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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를 마무리하며 많은 이들이 갈증을 느꼈던 부분은 바로 '감동'이었나 봅니다. 웃음속에도 감동이 있어야 하고 그 감동만으로 하나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낼 정도로 2009 대한민국은 하반기로 넘어가며 진한 감동에 많은 갈증을 느꼈습니다.
그런 감동이 단순한 눈물바람으로 그치는 경우들도 있지만 진한 감동뒤에 한방울 흘러내리는 눈물의 가치는 그 어떤 것보다 돋보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과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이하 클스)>를 통해 보여진 신세경과 한예슬의 눈물은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가치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사회 시스템인가 개인사인가
우선 신세경은 대한민국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낸 사생아나 다름없는 상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어린시절 경험한 엄마의 죽음과 빚에 쫒기는 아빠. 그리고 남겨진 어린 동생을 보살펴야하는 여린 소녀. 너무나 익숙하게 뉴스를 통해 봤었던 가족사가 아닐 수없습니다. 그런 세경자매가 서울로 와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시청자들에게 감정이입되며 최고의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린 세경이 슬퍼야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대물림되듯 전해진 가난이 그녀를 다른 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도록 강요했습니다. 아빠의 실직과 빚으로 어쩔 수없이 산골로 들어가 숨어살아야만 했던 세경과 신애에게는 선택할 수있는 삶이란게 없었습니다.
그렇게 빚쟁이들에 쫓겨 서울에 도착한 그녀들은 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며 노숙을 하고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어먹으며 버텨야하는 삶을 살아야했습니다. 은인들로 인해 가사 도우미로 살아가는 세경에게는 이시대가 만들어낸 아픔과 슬픔이 '주홍글씨'가 세겨지듯 가슴속에 잔인한 인두질처럼 진하게 남겨져 있습니다.
그런 타고난 슬픔을 가진 세경을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녀의 잘못으로 만들어진 슬픔이 아닌 구조적으로 슬플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방황하거나 자신을 탓하지 않고, 현실에 당당하게 맞서 싸우려는 그녀의 눈물이기에 더욱 애절하고 건강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클스'에 등장하는 한예슬의 경우는 개인사에 얽힌 슬픔입니다. 자신이 죽도록 사랑하는 남자로 인해 오빠가 죽게 되고 이를 비관한 그녀는 서울로 상경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탓하며 살아왔던 8년. 어느날 갑자기 자기앞에 나타난 사랑하는 남자 강진. 그렇게 잊을 수없었지만 애써 잊으려 노력해왔던 그 사람을 만나며 강하게 살아왔던 지완의 눈물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랑에 슬프고 사랑에 아픈 비련의 여주인공이 흘리는 눈물은 많은 남성팬들을 울컥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지요. 여기에 남자 주인공이 아픔에 지쳐 죽을지도 모를 여주인공을 위해 거짓된 행동으로 다른여자와 키스를 하며 흘리는 진솔한 눈물은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없었습니다. 그런 남자를 바라보며 마지막까지 참아내던 한예슬의 흘리지 않은 눈물은 더욱 애절했습니다.
재미있는건 이 두 여주인공들 모두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갖은 고난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캐릭터라는 점입니다. 캔디와도 비교될 수있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슬퍼도 울지 않는 강인한 캔디처럼 그녀들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과 고통을 감내하며 밝게 살아갑니다.
그런 그녀들을 울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은 세상이 그녀들에게 가한 가혹함이 아니었습니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사랑은 강인해보이는 그녀들에게도 어쩔 수없는 눈물을 쏟아내게 만들었지요. 강해보이면 보일 수록 내면에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많듯 강해야만 버틸 수있는 그녀들은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인물들입니다.
세경은 아빠와의 오랫만의 재회에 한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린 동생의 투정에 그런 투정마저도 들어주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아파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지만 이루어질 수없는 사랑에 아파 우는 세경은 시청자들에게 동정심과 함께 공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랑에 슬퍼해보지 않은이 없고, 부모님의 사랑에 눈물 흘려보지 않은이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 직면한 세경의 눈물은 마치 내가 흘리는 눈물같은 동질감으로 다가와 세경이라는 인물을 더욱 의미있게 각인시켜주었습니다.
이에 비해 정통 멜로의 여주인공인 예슬의 눈물은 지독한 사랑에 대한 눈물이기에 세경에게 느껴지는 감동과 공감보다는, 비련의 여주인공에게서 느껴지는 애절함으로 다가옵니다. 극중 여주인공처럼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 멋진 남자와 애절한 사랑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환상의 눈물일 것입니다. 그런 여주인공과 실제 연애를 해보고 싶다는 갈망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보듬어주고 싶은 아픔일 것입니다.
