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한 회를 앞두고 신입사원 장그래로 인해 파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졌습니다. 사장과 어깨를 겨누었던 최 전무는 한직으로 밀려났고, 강직했던 오 차장은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렇게 홀로 남겨진 장그래는 애써 참았던 눈물을 자신의 방 안에서 서럽게 토해냈습니다.
진짜 거인이 되기를 원했던 임원;
오 차장과 영업 3팀의 눈물, 담담해서 더 위대했던 진정한 거인 오 차장 부인
최 전무와 오 차장의 몰락은 <미생>이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다는 의식과도 같은 행위였습니다. 마지막 한 회를 남긴 상황에서 사내들의 진한 눈물들이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뜨겁게 적셨습니다. 마지막까지 장그래를 책임지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신던 슬리퍼를 주고 담담하게 회사를 떠나는 오 차장의 뒷모습은 너무나 당당했습니다.
장그래가 남긴 통화 하나는 거대한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위해 신념까지 버린 오 차장과 영업3팀을 위한 행동이었지만, 장그래의 그 행동은 영업3팀만이 아니라 최 전무까지 무기력하게 무너트리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을 위해 무리한 수를 두는 상사가 위태로워지는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장그래의 행동은 한치 앞을 볼 수 없었던 신입사원의 패기였습니다.
녹취는 중국에 있던 성 대리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그 불안은 결과적으로 본사에서 이 문제를 중요하게 언급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본사에서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마저 흔들면서까지 강하게 밀어붙인 것은 회사 내 파벌과 정치 싸움이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현 사장과 최 전무 사이의 라인싸움은 원 인터내셔널에서는 일상이 되어 있었고, 이런 과정에서 최 전무를 위협하는 이번 사업은 한 방의 모두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의적으로 생각한다면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을 돈독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어갈 수도 있었지만, 최 전무 라인을 무기력하게 하고 중국 시장에 새로운 인맥들을 구축하려는 사내 권력암투는 결과적으로 오 차장에게 직격탄으로 날아왔습니다.
최 전무의 한직으로 옮기는 행위는 날개를 꺾어 사장의 힘을 강대하게 했지만, 이런 파벌 싸움을 알면서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는 그들의 분노는 오 차장에게 모두 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희생자는 필요하고 그런 대상이 사장이거나 최 전무일 수 없는 사내 분위기 속에서 총알받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오 차장은 영업3팀을 위해 스스로 옷을 벗는 선택을 합니다.
최 전무와 오 차장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대결 구도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흥미롭게 이어졌습니다. 부사장이라는 직함과 장그래가 걸린 그들의 오묘하고 불안한 동거는 결국 서로의 패를 위한 싸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가 주도권을 잡고 이끌 수 있느냐는 결과에서도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지독한 싸움은 눈에 잘 보이지 않을 뿐 그 어떤 싸움보다 치열했습니다.
"내게도 좋은 수는 상대에게도 좋은 수다"는 최 전무의 이야기처럼 이 상황들은 어느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함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중국과의 거래에서 말도 안 되는 리베이트가 쏟아나고, 이런 상황에서 장그래로 인해 불거진 불안을 수습하는 오 차장의 강직함과 업무능력은 탁월했습니다. 마지막 한 수였던 최 전무에 대한 제보만 들어오지 않았다면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맺을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최 전무 몰락에 장그래가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기는 했지만, 이 모든 과정은 사내 권력 경쟁이 만든 결과일 뿐이었습니다. 중국 사업을 맡기 전부터 오 차장이 우려했던 현실은 바로 이런 불안감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불안은 현실이 되었고, 결과는 최악이라는 패를 꺼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최 전무 라인이 살아있는 현실 속에서 오 차장과 영업3팀은 조직 내에서 설 자리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 어떤 업무도 실질적으로 할 수 없도록 고립된 현실은 지독함 그 이상이었습니다. 라인은 곧 직장인들에게 성공의 지름길입니다. 그 길이 막히고 사라진 상황에서 화풀이가 영업3팀과 오 차장에게 쏟아지는 것 역시 당연한 순리이기만 했습니다.
