'으로 이름을 바꾼 '영남제분' 사모의 악행과 먼저 간 딸을 그리워하다 깡마른 채 숨져야만 했던 엄마. 그렇게 남겨진 자는 아프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해자 윤길자는 병원에서 호화 생활을 했고, 언론에 의해 공론화되자 이번에는 모범수가 되어 가장 환경이 좋은 '화성 직업훈련교도소'에 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여전히 아파하고 힘겨워하지만 가해자는 그 어떤 죄책감도 가지지 않고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여전히 진도 앞바다에는 세월호가 침몰해 있다. 그 안에는 아직 찾지 못한 희생자들이 함께 있다. 여전히 잊을 수 없는 그 지독한 고통과 이후 벌어진 일들을 생각해보면 차수현이 흘리는 뜨거운 눈물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남겨진 자들의 슬픔을 그녀의 눈물이 대변하고 있으니 말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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