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부까지 달려왔던 <미생>은 여전히 완생이 아닌 그 길을 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인생에 완성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 <미생>은 그렇게 막힌 길에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고 스스로 개척해가는 오 차장과 장그래를 통해 우리에게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버텨라 그리고 이겨내라;
다 익은 우유, 함께 걷는 그 길 속에서 희망을 찾았다
오 차장이 사표를 쓰고 물러난 후 영업3팀은 안정을 찾았습니다. 그의 예견처럼 폭풍처럼 몰아붙이던 광풍도 사라지고 회사는 조직이라는 틀 속에서 다시 견고함을 구축하려 노력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남겨진 계약직 장그래를 위해 많은 이들은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동기들은 한상율, 안영이, 장백기가 중심이 된 장그래 살리기는 전사적인 차원에서 제도 개혁이라는 판 흔들기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바꿀 수 있는 제도적인 정비는 고졸인 장그래도 원 인터내셔널에서 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낭만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거대한 공룡인 재벌들에게 고졸에게 기회를 줄 이유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계약직이라는 제도는 2년 동안 마음껏 활용하고 버려도 되는 특혜라는 점에서 이를 포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철저하게 싼 가격에 마음껏 노동력을 착취할 수 있는 이 제도를 스스로 무너트리며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줄 이유는 없으니 말입니다.
철저하게 노동력만 착취할 뿐 노동자들을 위한 기업은 존재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은 <미생> 속에서도 여전히 강렬하게 남겨져 있었습니다. 아무리 일을 잘 해도 스펙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기회조차 주지 않는 공룡의 견고함은 그렇게 스스로 자멸의 방법을 택할 뿐이었습니다.
영웅담 만들기가 아닌 현실을 그대로 재현해준 <미생>은 능력이 뛰어난 장그래의 퇴사로 현실감을 더욱 극대화했습니다. 동기들만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장그래가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기를 요구했지만, 거대하고 견고했던 벽은 무너질 수 없었습니다. 결코 틈을 내줄 수 없는 그 견고함은 개개인의 능력이 아닌 조직을 위한 개인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거대한 공룡의 몰락 전 만용의 모습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변화를 거부하고 오직 자신의 거대한 몸집에만 집착하는 공룡의 몰락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으니 말입니다.
원하지 않는 부정한 행동을 해야만 버틸 수 있는 지독한 회사 문화에 염증을 내고 나온 오 차장은 선배와 함께 동업해 회사를 차렸습니다. 그리고 한직으로 물러났던 김부겸 부장을 사장으로 영입한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의 상사맨이 되어 뛰기 시작했습니다. 헬멧을 팔기 위해 치킨집에서 한 달간 배달을 하면서 실험을 하는 그 깐깐함이 바로 오 차장이었고, 김 부장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장그래의 능력을 알아봤던 오 차장은 우유가 다 익었다는 표현으로 재계약이 무산된 장그래를 찾아갑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품을 줄 아는 오 차장과 그렇게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상사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질 정도로 열심인 장그래의 모습은 보는 사람들마저 흐뭇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끈끈함은 홀로 영업3팀에 남겨진 김 대리를 더욱 외롭게 했습니다. 일에 대한 즐거움보다는 그저 생존을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이 힘겨운 현실 속에서 일의 열정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주었던 오 차장과 장그래가 없는 영업3팀은 무의미한 공간이었습니다.
무색무취로 이미 일을 위한 일에 익숙한 천 과장과는 달리, 열정으로 일을 하는 김 대리는 재벌사를 나와 신생 회사인 오 차장을 찾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다시 뭉쳤고, 그 작은 곳에서 그들의 열정은 시작되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거대한 회사의 이름과 그 그늘이 아니라,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잘 보여주었습니다.
웹툰 <미생>은 말 그대로 미생이었습니다. 완생을 향해 나아가는 미생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웹툰은 드라마를 만나며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평면적이었던 그들은 입체적인 공간감으로 다가왔고, 그런 새로운 생명은 시청자들을 열광으로 이끌었습니다.
임시완과 이성민, 강소라와 강하늘, 변요한 등의 새로운 발견만이 아니라 연극배우들과 단연으로만 등장하던 이들까지 모두 모인 드라마 <미생>은 수많은 미생들이 진정 완생으로 향해가는 과정의 교도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비록 드라마 한 편으로 완생으로 보다 가까워지지는 못할 것입니다.
현실은 현실이고 드라마는 드라마일 수밖에는 없습니다. 웹툰이 담고 있는 우리의 현실과 드라마가 보여준 현실의 간극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원작과 원작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를 동일한 데칼코마니 정도로 인식하는 것은 모두를 모욕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원작의 기본을 훼손하지 않는 상황에서 진정한 가치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은 박수를 받을 수밖에 없는 요인입니다. 같은 듯 다른 <미생>은 그래서 탁월한 드라마였습니다. 놓쳐서는 안 되는 원칙들을 고수하면서도 원작과는 다른 괘로 흥미로운 이야기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 <미생>은 그렇게 완생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수많은 배우들에게 스스로가 미생임을 자각하게 하고 그렇게 다시 완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동기 부여를 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드라마 <미생>은 특별하고 대단했습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등장하는 그 장면은 드라마와 웹툰 모두를 포괄하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장그래의 아버지가 숨져 자래를 치르던 그곳에서 이미 그들은 만났었습니다. 장그래와 오 차장은 서로를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옷깃이 스친 인연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잃고 절망하던 장그래와 자신이 아꼈던 하지만 끝까지 책임을 지지 못했던 사원의 죽음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오상식은 그렇게 진한 인연의 끈으로 새로운 길을 함께 걷는 동지가 되었습니다.
<미생>에 출연한 수많은 배우들 역시 이 드라마를 통해 비록 배역의 크기와 상관없이 끈끈한 인연의 끈을 만들었고, 일부 배우들은 이미 시청자들에 의해 새롭게 인식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작은 인연이 많은 기회들을 만들고 꿈틀거리던 미생들이 점점 완생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는 것은 <미생>이 보여준 진정한 가치이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길들 중 쉽지 않은 길을 선택했어도 함께 걸을 수 있는 이들만 있다면 행복하다는 그들의 이야기처럼, 어느 곳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영원히 완생이 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조금씩 성장하는 우리 미생에게 던진 드라마 <미생>은 영원한 바이블로 우리와 함께 할 것입니다.
[해당 사진들은 모두 본문 이해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며 모든 권리는 각 방송사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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