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른 전개로 사건들이 발생하고 해결된다. 그동안 지상파 드라마의 한심한 시간 끌기에 질렸던 시청자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시원함을 느끼는 과정일 것이다. 지난 7화 <시그널>은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를 던졌다. 정치꾼들과 재벌들이 손을 잡고 법은 그들의 하수인이 되어 엄청난 부패를 저지른 이 사건이 바로 <시그널>이 시청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분노하는 이재한과 박해영;
아날로그로 풀어내는 거대 악과의 대결, 다시 시작된 무전 이제 시작이다
20년 전 죽었던 여자가 살아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여자를 찾아달라는 당황스러운 제안을 차수현과 박해영은 다른 이들의 만류에도 사건을 맡았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20년 전 이재한 형사가 관여했던 사건이라는 점에서 해영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이재한을 추적하는 해영을 위해서라도 수현은 사건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자살했다는 신다혜가 조사 결과 살아있었다. 그녀가 있었다던 커피숍에 두고 간 책에서 신다혜의 지문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살아 돌아온 신다혜를 찾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당연하고 단순하지만 죽었다던 사람을 찾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죽은 사람을 찾을 수는 없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증거를 남길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수사는 활기를 띄었다. 그리고 신다혜 가족 주변을 살피던 그들은 그녀의 어머니가 이식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과 신다혜와 친했던 여성이 독일로 이민을 갔다는 사실과 의문의 그녀가 남기고 간 서적 표지가 독일어라는 것을 연결해 김지희가 곧 신다혜일 것이라는 추측을 해낸다.
그들의 추리처럼 신다혜는 과거에 죽었던 후배 김지희의 이름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이식수술을 받아야만 하는 어머니를 위해 입국해 수술을 받았다. 그렇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진범인 한세규를 잡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한다. 과거의 신다혜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옛 연인이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녹음테이프들과 소속사 사장을 통해 알게 된 한세규와의 관계였다.
옛 연인은 열심히 연기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신다혜가 있었다. 과거 소속사 사장은 망나니들인 권력자 아들들의 놀이감으로 상납되었다는 사실이다. 신다혜는 다른 이들과 달리 술도 마시지 않고 그런 자리 자체를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그런 신다혜를 한세규는 겁탈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친구들은 비디오로 찍었고, 그 모든 것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약을 하고 여성을 강간한 한세규. 그런 모든 과정을 찍은 친구들은 그를 협박했다. 정치인과 재벌의 아들들인 그들은 자신 아버지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한세규의 비디오로 압박했다. 한세규는 자신을 협박한 비디오 테이프를 가져가기 위해 도둑질을 했다. 그게 바로 대도 사건의 시작이었다.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 대도 사건을 만들어냈고, 비리 투성이 정치인과 재벌가 아들들은 한세규를 협박했다. 그런 협박에 한세규는 친구들의 집을 털었고, 그 과정에서 거대 비리 사건의 증거가 담긴 플로피 디스켓까지 훔쳐가고 말았다. 비디오 데이프를 찾으러 별장으로 가야만 했던 다혜는 그곳에서 자랑하듯 보여준 목걸이를 보게 된다. 마약에 취해 쓰러진 세규 몰래 목걸이를 가지고 도주한 다혜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그때는 몰랐다.
대도 사건으로 구속된 한세규로 인해 안심했던 다혜는 너무 빨리 풀려난 그에게 다시 협박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처럼 자신의 집에 온 지희와 함께 자던 날 한세규는 몰래 집으로 들어왔고, 잠자고 있던 그녀를 죽였다. 물론 한세규가 죽인 것은 다혜가 아닌 그녀로 착각한 지희였지만 말이다.
언제나 자신의 대본 연습을 녹음하던 습관을 가지고 있던 다혜의 그 행동이 결국 한세규를 잡는 이유가 되었다. 현장에서 한세규가 지희를 죽인 세규의 범행을 모두 목격한 다혜는 공포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집에 몰래 숨어있던 그녀는 자신이 죽었다는 경찰의 전화를 받고 지희로 살아가기로 작정했다. 사건은 그렇게 정리되었다.
20년 동안 묵혀 있던 사건은 그렇게 다시 진실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찍힌 사진 한 장이 시작이었고, 이를 허투로 보지 않은 형사들의 집요한 수사가 묻힐 수도 있었던 사건의 진범을 잡아내는 이유가 되었다. 거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은 채 떵떵거리며 사는 세상.
살인자가 변호사가 되어 대한민국 최고의 로펌 변호사로 살아가고 있다. 검사장 출신인 아버지 덕으로 살아 온 한세규는 그렇게 금수저의 위용을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경기남부살인사건의 연쇄살인마가 맹목적인 아버지로 인해 괴물로 키워졌듯, 한세규 역시 권력을 가진 아버지에 의해 그렇게 세상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괴물로 살아가고 있었다.
프로파일러 박해영은 모든 것이 주어진 상황에서 덫을 놓기 시작했다. 사건 현장이 녹음된 테이프를 안치수 팀장에게 공개했다. 그리고 한세규를 찾아가서는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냈다. 자신이 최고라고만 생각하며 살아왔던 한세규. 하지만 누구보다 자격지심에 시달리고 있던 한세규는 제발로 취조를 받기 위해 경찰서를 찾는다.
