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12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파묘'의 기록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지난해 천만 관객을 동원한 '서울의 봄'의 기록을 상회하고 있다는 점에서, 천만 관객 동원은 이상하지 않아 보입니다. 문제는 최다 관객 동원 기록을 넘어설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습니다.
2014년 극장가를 뜨겁게 달궜던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 '명량'은 무려 1760만 명이 넘는 관객 동원을 하며 역대 최고 흥행 영화가 되었습니다. 이 기록은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불멸의 기록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지난해 개봉해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서울의 봄'도 1300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지만, 역대 9위를 기록했을 뿐입니다.
'파묘'가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 생각한 이들은 많지 않았을 겁니다. 한국에서 오컬트 영화가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한국에서 오컬트 영화는 여전히 '컬트 무비'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에 흥행은 쉽지 않습니다.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통해 국내에서 오컬트 영화를 집요하게 제작하는 장재현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이 장르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더욱 출연진들의 면면을 보면 거부할 수 없는 강렬함이었습니다.
최민식, 김고은, 유해진, 이도현 등 주요 인물들의 면면을 봐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기묘한 분위기와 '파묘'라는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문화라는 점도 호기심을 자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묘를 파내는 행위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보기도 어렵습니다. 일반인들이 파묘를 할 이유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장례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도 '파묘'는 낯설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오컬트에 파묘라는 결합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귀신이 나오는 오컬트라고 생각하기 쉬웠습니다. 물론 이 역시 당연하지만 그것보다는 영화 전체를 감싸고 있는 주제는 관객들을 열광하게 만들었습니다. 친일에 대한 고찰은 언제나 흥미롭고 반갑기만 합니다. 우린 한번도 제대로 된 친일 청산이 이뤄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광복 후 친일 청산이 시작되었지만, 이승만 정권은 이를 무산시켰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친일파들을 전면에 내세워 국정 운영을 했다는 사실은 치욕스러운 역사적 사실입니다. 독립군들을 때려잡던 자들이 광복이 되자, 경찰이 되어 권력을 휘두르는 말도 안 되는 현실이 실제 벌어졌다는 겁니다.
청산되지 않은 친일의 역사는 결국 현재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씁쓸함으로 다가옵니다. 철저하게 청산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없도록 역사적 단죄를 하지 않은 역사는 결국 현재를 힘들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존재하는 역사를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야기는 단순하게 시작됩니다.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재벌가 집안의 장손은 거액의 의뢰를 무당 화림(김고은)에게 합니다. 자신의 제자인 봉길(이도현)은 그를 만나자마자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채고 이장을 권합니다.
이번 파묘가 큰 돈이 될 수 있음을 직감한 최고의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합류하며 본격적인 이장은 시작됩니다. 하지만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를 본 상덕은 불길한 기운에 제안을 거절합니다.
하지만 상덕이 없으면 안 되는 상황에 화림은 그를 설득했고, 어렵게 파묘가 시작되지만, 그곳에는 나와서는 안 될 것이 나오고 맙니다. 그렇기 시작된 이야기는 섬뜩한 공포를 관객들에게 선사합니다. 오컬트 영화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쉽게 추측이 가능할 듯합니다.
장 감독의 오컬트 전작들을 보면 '파묘'가 담아내는 기이한 분위기를 어느 정도 예측도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감독은 이 절대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을 통해 우리의 과거와 현대사를 절묘하게 잘 잡아냈습니다. 핵심적인 요소인 '친일 청산'에 대한 메시지는 오컬트와 만나며 더욱 강렬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요 등장인물들을 의도적으로 중요한 역사적 인물 실명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장 감독의 의지는 잘 드러납니다. 독립운동가 김상덕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며, 그의 차량 번호는 '49파 0815'를 사용합니다. 사십구재와 파묘, 그리고 광복절은 그의 현재 직업과 역사적 존재를 번호판에 모두 부여했죠.
이화정 역시 같은 의미로 동일 이름을 사용하며 '19 무 0301'로 삼일운동을 번호판에 심었습니다. 고영근은 개화파 인물로 독립운동가는 아닙니다. 'XX 바 1945'라는 번호판은 광복을 언급하지만, 그의 캐릭터를 생각해 보면 그의 역사적 사실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화정의 제자인 봉길의 성이 윤 씨라는 것은 그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너무 명확하게 드러냅니다. 여기에 악당들의 면면을 봐도 이 영화가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합니다. 파묘를 요청한 박지용(김재철)이 조상 악령에 빙의되어 '나치식 경례'와 '대동아공영권' 연설을 하는 장면은 기괴함과 경악스러운 공포를 선사했습니다.
