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인구가 거주하는 서울. 그들의 여행지는 바로 서울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공간에서 무슨 여행일까?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 하지만 거대 도시가 된 서울에 대한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담론이 자연스럽게 이뤄진 <알쓸신잡2>는 매력적이었다.
영자들이 세운 도시;
21세기 종묘와 사직, 메머드 도시 속 과거와 현재를 이야기하다
제주 여행을 마친 그들은 일상 속 공간인 서울 여행을 떠났다. 잡학박사들의 여섯 번째 여행지는 광화문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에게는 고향이지자 삶의 터전이 된 거대 도시 서울. 종로와 중구는 사대문 안에 위치한 서울의 핵심 지역이다. 정도전에 의해 기획되고 만들어진 그곳에 대한 여행은 그래서 더 흥미로웠다.
서울식 불고기를 앞에 두고 이야기를 시작한 잡학박사들은 오늘도 할 말이 참 많다. 천만이 거주하는 도시는 그만큼 다양성이 확보될 수밖에 없다. 더욱 조선시대부터 수도였던 서울이 가진 역사성은 단순하게 풀어내기에는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담고 있다.
분석과 공감이 함께 탁월할 수는 없다는 말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분석하는 능력이 탁월하면 공감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런 분석과 공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럽게 서울을 설계한 정도전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한양을 설계하고 조선 시스템 자체를 세운 정도전은 이방원의 칼에 쓰러졌다. 철저한 분석 결과 정도전이 만들어낸 한양은 그렇게 조선을 거쳐 현재 서울까지 이어진 이 공간이 가지는 힘은 강렬하다. 종로와 중구에서 일제 강점기를 겪으며 확장되었다. 전쟁 후 서울로 사람들이 몰려들며 삽시간에 천만 도시가 되었다.
이런 급격한 인구 증가의 힘은 '보일러의 힘'이라고 지적했다. 온돌 시스템으로 인해 2층 건물이 불가능했던 과거와 달리, 보일러가 공급되면서 아파트가 급속하게 늘어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보일러=지주'론을 펼친 유 교수의 지적은 흥미롭다. 아파트가 없었다면 서울이 천만 도시가 될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한양의 북문이었던 숙정문을 시작으로 역사적 흐름을 찾은 유 작가의 여정도 흥미로웠다. 김신조 사건을 계기로 막혀있던 숙정문이 열렸고, 안쪽 산책로도 개방되었다. 한양의 성벽을 통해 과거 한양을 음미하는 과정 역시 흥미로웠다. 600년 서울의 역사는 그렇게 여전히 흔적들로 남겨져 있었다.
메가 시티가 된 서울은 이방인의 도시다. 3대가 서울에 살아온 토박이는 극소수다. 서울에 거주하는 대부분은 모두 이방인들이었다. 전쟁 후 지독한 경제난에 모두가 살기 위해 서울에 모였고, 그렇게 서울은 거대한 도시로 성장하는 이유가 되었다.
영화 <영자의 전성시대>는 그 안에 70년대 서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지금의 서울을 만든 노동자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담은 이 영화는 곧 서울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많은 영자들이 바로 현재의 번화한 서울을 만든 주인공이었다.
600년 동안 닫혀 있었던 서울의 문은 '광화문 시대'가 예정대로 열린다면 활짝 열릴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를 나와 광화문으로 옮기겠다는 이야기는 600년 동안 닫혀 있던 왕들의 공간이 시민들에게 모두 열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을 지나 광화문 뒤 청와대의 행태는 결국 오랜 시간 고착화된 공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최근까지도 스스로 왕이기를 원했던 공주가 기거했던 공간이기도 하니 말이다. 청와대를 비워 그곳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것은 단순한 공간의 개방 그 이상의 가치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광화문 시대'는 꼭 이뤄져야 한다.
서울은 대량 생산 시스템과 화석 에너지가 만든 도시라고 유 작가는 지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이 일터로 향하는 시스템과 수많은 화석 에너지로 움직이는 천만 시민들. 마치 공장의 컨테이너 벨트처럼 무한 반복되는 공간으로 우리는 살고 있는 셈이다.
정도전이 궁궐 좌우에 배치한 종묘와 사직은 여전히 위대한 역사적 산물로 우리에게 남겨져 있다. 과거의 의미를 품고 있는 종묘 사직을 21C 방식으로 풀어낸 유작가의 이야기는 그래서 흥미로웠다. 종로 5가 종교 단체들은 민주주의를 외치던 수많은 이들에게는 성지다.
종교는 전세계적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어 아무리 독재자라 해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조선시대 반촌과 같은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외쳐졌고, 그렇게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었다. 이런 공간적 가치를 유 작가는 21C 종묘라고 불렀다.
사직단은 강남 코엑스 등 도시를 지배하는 거대한 마천루 집단이라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종묘와 사직에 대한 이해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과거와 현재. 시대가 변하며 믿는 가치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그 틀 자체가 변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이제는 사라진 '피맛골'에 대한 추억. 그리고 과거의 건물이 아닌 공간이 중요하다는 유 교수의 지적처럼 우린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지점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다시 고민하게 되기도 했다. 5대 재벌을 보면 현재의 대한민국이 보인다는 지적 역시 흥미로웠다.
도시 계획은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새로운 핫 플레이스가 모두 좁은 골목을 끼고 있는 낡은 공간이라는 것은 너무 자연스러운 욕구의 발현이라 했다. 아파트의 등장으로 '사적 외부 공간'이 사라져버린 현대인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공간들을 찾게 되고, 그래서 서울 곳곳의 낡은 공간들이 새롭게 각광 받는 이유가 되고 있다.
천만 도시 서울은 미래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쉽게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수도 이전이 다시 언급되고 실현되지 않는 한 서울은 영원히 수도로서 가치를 다할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역사적 산물이 가득한 살아 숨 쉬는 역사 박물관 같은 서울 여행은 그래서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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