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에서 폭로한 기재명의 고백은 우리시대 언론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해보게 합니다. 예고편에 등장하던 기하명이 던진 "당신은 기자가 맞습니까?"라는 질문에 식겁할 수밖에 없는 기자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언론이 사라지 우리 시대에 던지는 우문에 과연 드라마는 현답을 제시할 수 있을지도 궁금해집니다.
최달포를 버리고 기하명이 되었다;
펜 하나로 악마와 영웅을 만드는 능력, 기자라는 직업이 가지는 진정한 가치
국민영웅 기재명이 출연한다는 소식 하나만으로도 MSC의 송차옥은 충분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자신이 이끈 영웅놀이의 완성이 바로 그 현장에서 이뤄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3년 전 자신을 찾아와 인터뷰를 요구했던 17살 소년이 다시 자신과 인터뷰를 한다는 것은 대중들에게 큰 관심을 이끌 수밖에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의 흐름은 철저하게 13년 전 사건과 연결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복수라는 행위 자체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매개라는 점에서 이런 얼개는 자연스럽기까지 합니다. 13년 전 한 가족을 처참하게 파괴한 언론에 대한 복수극은 처절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언론이 어떤 식으로 한 가족을 무참하게 죽음으로 이끌었는지에 대한 형제들의 복수는 형의 잔인한 살인과 동생의 냉철한 반격으로 본격화되었습니다. 달포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촉망받던 학생은 어느 날 갑자기 터진 사건으로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죽음도 원망스럽지만 누구보다 현장에서 순직한 아버지를 도망자 취급을 한 언론으로 인해 재명은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어머니와 동생마저 죽였다는 죄책감까지 품고 살아야 했던 그는 아버지가 언론들의 주장처럼 도망자라고 해도 살아만 있기를 원했습니다. 트럭 하나로 전국을 오가며 아버지를 찾아 헤맸던 재명이 얻은 것은 과거 공장에서 나온 백골이 된 아버지였습니다.
더는 미룰 수 없었던 재명은 우연하게 알게 된 13년 전 공장장과 직원들을 죽음으로 내몰며 철저하게 사건을 조작합니다. 문덕수가 두 명을 살해하고 도망자가 되었다고 조작한 재명은 철저하게 아버지의 복수에만 집착했습니다.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살인을 한 재명은 그렇게 마지막 복수의 대상으로 송차옥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복수는 죽었다고 믿었던 동생 하명의 등장으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이 했던 행동의 잘못을 반성하고, 기자가 된 동생이 진정한 기자정신으로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 곧 진정한 복수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동생에게 자수를 하고, 예정된 생방송에 나서 재명은 철저한 언론의 이중성을 속 시원하게 밝혔습니다.
편집을 통해 누군가를 악마로 만들기도 하고 영웅으로 만들 수도 있음을 생방송 도중 적나라하게 드러낸 재명은 그것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고 확신합니다. 13년 전 철저하게 자신의 아버지를 악마로 만들었던 송차옥이 13년이 흐른 후에는 살인자인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언론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건이었습니다. 불신의 시대를 조장하는 언론의 몰락은 결국 어떤 기준을 가지고 기사화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우리한텐 그저 아이템인게 누구한테는 인생인건데...너무 가볍게만 생각 했어"
하명의 동료인 유래가 이번 사건을 보며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되었다며 밝힌 내용은 어쩌면 기자들 모두가 알면서도 잊고는 했던 원칙이었습니다. 기자들은 기사를 써야만 합니다. 매일 수없는 사건들을 접하며 누군가에게는 인생 그 자체일 수도 있는 내용을 그저 아이템으로만 취급하게 되는 현실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모든 사건에 상대의 인생을 고민해야 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은 그런 고민들을 매시간 매초, 평생 안고 가야만 하는 의무이기도 합니다. 한 순간 그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 그 기사는 인생이 아닌 아이템으로 전락하게 되고 원하지 않았던 희생자들을 만들어낼 수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최악의 상황에 몰려 앵커자리에서도 내려서야 했던 송차옥 부장. 그녀 앞에는 과거의 또 다른 사건의 진실이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기자상까지 받았던 그 기사에 오류가 있었다는 버스회사 사장의 시위는 진정한 기자란 무엇인지에 대한 접근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6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로 자살을 했던 운전기사의 이야기가 사실은 조작되었다는 주장은 논란의 시작이었습니다. 자살이 아닌 병으로 인해 죽음임에도 송 부장이 왜곡보도로 버스 회사를 도산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이 논란의 핵심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MSC와 YGN의 신입들인 최인하와 서범조, 기하명과 윤유래가 담당이 됩니다.
본격적으로 대립 관계가 된 이들이 하나의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실체들은 곧 언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하명으로서는 송 부장을 완전히 붕괴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인하 역시 억울한 죽음을 이끈 어머니에 대한 복수 아닌 복수가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확실한 증거도 없이 그저 정황증거만으로 사건을 몰아가고 이로 인해 억울한 희생자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송 부장은 다시 위기를 맞게 됩니다. 그런 송 부장 앞에 나타난 하명은 그 사건에 대해 "헛소문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합니다.
13년 전 아버지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하던 형에게 던진 송 부장의 질문이 다시 부메랑이 되어 그녀에게 돌아오는 순간이었습니다. 확실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은 채 오직 주변인들의 이야기만 듣고 만들어낸 기사에는 근본적인 오류가 등장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사망진단서'를 봤다면 모든 것이 완벽할 수 있었던 취재였지만, 결과를 이미 내고 취재를 한 기사에서 그 '사망진단서'는 중요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실체와 진실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에만 집착한 송 부장의 잘못은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리고 그런 식의 보도가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역시 분명합니다. 과거의 사건을 통해 언론의 역할을 자문하는 <피노키오>는 그래서 흥미롭기만 합니다.
<피노키오>는 언론의 중심에 들어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뉴스룸>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언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미국의 두 드라마는 닮아 있습니다. 언론인으로서 사명감과 기사를 만들고 전파되는 과정과 결과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는 우리 시대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 소재라는 사실은 두 작품을 통해서도 충분히 드러나고 있는 셈입니다.
주제 의식만 고취하는 드라마가 많습니다. 너무 자신의 주장만 하다 시청자들과는 벽을 쌓게 되는 여타 드라마와 달리 <피노키오>는 영특합니다. 하명과 인하의 사랑을 기본으로 하며 언론이라는 주제의식이 흔들리지 않는 모습은 참 대단하게 다가옵니다.
박혜련 작가가 뛰어나다는 이유는 바로 이런 시청자들과의 교감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매회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속단도 할 수 없고 안심도 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며 이야기에 주목하게 만드는 박 작가의 능력은 그래서 특별해 보입니다. 이런 박 작가의 능력을 더욱 탁월하게 해주는 배우들의 열연 역시 <피노키오>를 볼 수밖에 없는 이유로 다가옵니다.
누구보다 서럽게 울던 이종석과 매력 그 자체인 박신혜, 그리고 다른 수많은 배우들은 마치 <피노키오>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자연스럽습니다. <미생>이 다양한 연극배우들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과는 다르지만 <피노키오> 역시 연기자들 선택에 성공했다는 점이 반갑습니다. 절반을 넘어선 <피노키오>는 본격적으로 언론을 향해 시위를 당겼습니다. 시위를 떠난 살이 과연 우리시대 언론의 정중앙을 명중할 수 있을지 그게 궁금해집니다. 극중 예고편에 등장하는 기하명이 던진 "당신은 기자가 맞습니까?"는 바로 <피노키오>의 주제어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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