극 중 여성 친일파였던 배정자가 그대로 등장하고, 그 역시 친일파 일가 중 하나라는 설정도 흥미로웠습니다. 박지용의 조부인 박근현은 일제 시절 후작 작위까지 가진 매국노입니다. 이런 박씨 가문이 미국에서 호화롭게 살 수 있었던 것은 나라 팔아먹은 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은 관객들의 피를 끓게 합니다. 그게 우리 현실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박근현이란 인물은 자신의 정체성을 일본인이자 천황의 충실한 황국신민이라 확신하는 자로 등장합니다. 실제 역사에서도 이런 인물들이 존재하고, 그렇게 나라를 팔아 후대까지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재의 대한민국이기도 합니다.
친일 청산이 이뤄지지 못하자 나라를 팔아먹은 자들이 권력자가 되고, 그들의 후손들은 지금도 거대한 부를 바탕으로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이 '파묘'를 본다면 기겁할 겁니다. 자신들이 극중 친일파의 후손들처럼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인 '경성 크리처'와도 맥이 닿아 있습니다. 이 드라마 역시 일제의 잔인한 생체 실험을 담아낸 수작입니다. 크리처와 경성이라는 조합 속에는 잔인한 일본의 조선인을 상대로 한 생체 실험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를 절묘한 시대상과 크리처물의 특성을 잘 버물려 완성했다는 점에서 반가웠습니다.
곧 공개될 시즌 2에서는 현대 시점에서 친일 잔재들과 싸우는 크리처물이 된다는 점에서 재미있게도 '파묘'와 교점이 존재합니다. 어떤 식으로 풀어낼지 알 수는 없지만, 충분히 매력적인 드라마가 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과거와 현재를 통해 청산되지 않은 친일의 역사를 크리처물로 담아냈다는 점만으로도 흥미로우니 말입니다.
왜 대중들은 이런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일까요? 단순한 주제의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겁니다. 최소한 영화나 드라마가 잘 만들어진 상태에서 이런 묵직한 주제가 담겨야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파묘'의 만듦새가 엉망이었다면 아무리 좋은 주제라고 해도 이 정도 파급력을 보여줄 수는 없었을 겁니다.
오컬트 영화의 장인으로 자리 잡은 감독의 감각은 더욱 강렬해졌고, 출연한 배우들은 이미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이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좋은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소화해 낸 영화라면 당연히 관객들을 환호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이야기의 큰 줄기는 친일 청산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반성하지 않은 자를 용서할 이유는 없습니다. 과거는 잊히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학습해 좋은 것은 계승하고 잘못된 것은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대상입니다.
과거에 벌어진 일을 지금도 이야기한다고, 이미 지나간 일을 굳이 들쑤신다고 해결될 일도 없다고, 이웃 국가이니 앞으로 잘 지내야 한다고, 말 같지도 않은 말들로 사람들을 현혹하려 한다고 현혹되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는 잊히거나 쉽게 망각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파묘'가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두는 모습은 '변호인'의 개봉 시기와 열광적인 환호와 겹쳐 보이기도 합니다. 정의가 사라진 시대, 정의란 무엇이고 법은 어떤 것인지 일깨우던 '변호인'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왜곡하고 거짓으로 점철시키는 시대 '파묘'의 폭발적 반응은 우연일 수는 없습니다.
천만은 시간문제이고, 이제 이순신 장군을 넘어 역대 최다 관중기록을 경신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현재의 흐름을 본다면 불가능한 도전은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천만을 넘긴 서른 번째 작품을 넘어 역대 최고의 기록을 경신하기를 바랍니다. 그게 곧 국민들의 분노일 테니 말입니다.
일본 개봉이 확정된 상황이라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과연 일본에서는 '파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요? 높은 영화적 완성도와 그 주제 속에서 그들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었던 역사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해집니다. '경성 크리처'에 대한 일본 반응 역시 둘로 나뉘었듯 '파묘'도 비슷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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