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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ama 드라마이야기/Korea Drama 한드

신데렐라 언니 11회-문근영은 왜 서우를 두려워하는가?

by 자이미 2010.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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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의 죽음이 몰고 온 변화는 그들을 강하게 혹은 너무나 나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도 느낄 수 없었던 마음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던 본성이 살아나기 시작하며 그들은 그렇게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사랑이 원죄가 되고 사랑이 화해가 되는 <신데렐라 언니>는 그렇게 사랑에 울었습니다.

사랑이 두려워 사랑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



1. 사랑이 두려워 사랑만 모르는 사람들

정말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이 두려워 사랑을 할 수 없는 은조. 사랑을 하고 있기에 그리고 사랑을 받으며 살아왔기에 사랑만이 모든 것을 결정지을 수 있음을 알고 있는 효선. 그들은 그렇게 사랑에 울고 사랑에 웃습니다. 단 한 번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었던 자신이 미웠고,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던 자신이 애처롭기만 한 은조는 한없이 아빠를 부르고 힘겹게 울기만 합니다.

그런 은조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려야만 하는 기훈은 자신이 사랑했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더 이상 가까이 갈 수도 없는 사랑 때문에 아파서 웁니다. 자신만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집은 대성의 무한한 사랑으로 바뀔 수도 있었음을 기훈은 알고 있습니다.

씻을 수 없는 원죄를 지어버린 기훈은 승냥이 같은 자신의 아버지와 이복형에게는 좋은 먹잇감일 뿐입니다. 철저하게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줄 아는 그들에게 기훈은 사랑을 알아버려 나약해져가는 존재로 밖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효선은 아버지를 그대로 닮았습니다. 그저 사랑만 갈구하던 속없는 아이가 아니라 은조가 그토록 사랑하는 아버지를 빼다 박은 듯이 닮았습니다. 자신을 싫어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사랑하는 그녀는, 강숙의 속마음을 알고도 사랑으로 감싸던 아버지 대성과 너무 닮았습니다.

<신데렐라 언니> 11회에서는 인간이 얼마나 환경에 지배되는 동물인지 잘 보여주고 있었죠. 평생 사랑을 부정하고 사랑을 미워하며 살아가도록 키워진 은조와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것만이 전부라고 배우며 자란 효선의 차이를 강숙과 대성을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사랑을 믿을 수 없어서 슬픈, 그래서 영원히 사랑만 갈구하고 다녀야 하는 운명을 가진 강숙에게 대성은 마지막으로 사랑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던 인물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렇게 비명횡사만 하지 않았더라면 강숙은 변해갔을 겁니다.

은조가 서서히 변해가듯 강숙도 사랑의 본질에 가까워져 갈 수도 있었지만 운명은 더이상 강숙에게 사랑을 깨닫게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믿지도 못하고 사랑도 할 수 없도록 만들어버린 하늘을 원망하고 욕하는 강숙은 당연합니다.

2. 사랑만 배워 사랑만 할 줄 아는 사람들

효선에게서 대성을 바라보는 은조는 마음이 아프기만 합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다간 사는 것이 사는 게 아닌 삶이 되는 것 같아 두렵기만 합니다. 눈에 보이게 효선을 미워하고 주변사람들에게 패악 질을 하는 엄마에게 그러지 말라고 애원도 하고 강요도 하지만 사랑을 부정하는 강숙에게는 의미 없는 외침일 뿐입니다.

서서히 자신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면서부터 평생 가질 수 없었던 두려움을 가지게 되어버린 은조는 힘겹기만 합니다. 마치 은조의 약한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듯 효선은 은조의 마음을 뒤흔들어 놨던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자신에게 합니다.

"날 버리지만 마"

마치 주술이라도 외우듯 은조에게 말하는 효선을 그녀는 결코 버릴 수 없습니다. 씻을 수 없는 죄. 그 힘겨움을 용서받고 싶은 은조에게 '효선'은 마지막까지 지켜줘야만 하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자신과는 너무 달라 미웠고 자신이 가지지 못한 사랑을 온 몸으로 느끼는 효선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은조였습니다.

사랑이 들어오면 자신이 산산조각 나버릴 것만 같아 두려웠던 은조에게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형식적인 화해라고는 하지만 이미 마음속으로 화해했던 은조에게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고 대성과 효성이 가진 무한한 사랑이 전염이 되며 모든 것들을 용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모든 것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이게 되자 비로소 행복이라는 것이 찾아 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저 양푼에 비빔밥을 비벼 함께 먹는 단순한 행위이지만, 그동안 대립각을 세우며 살아왔던 그들에게 비빔밥은 특별한 의미가 될 수밖에는 없었죠.

조금씩 변화기 시작하는 은조는 죽은 아버지를 그대로 닮은 효선이 두렵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미움이 사랑으로 변하며 자연스럽게 애착이 생기고 그 애착은 두려움을 동반하게 되었습니다. 그 두려움은 언제 깨어질지도 모르는 평안함과 행복을 유지시키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요구합니다.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강숙을 변화시키지 않으면 결코 이 집안에 평화와 사랑이 올 수 없음을 알고 있는 은조로서는 진퇴양난에 빠진 채 헤어 나오기 힘든 상황에 몰립니다. 그렇게 한없이 눈물을 흘리는 일 외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없는 상황에서 은조는 기훈에게 자신을 데리고 멀리 도망가 달라 합니다. 


사랑을 배우지 못하고 두려움과 미움만을 배우며 살아왔던 은조가 사랑을 조금씩 배우기 시작하며 그 사랑이 너무 사랑스러워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긋나버린 운명처럼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는 미움만이 돋아나 있을 뿐이었습니다. 

기훈이나 기훈의 가족들 모두 서로를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존재로만 여기고 있습니다. 너무나 비교되는 대성과 기훈 아버지 홍회장은 사랑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보여주는 '두 얼굴을 가진 아버지'입니다. 상처투성이인 삶을 살아야만 했던 홍회장에게 사랑은 강숙과 같이 사치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을 버틸 수 있게 만드는 외형적인 재산에만 집착할 뿐입니다. 강숙이 그러하듯 말이지요. <신데렐라 언니>는 본격적으로 '사랑만 하는 사람과 사랑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드라마들과는 달리 무겁게 나아가기는 하지만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사랑은 의미 있게 다가올 수밖에는 없지요. 그렇게 힘겹게 찾아가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이 어떻게 사람들을 변화시켜 나가는지는 이후 <신데렐라 언니>에게 중요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결 편안해진 연기자들의 연기는 전체적인 내용을 이끌며 이후 완숙한 재미로 이끌어 갈 듯합니다. 사랑이라...참 단순하지만 오묘하고 위대한 단어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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