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을 다루는 감독이 다시 도심 속에서 벌어진 재난을 가지고 돌아왔다. <7광구>나 <타워>등을 통해 재난 상황에서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담아왔다는 점에서 <싱크홀>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전형성을 가진 작품이라는 점에서 익숙함과 동일시될 수밖에 없다. <타워>가 <타워링>의 근간을 그대로 차용해서 국내용으로 만들었듯, 재난을 이용한 감독의 전략은 상당히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싱크홀이 전 지구적 문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런 소재는 충분히 흥미롭다.
지하수의 고갈과 지하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난개발이 싱크홀의 원인으로 이야기되는 상황에서 영화에서 다룬것처럼 건물 자체가 통째로 가라앉는 일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기도 어렵다. 물론 도심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쉽지 않지만 말이다.
서울에 집을 사는 것은 쉽지 않다. 동원(김성균)은 그 일을 해냈다. 물론 고가의 아파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안락한 우리 집을 장만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그런 행복을 오래가지 못했다.
이사 오는 날부터 이미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만수(차승원)는 집 앞에 차량을 주차해 이사를 방해하더니 모든 곳에서 나타나 동원을 괴롭히는 존재처럼 다가왔다. 의도적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알 수는 없지만, 헬스클럽부터, 사진관, 대리운전 등 그가 찾는 모든 곳에 만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사부터 난관이었던 동원은 회사에서도 만수와 유사한 김대리(이광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집들이를 하게 되었다. 물론 언젠가는 해야 하지만 말이다. 집들이를 앞두고 동원 아들은 집에서 마술을 보여주겠다며 신나 했다.
바닥에 구슬을 놨더니 굴러간다. 아이의 눈에는 마술이고 어른들의 눈에는 부실시공이다. 평평해야 하는 바닥에 구슬이 자연스럽게 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 입주자 회의를 열게 되었고, 많은 문제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문제는 입주한 이들 중 몇몇은 집값이 떨어진다며 부실 자체를 감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나왔다는 것이다. 동원 역시 집들이를 온 직원들에게 이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 오랜 시간 일을 해서 겨우 서울에 얻은 집이 부실시공으로 문제가 있는 집이란 사실을 직장 후배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들이하는 날까지 눈치가 없는 만수의 행태가 불만스럽기만 하다.
동원에게는 귀찮은 존재인 만수에게도 많은 사연들은 존재한다. 아들 승태(남다름)에 대한 애틋함이 가득하지만 가세가 기운 상황에서 제대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런 승태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몰래 담배를 피우고 피시방에 다니는 것이 전부인 승태와 그런 아들의 모습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거나 동의하는 만수에게 아들은 그게 전부였다. 이런 서먹해진 부자간의 관계는 오히려 재난이 도움이 되는 경우들이 존재한다.
김대리를 시작으로 비정규직인 은주(김혜준)와 다른 직원들까지 포함해 네 명이 집들이를 온 동원의 집은 고민을 접고 웃고 즐기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동원은 자신의 집을 마련하면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직원들의 집들이 선물 대신 돈으로 받아, 자신의 돈까지 더해 산 흔들의자는 동원의 로망이었다.
자신의 집이 아니면 절대 누릴 수 없는 편안함이 그 흔들의자에 모두 집약되어 있다고 동원은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자신이 인 서울에 집을 장만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지만 부하 직원은 아파트를 가지고 있고, 자신의 집값만큼 가격이 뛰었다는 사실에 씁쓸해진다.
김대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직원이 아파트를 가진 직원과 만나고 있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말았다. 인 서울은 고사하고 원룸에 살며 비정규직인 은주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한심해한다. 정규직에 집을 가진 혹은 연애 감정만이 고민의 전부라 생각하는 그들은 딴 나라 사람처럼 다가오니 말이다.
김대리가 좋아하던 상대는 아파트 남자와 함께 먼저 떠나고, 뭔지 모를 절망을 짊어진 이들만 남아 술을 마시는 분위기가 되었다. 대리운전을 부르려는 김대리를 위해 이웃사촌인 만수를 불렀지만, 이미 술에 취한 동원은 대리비가 너무 비싸다며 자고 가라고 한다.
만수를 한방 먹인 동원의 이 한마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이들은 몰랐다. 다음날 물이 나오지 않아 옥상에 올라간 만수는 옆 빌라는 물이 잘 나오는 모습을 보다, 집이 점점 꺼지는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다. 새로 지은 빌라는 그렇게 순식간에 지하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도심에서 벌어진 싱크홀은 그렇게 멀쩡한 빌라는 집어삼키고 말았다. 아침에 집으로 가려던 김대리는 택시에 탄 채 지하로 빨려 들어갔고, 그렇게 재난에 처한 이들의 생존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싱크홀이 되자마자 신고가 들어가 119가 출동했지만, 이는 난생처음 접하는 재난이다.
사람 하나가 빠지는 수준이 아니라 빌라 한 채가 땅 속으로 꺼진 희대의 사건이니 말이다. 소방관들이 급하게 싱크홀 안으로 들어가려 하지만 지반이 불안정해 그것도 불가능해졌다. 여기에 드론도 날려보지만 신호가 잡히지 않을 정도로 깊은 그곳까지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빌라 안에 갇힌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이 난국을 타파할 방법들을 찾기 시작하며 영화는 본격적인 이야기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도심에서 이런 황당한 일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한 이들이 갑작스러운 재난에 대처하는 과정이 <싱크홀>의 핵심이다.
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은 고전이다.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서로를 더욱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물론 역설적으로 평소에 보여줄 수 없는 밑바닥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생명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여기는 이는 이기적인 방식으로 모두를 궁지로 내몰기도 하니 말이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싱크홀>은 착한 드라마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극과 극의 사람들이 출동하는 전형적인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그저 작은 재앙들과 마주하고 이를 이겨가는 과정들이 존재할 뿐이다.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부자의 정을 느끼게 만드는 과정들을 통해 영화는 관객들에게 훈훈함을 전달한다. 재난 속 인간의 다양함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난 영화의 기본에 충실했다.
차승원과 김성균, 이광수로 이어지는 교한 코믹 코드는 <싱크홀>의 심각한 상황과 대비되며 영화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 <타워>보다 진보한 지하로 추락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작보다 훨씬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제난이라는 엄중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고 다수를 위해 희생하는 할머니의 모습과 위험 속에서도 코믹함을 놓치지 않는 균형감은 오히려 이 영화를 새롭게 만들었다. 무겁지만 너무 무겁지 않고, 가볍지만 너무 가볍지 않은 그 정도 균형을 잡은 <싱크홀>은 무료함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괜찮은 영화가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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