신세경이나 한예슬이 극중에서 보여주는 애절함과 눈물은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다르게 평가를 내릴 수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시스템이 대물림하듯 물려준 아픔속에서 굳건하게 자신을 추스리고 살아가는 세경이 흘리는 눈물은 그 어떤 보석보다도 빛나는 눈물이 아닐 수없을 듯 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눈물을 흘리시나요? 혹시 남자는 울어서는 안된다는 강박으로 눈물을 참고 살아가시는 것은 아닌가요? 남자가 여자보다 평균 수명이 짧은건 눈물을 흘리지 않아서라고 하지요. 이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져도 좋을듯 합니다. 마음껏 울어도 좋습니다. 그 대상이 신세경이든 한예슬이든 아니면 또다른 의미의 감동이든 올 겨울 마음껏 울어볼 수있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행복을 얻는 것과 다름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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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방송연예드라마스토리]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
그런 감동이 단순한 눈물바람으로 그치는 경우들도 있지만 진한 감동뒤에 한방울 흘러내리는 눈물의 가치는 그 어떤 것보다 돋보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과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이하 클스)>를 통해 보여진 신세경과 한예슬의 눈물은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가치와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사회 시스템인가 개인사인가
우선 신세경은 대한민국 사회 시스템이 만들어낸 사생아나 다름없는 상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어린시절 경험한 엄마의 죽음과 빚에 쫒기는 아빠. 그리고 남겨진 어린 동생을 보살펴야하는 여린 소녀. 너무나 익숙하게 뉴스를 통해 봤었던 가족사가 아닐 수없습니다. 그런 세경자매가 서울로 와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들은 시청자들에게 감정이입되며 최고의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린 세경이 슬퍼야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대물림되듯 전해진 가난이 그녀를 다른 이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도록 강요했습니다. 아빠의 실직과 빚으로 어쩔 수없이 산골로 들어가 숨어살아야만 했던 세경과 신애에게는 선택할 수있는 삶이란게 없었습니다.
그렇게 빚쟁이들에 쫓겨 서울에 도착한 그녀들은 오지 않는 아빠를 기다리며 노숙을 하고 땅에 떨어진 음식을 주어먹으며 버텨야하는 삶을 살아야했습니다. 은인들로 인해 가사 도우미로 살아가는 세경에게는 이시대가 만들어낸 아픔과 슬픔이 '주홍글씨'가 세겨지듯 가슴속에 잔인한 인두질처럼 진하게 남겨져 있습니다.
그런 타고난 슬픔을 가진 세경을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녀의 잘못으로 만들어진 슬픔이 아닌 구조적으로 슬플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방황하거나 자신을 탓하지 않고, 현실에 당당하게 맞서 싸우려는 그녀의 눈물이기에 더욱 애절하고 건강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클스'에 등장하는 한예슬의 경우는 개인사에 얽힌 슬픔입니다. 자신이 죽도록 사랑하는 남자로 인해 오빠가 죽게 되고 이를 비관한 그녀는 서울로 상경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탓하며 살아왔던 8년. 어느날 갑자기 자기앞에 나타난 사랑하는 남자 강진. 그렇게 잊을 수없었지만 애써 잊으려 노력해왔던 그 사람을 만나며 강하게 살아왔던 지완의 눈물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랑에 슬프고 사랑에 아픈 비련의 여주인공이 흘리는 눈물은 많은 남성팬들을 울컥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지요. 여기에 남자 주인공이 아픔에 지쳐 죽을지도 모를 여주인공을 위해 거짓된 행동으로 다른여자와 키스를 하며 흘리는 진솔한 눈물은 감동적인 장면이 아닐 수없었습니다. 그런 남자를 바라보며 마지막까지 참아내던 한예슬의 흘리지 않은 눈물은 더욱 애절했습니다.
재미있는건 이 두 여주인공들 모두 시골에서 서울로 올라와 갖은 고난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캐릭터라는 점입니다. 캔디와도 비교될 수있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슬퍼도 울지 않는 강인한 캔디처럼 그녀들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과 고통을 감내하며 밝게 살아갑니다.
그런 그녀들을 울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은 세상이 그녀들에게 가한 가혹함이 아니었습니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사랑은 강인해보이는 그녀들에게도 어쩔 수없는 눈물을 쏟아내게 만들었지요. 강해보이면 보일 수록 내면에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이들이 많듯 강해야만 버틸 수있는 그녀들은 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인물들입니다.
세경은 아빠와의 오랫만의 재회에 한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린 동생의 투정에 그런 투정마저도 들어주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아파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간절하게 바라지만 이루어질 수없는 사랑에 아파 우는 세경은 시청자들에게 동정심과 함께 공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랑에 슬퍼해보지 않은이 없고, 부모님의 사랑에 눈물 흘려보지 않은이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 직면한 세경의 눈물은 마치 내가 흘리는 눈물같은 동질감으로 다가와 세경이라는 인물을 더욱 의미있게 각인시켜주었습니다.
이에 비해 정통 멜로의 여주인공인 예슬의 눈물은 지독한 사랑에 대한 눈물이기에 세경에게 느껴지는 감동과 공감보다는, 비련의 여주인공에게서 느껴지는 애절함으로 다가옵니다. 극중 여주인공처럼 비련의 주인공이 되어 멋진 남자와 애절한 사랑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환상의 눈물일 것입니다. 그런 여주인공과 실제 연애를 해보고 싶다는 갈망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보듬어주고 싶은 아픔일 것입니다.
신세경이나 한예슬이 극중에서 보여주는 애절함과 눈물은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다르게 평가를 내릴 수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시스템이 대물림하듯 물려준 아픔속에서 굳건하게 자신을 추스리고 살아가는 세경이 흘리는 눈물은 그 어떤 보석보다도 빛나는 눈물이 아닐 수없을 듯 합니다.
여러분들은 언제 눈물을 흘리시나요? 혹시 남자는 울어서는 안된다는 강박으로 눈물을 참고 살아가시는 것은 아닌가요? 남자가 여자보다 평균 수명이 짧은건 눈물을 흘리지 않아서라고 하지요. 이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져도 좋을듯 합니다. 마음껏 울어도 좋습니다. 그 대상이 신세경이든 한예슬이든 아니면 또다른 의미의 감동이든 올 겨울 마음껏 울어볼 수있다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행복을 얻는 것과 다름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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