오 차장이 대단한 이유는 바로 이런 상황에 대한 대처였습니다. 한직으로 물러난 최 전무와 만난 자리에서 그는 여전히 야망을 드러냈습니다. 자신이 땅에 발을 딛고서 별을 보는 거인이 되지 못해서 이렇게 되었지만, 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다시 돌아가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떠나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최 전무는 오 차장은 자신의 이름으로 일을 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경고와 같은 현실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는 여전한 대립을 엿볼 수 있게 했습니다. 사표를 제출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 오 차장. 그는 자신을 배웅하러 온 신입사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신던 슬리퍼를 장그래에게 주며 "너 신어"라는 말과 함께 당당하게 회사를 나섰습니다. 그 당당함이 그래서 가슴 아픈 이들의 눈물은 시청자들에게도 강한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자신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 남은 사람들이 느끼는 마음의 짐이 커질 수밖에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오 차장. 그래서 오히려 더 아무 일 없는 듯 행동하는 오 차장의 모습은 진정한 거인이었습니다. 영업3팀이 대폿집에서 마지막 술자리를 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오 차장의 사퇴와 앞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업무에 대한 이야기도 개인적인 일들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오직 말도 안 되는 농담만 던지는 그 상황은 진정한 리얼이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껏 웃던 김 대리가 밖으로 나와 서럽게 우는 장면은 <미생>의 수많은 장면 중 돋보이는 시퀀스였습니다. 오 차장 앞에서는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던지며 웃던 김 대리가 밖에 나와 서럽게 오열하던 그 장면은 직장인들의 비애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습니다.
오 차장을 집 앞까지 배웅하고 돌아가는 장그래의 무거운 뒷모습과 홀로 남겨진 후에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는 오 차장의 모습은 우리 시대 직장인의 애환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 사표를 쓰기는 했지만, 아이가 셋인 오 차장이 차마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은 진한 울림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럽게 울지 않아도 오 차장이 어떤 심정일지는 시청자들이 더 먼저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돌아와 불 꺼진 방에서 무릎을 꿇고 서럽게 울며 오 차장에게 사과를 하는 장그래의 그 서러움도 강렬했습니다. 김 대리가 오열과 장그래의 눈물 속에서 지독한 현실을 직시할 수도 있었습니다. 정글일 수밖에 없는 일터에서 마음을 터놓고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그 누군가의 부재. 그리고 그런 부재가 던지는 아쉬움보다 진한 그리움은 그들의 오열 속에 모두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미생>을 꾸준하게 보셨던 분들이라면 오 차장 부인을 눈여겨봤을 듯합니다. 여느 직장인 부인과 마찬가지로 지독함으로 무장한 그런 흔한 부인처럼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녀는 남편의 기를 살려주고, 남편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있는 현명한 내조자였습니다. 장그래를 위해 자신의 길이 아닌 길을 선택하려 노력하는 남편에게 그의 선택이 항상 옳다고 격려한 것도 바로 부인입니다. 같은 직장인으로 출발해 남편을 위해 전업주부가 되어 출세도 모르고 일만 하는 바보 오상식을 단단하게 내조해준 것은 바로 부인이었습니다. 부인이 그런 내조를 하지 않았다면 오 차장 역시 다른 직장인들과 다름없이 상사 눈치를 보고 줄을 잡기 위해 여념이 없는 그런 영혼 없는 직장인으로 전락해 있었을 것입니다.
오 차장이 심각하게 사직을 고민하던 날. 그리고 술기운에 사직을 이야기했을 때 부인이 던진 이야기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셋이라는 말 속에는 당신의 판단 속에 가족이 함께 있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가족을 생각하지 않은 울컥한 결정인지, 아니면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인지를 알고 싶었던 부인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오 차장이 그렇다는 대답을 하자마자 부인은 세간 살이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냉장고부터 TV, 그리고 아이들을 위한 컴퓨터까지 목록을 적는 부인의 모습이 너무 엉뚱한 오 차장의 질문에 "퇴직하기 전에 직원가로 사야지"라는 부인의 "미워"라는 그 투정은 어쩌면 이 세상 모든 남편들이 받고 싶은 현명함일 것입니다. 퇴직을 하게 되면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부인이지만, 그보다는 자신이 함께 살고 있는 이 남자가 더 소중하고 귀했던 부인의 현명함은 울컥함으로 다가오게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거인은 그저 임원들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최 전무가 거인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그 거인의 가치는 그저 회사 내 임원들만을 위한 명칭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거인이 오 차장이기도 하고, 그의 부인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커다란 우산을 들고 있는 거인은 그저 별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함께 하는 이들을 감싸주는 따뜻함도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지키며 남편의 결정에 현명함으로 대처하는 오 차장 부인은 우리 시대 진정한 거인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위대한 여정을 밟아 온 <미생>도 이제 마지막 한 회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실망 없이 거대한 족적을 남겨준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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