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하면 떠오르는 것은 '호두과자'와 '독립기념관'이 전부일 정도다. 하지만 그곳에는 많은 문화와 과학의 숨결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그 여행에서 어사 박문수와 소비에트의 몰락을 연결시키고, 과학자 홍대용과 장영실, 사도세자를 그리워한 정조의 이야기까지 모두 담겨져 있었다.
아우내 장터와 유관순;
마패와 팬옵티콘 그리고 조선 몰락의 결정적 이유, 작은 기억이 행복을 만든다
천안으로 떠난 '알쓸신잡'은 이번에도 알찬 여행기를 만들어주었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이렇게 많은 여행지가 있고 역사와 문화가 숨 쉬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미처 알지 못했던 지역의 특성과 역사는 어쩌면 여행의 본질이 무엇인지 시청자들에게 되묻고 있는 듯했다.
오랜 옛날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던 천안. 잠시 머물거나 스쳐 지나가는 공간은 그만큼 역사가 남겨지기 쉽지 않은 단점도 존재한다. 그렇다고 그곳에 역사나 전통,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천안을 가면 이제 떠오를 수밖에 없는 다양한 것들이 남겨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사 박문수. 수백 명의 어사들이 존재했지만 역사적으로 기억되고 있는 유일한 인물인 박문수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사도세자를 죽인 영조가 가장 총애했던 인물 중 하나였던 박문수는 탁월한 천재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가장 오랜 시간 집권을 하고 수많은 일들을 한 영조.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잔혹한 왕이기도 하지만 조선시대를 통 털어 최고의 왕 중 하나인 영조. 그 영조와 연결되어 다양한 이야기를 천안에서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여행은 의외로 흥미롭고 풍성했다. 과거 역사에 대한 이야기에 보다 집중하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수백 명의 어사들이 활약을 했다고 하지만 정말 그렇게 많은 어사들이 존재했을까? 이 의문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말이 그려진 마패를 보이며 호령하던 암행어사는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것과 다르다고 한다. 감사원 직원들처럼 지자체 장들이 제대로 일을 하고 있는지 정기 점검을 하는 행태였다고 하니 말이다.
암행어사의 역할은 1명만 존재해도 모든 고령의 수령들을 지배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제도이기도 했다. '팬옵티콘'을 통해 실험한 감시 매커니즘은 현재 시대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 가운데 어두운 감시탑이 존재하고 이를 감싸듯 죄수들이 모여있는 이 공간의 합리성은 그저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과거 어사와 암행어사 제도를 통해 지금보다 더 강력한 지방자치제가 있었던 조선 시대를 왕이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자리했으니 말이다. 소비에트의 몰락까지 언급하게 될 정도로 방만한 관리는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 이명박근혜 시절 수많은 비리가 일상이 되었던 것을 보면 아찔하다.
만약 이 부당한 권력이 연장되었다면 국가 부도와 몰락까지도 염려할 수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공기업에서 일상이 되었던 취업 비리는 대한민국 몰락이 시작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수많은 적폐들을 그렇게 사회 곳곳에 꽈리를 튼 채 자리 잡고 있었으니 말이다.
조선의 왕의 나라가 아니었다. 왕이 존재했지만 왕이 마음대로 국정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 시대 왕은 가장 하기 힘들고 꺼릴 수밖에 없는 자리이기도 했다. 어쩌면 박정희 독재 시대가 조선 시대 왕보다 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조선시대는 사대부의 나라였고, 그들은 철저하게 왕을 견제하기도 했다.
성균관 유생들이 백성에 반하는 일을 하는 왕에게는 상소를 올려 반대를 하는 행위는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차라리 독재 시절 그 모든 것을 통제하고 오직 독재자를 위해 움직인 것과 비교해보면 박정희 독재시절보다 조선시대가 더 민주적인 국가라고 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의산문답'을 통해 실학에 대한 가치를 전파하기도 했던 과학자 홍대용과 세종이 가장 사랑했고, 가장 위대한 과학 업적을 남긴 장영실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도 재미있다. 과학을 천시했던 문화는 결국 도태되고 몰락하고 붕괴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
조선 왕조가 망하고 일본에 병합되는 과정은 그저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그 과정을 겪어왔던 결과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한제국에서 국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본은 왕에게 권리를 빼앗았고, 그렇게 한국을 통치했다. 그리고 백성들이 만세 운동을 하면서 독립 투쟁을 한 것은 '국민 주권 투쟁'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아우내가 고향인 어린 유관순은 서울에서 있었던 3.1 운동을 알리기 위해 고향에 내려왔고, 그렇게 아우내 장터에서 4.1 만세 운동을 함께 했다. 불의에 맞서 일제에 대항했던 수많은 민초들. 3.1 운동은 그저 몇몇 곳에서 있었던 만세 운동이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 투쟁의 역사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너무 영특했던 사도세자. 하지만 그보다 더 뛰어났던 아버지 영조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사도세자에게는 재앙이었다. 만약 아버지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왕 영조가 아니었다면 사도세자는 왕의 삶을 잘 해나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보다 내정했던 영조는 아들 역시 뛰어난 왕이 되기를 바랐다. 그 열망은 결국 사도세자를 미치게 만들었고, 뒤주에 가둬 숨질 수밖에 없도록 했다.
그 모든 것을 보고 자란 정조. 할아버지 영조 앞에서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았던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와 기억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그런 아버지가 가장 행복해 했던 순간은 영조가 온양에 온천 여행을 왔을 때 잠시 '영괴대'에서 말을 타고 활을 쏘며 놀던 그 짧은 순간이 전부였다고 한다.
그곳에 직접 아버지를 그리며 쓴 친필은 정조가 그리워하고 기억하고 싶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기억이 평생을 좌우한다. 그리고 그 작은 기억들이 많은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사도세자나 정조는 불행한 삶을 산 이들일지도 모른다. 모든 왕과 왕자들이 그런 운명이기도 했겠지만, 영조의 아들 사도세자나 세종의 아들 문종의 경우들을 봐도 그렇다.
놀다 잠든 자신을 품에 안아 방으로 옮겨주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던 유시민. 그런 유시민의 기억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던 유희열. 감정이 과하게 폭발한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은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아득하면서도 가족과 사랑이라는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공유될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기도 했다.
천안에서 <알쓸신잡>은 조선 시대 과학과 소비에트의 몰락. 그리고 마패의 가치와 공리주의를 생각하게 했다. 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 이야기는 유시민 작가가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조선의 몰락과 대한제국. 한일병합과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 그리고 유관순 열사까지 천안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 역사의 축속판이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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