능력도 없이 아버지의 덕에 유명 로펌의 변호사로 살아가는 자신의 현실을 망각하고 우월한 지위로 해영을 압도하겠다는 그의 과도한 자신감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이미 경찰 내부에서 연결된 인물이 있고, 그 존재가 누구인지를 이번 한세규 사건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안치수 팀장이 그 역할을 수행했고, 한세규는 자신감만 넘친 상황에서 자신이 덫에 걸린 지도 모르고 스스로 취조실을 찾았다. 그렇게 현장에서 그는 자신이 듣지 못한 녹음테이프의 남은 부분을 확인한다. 변호사라는 이유로 어설프게 대응한 한세규는 완벽한 해영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녹음테이프는 한세규가 살인한 장소가 신다혜의 집이라는 사실을 그녀의 약혼자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통해 확인했다. 한세규가 피해갈 수 있다고 확신한 그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목격자인 신다혜를 죽이기 위해 김범주 수사국장의 지시를 받은 살인자에 의해 납치를 당하는 순간 차수현이 구해 취조실로 데려왔다. 죽었다고 믿었던 신다혜가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에 경악한 한세규는 그렇게 무너졌다.
김범주는 철저하게 권력의 개를 자임했다. 시골 순경이었던 그가 어린 나이에 가파른 출세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스스로 경찰이 아닌 권력의 개를 자청하면서 얻은 성취였다. 모든 비리 내용을 담고 있는 플로피 디스켓은 자신을 찾던 이재한 형사에게 소포로 보냈다. 그렇지 않으면 신분을 속이고 사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날 것 같아 형사기동대에 소포로 보냈지만 그건 재한의 몫이 아니었다.
재한의 소포를 가로 챈 당시 반장이었던 김범주에 의해 망가진 후였다. 장현철 의원과 재벌가들의 연결고리가 담겨져 있던 파일은 김범주에 의해 삭제되어 변질되었다. 그렇게 핵심 역할을 하던 자들은 빠져나가고 김범주는 거대한 부와 명예를 누리게 되었다.
문제는 이재한이었다. 사건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이재한으로 인해 잠시도 편할 수 없었다. 권력의 개를 잡기 위해서는 결코 자신의 발로 경찰서를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외쳤던 이재한을 미치도록 죽이고 싶었다. 그렇게 김범주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안치수를 자신의 개로 키웠다. 그리고 그에게 지시해 이재한을 살해하도록 지시했다.
모든 사건이 종료된 후 홀로 사건 정리를 하던 중 조용한 경찰서 내부에서 자신이 버린 무전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버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무전기 소리가 왜 들리는지 이상했던 해영은 그 소리를 찾아 움직였다. 그리고 그 무전이 들리는 곳은 바로 안치수의 책상이었다.
안치수의 책상 서랍에서 버렸던 무전기를 찾아 낸 순간 안치수가 등장했다. 그 숨 막히는 순간 울리는 무전. 과거의 이재한과 현재의 해영. 그리고 과거 그를 죽였던 안치수의 만남이 이뤄질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이후 이야기 과정을 생각해보면 안치수가 이재한의 목소리를 듣지는 못할 듯 보인다. 절반이 지난 상황에서 명확한 편이 갈렸다.
거대한 권력을 이용해 엄청난 부를 쌓은 국회의원과 재벌, 그리고 법조인들과 경찰 간부들로 이뤄진 악의 무리들과 그들에 맞서는 형사들의 대결 구도는 흥미롭기만 하다. 비리로 엄청난 재산을 모으고 이를 통해 다시 권력을 부여잡은 그들은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그런 지배 권력에 맞서는 현직 형사들의 도전은 우리 시대 우리가 꿈꾸는 분노이기도 하다.
여전히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는 한세규를 찾아간 박해영 장면은 <시그널>이 보여준 최고의 장면 중 하나였다. 룸 안에서 여전히 여자들과 질펀하게 노는 한세규를 압박하는 과정에서 술잔을 이용한 상황 설명과 이에 맞서는 한세규가 술을 마시는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을 정의하는 과정은 매력적이었다. 그 모든 과정을 룸에 있던 술과 술잔, 얼음과 얼음 박스를 활용해 압축해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박경수 작가의 <펀치>에서 음식을 가지고 상황을 설명하듯 말이다.
김범주는 그 거대한 비리를 밝혀낼 수 있는 내용들을 그저 삭제하고 끝냈을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동아줄로 이를 카피했을 것이다. 그리고 안치수 역시 자신을 옥죄는 김범주에게 대항할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 그가 이재한을 정말 죽였는지 아직 알 수는 없다. 죽였다고 해도 그 과정에 김범주의 비리를 안치수는 가지고 있을 테니 말이다.
<시그널>은 다른 어설픈 드라마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시그널>의 2회분 내용을 지상파 드라마에서는 20회로 늘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당연히 이야기는 늘어지고 말도 안 되는 개연성 없는 내용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시그널>은 오직 돈벌이에만 급급한 지상파 드라마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드라마의 완성도는 작가의 뛰어난 이야기의 힘이 크게 좌우한다. 여기에 주연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완벽한 연출력이 하나가 되면 최고의 작품이 나오고는 한다. <시그널>은 여기에 하나를 더했다. 큰 비중은 아니지만 조연들로 등장하는 이들의 연기 역시 주연들의 연기 못지않게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매 사건에 등장하는 단역이나 조연들의 연기는 그들이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김원석 감독의 섬세하고 집요한 연출력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조금의 틈도 허용하지 않는 그 집요함이 걸작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훈과 조진웅의 협력과 그들이 다른 시대에 살고 있지만, 잘못된 현실에 분노하는 이들의 모습은 그래서 반갑다. 이들의 분노에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부도덕하고, 드라마에서 그리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분노는 시청자들의 마음과 동급이기 때문이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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